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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감옥에는 '사상범'이 없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불온한 인물은 '총기사범'이
되고, 문화적으로 퇴폐적인 인물은 '약물사범'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총기야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약물이란, 위해성에 대한 의학적 논란을
차치한다면 국가가 개인을 통제하는 수단이라는 말인가? 적당히 방치하다가
필요하면 규제하는 듯한 양상은 이런 의심을 뒷받침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불온'이라는 딱지뿐만 아니라 '퇴폐'라는 딱지도 자의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은 <국가보안법>과 더불어
개인을 통제하는 법인 셈이다. 물론 이런 실정법들과 더불어 "'빨갱이'와
'마약쟁이'는 용납할 수 없다"는 '국민정서'가 존재한다. 누가
만든 정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과거의 통제전략은 '일벌백계'나 '발본색원'같이
무조건 족치는 식이었지만, 최근에는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건 대체로 격리지구(ghetto)를 만들어 주고, '여길 벗어나면 큰일
날 줄 알아'라고 엄포를 놓는 방향을 취하고 있는 것 같다. 불온한 존재들은
'학계'로, 퇴폐적 존재들은 '연예계'로 몰아넣고,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관용도 베푼다. 예를 들어 '학술적
목적으로' 사회주의와 혁명을 논하는 일에 대해서는 이제 별다른 제재가
없는 것 같다. '예술적 목적으로' 약물을 사용하는 것에는 아직도 법의
잣대가 엄격한 편이다. 그렇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예술가가 약물을 하는 게 어찌 죄가 되느냐?"는 전인권의 소신을
소개해 줄 정도의 '배려'는 베풀고 있다. 그것도 '보수'를 자처하는
언론에서. (예를 들어 <주간조선> 2001. 7. 10에 실린 존 레논의
전기에 관한 서평을 보길). 만약 '불온'과 '퇴폐'가 만나서 의기투합한다면?
그건 골치 아픈 일이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지식인'과
'연예인' 사이의 관계는 전통적으로 불편했고, 이 점은 '저항적' 지식인이거나
'반항적' 연예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은 연예인들의
방탕한 쾌락주의를 뜨악시하고, 연예인들은 지식인들의 근엄한 도덕주의를
싫어한다. 이런 분리가 재생산되어 사상이든 약물이든 각각의 게토에서
특정한 기능적 목적을 위해 사용되면 통제는 80% 정도 성공한 셈이다.
한쪽에서는 지적 쾌락을 위해, 다른 한쪽에서는 미적 쾌락을 위해. 그런데 아무래도 이런 말을 비웃고 있을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황수정 사건' 직후 나온 "방송가에는
오래 전부터 상류층 사람들과 인기 연예인들이 마약류를 투여하는 환각파티를
벌인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나돌곤 했다"(<스포츠서울>, 2001.11.15)는
기사를 보고 하는 말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상류 사회에서는 쾌락의
'사적 소유'조차 촌스럽다고 간주하면서 '쾌락의 공산주의'를 누리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이들의 쾌락은 지적이지도 미적이지도 않고 오직
쾌락을 위한 쾌락이겠지만. 상류층이 곧 권력층이라면 이들은 이미 손을 써놓은 상태일 것이다. 그래서 누가 약물복용으로 잡혀갔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기는커녕 '누구한테 잘못 보였길래 저렇게 됐을까'라는 궁금증을 유발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구속된 연예인들은 억울한 표정과는 반대로 '반성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선처를 호소한다. 당연하다. 돈이 걸린 문제이고, 시간이 지난 뒤 '성숙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다시 서면' 그만이니까. 그 점에서 박정희의 망령은 아직도 출몰하고 있다. '불온을 처단한 박정희'에 대한 단죄의 목소리는 꽤 커도 '퇴폐를 처단한 박정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크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식인들은 이런 문제에는 매우 과묵하다. 26년 전 '대마초 파동'같은 마녀사냥까지는 아니라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이는데도 말이다. 젠장, 나마저도 이런 골치 아픈 이야기보다는 '황수정 리스트'가 더 궁금하다... 20011116 * '공산주의'의 공식 용어는 '패거리주의',
'약물'의 공식 용어는 '마약'입니다. 연예인이라는 용어는 예술인이라고
쓰고 싶었지만 소통의 장애가 있을 것 같아 피합니다. * [씨네 21]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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