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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들이박았다고 해도 어떻게 빌딩 전체가 1시간 정도만에 폭삭 무너져 내릴까?"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들었던 의문이다. 누가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떠오르지 않았다. 슬로우 비디오로 여러 번 보아도 어마어마한 빌딩이 붕괴하는 모습은 신기하고 놀라왔다. '테러리스트 소행으로 보이는 비행기의 충돌'과 건물 내부에 이미 장착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폭탄 폭발'이라는 설명이 나왔지만 사건의 진상이 발표될 때까지 이 궁금증은 완전히 풀리지 않을 것 같다. '누가 그랬는가'라는 궁금증에 대해서는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추측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비상계엄]을 재미있게 본 사람이면 '이슬람 과격파'를, [에어포스 원]을 보다가 손에 땀을 쥔 사람이면 '구 소련의 극우세력'이라고 생각할 것이니 말이다. 물론 최근의 국제정세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슬람 과격파' 쪽을 택할 것이다. 물론 이건 개인적 선택일 뿐이지만 그게 직업인 사람은 물증을 '만들어서라도' 용의자를 보도해야 하는 법. 아니나 다를까 언론과 방송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인물을 제 1의 용의자로 꼽고 있고, '소수설'로 팔레스타인해방민주전선도 곁들이고 있다. 유년시절 [황금박쥐]를 감명 깊게 본 사람이라면 사마대왕의 이미지를 떠올렸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빌딩 붕괴 원인으로 '이미 장착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폭탄'을 추가한 점은 빌딩 붕괴에 관한 '과학적 의문'을 잠재움과 더불어 테러범들이 '극악무도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 같다.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여 "이러다가 3차 대전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라는 보도도 나오지만 그건 그저 일신상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 이상은 아닐 것이다. 세계정치의 현재 구도와 현대전쟁의 양상에 대해서 무지하지 않다면 저런 말을 하기는 힘들다. 이제 미국 대통령이 나올 차례다. 기독교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미국은 테러범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든가, "자유와 평화를 수호할 것이다"라는 등의 상투적 이야기일 테이므로 큰 흥미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우려와 고뇌가 가득하면서도 용기와 신념을 잃지 않으려는 표정을 애쓰는 모습을 쳐다보는 정도가 흥미로울까. 어쩌면 '지금 보니까 조지 부쉬랑 해리슨 포드랑 참 닮았다'고 생각하다가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지 이런 엄중한 상황에...'라고 자책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세상에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도 나는 재미없고 심심하다'고 한 말은 진심이다. 이번 대량살상같이 처참한 사건도 당사자가 아니면 '강건너 불구경'에 지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막상 당신이 당하면 그런 말 나오겠느냐?'고 물어 보겠지만 자기 사촌까지만 멀쩡하다면 사해동포주의란 사치일 뿐이다. 또한 CNN의 카메라가 사상자의 모습과 오열하는 가족의 모습을 얼마나 리얼하게 보도하느냐에 따라서 눈물샘이 분비될 지도 모르지만 애도의 감정이 10분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구호품을 보내고 싶어도 콧대높은 뉴요커들은 "고마 됐다"할 테고... "미국 본토가 공습을 받은 것은 사상 처음이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최근 부시 행정부의 안하무인적 태도를 떠올리면서 '미국도 한번 당해 봐야 된다'라고 속으로 고소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도' 그럴 수 있다. 테러리스트를 이용하여 '영상의 테러'를 감행하면서 떼돈을 벌어들이던 헐리우드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분석'도 왠지 못난 소인배같다는 자책을 없애진 못한다. 어쨌든 2차 대전을 소재로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졌듯이 이번 사건도 향후 50년 동안은 울궈먹을 소재가 될 것 같다. 그러다가 갑자기 우울해진다. 아무래도 앞으로 다가올 시기는 힘든 시기가 될 것 같다. '레이건-나까소네-전두환'이라는 황금의 트리오가 지배하던 시기의 일이 악몽처럼 떠오르니 말이다. 무엇보다 이번 테러를 감행했던 사람들이 진정으로 바랬던 것은 무엇일까. 이게 제일 궁금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도가 없다. 그들은 그냥 '악의 무리'일 뿐이다. 하긴 체 게바라가 사살되었을 때도 '산적'이나 '테러범'으로 취급했을 뿐이었으니까. 20010912 * [씨네 21]에 게재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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