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월드컵 축구대회에 대해 내가 할 말이 뭐가 있을까? '별로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제까지 '국민적 축제'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대행사들이 '나'와는 별 관계가 없었다는 경험적 판단이 앞서기 때문인 것 같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이 그랬었고 이번 월드컵 축구대회에 대해서도 나는 무심하다. 그건 '관(官)'의 행사였지, 나같은 '민(民)'은 그저 구경꾼일 뿐이었고 훼방꾼으로 몰리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돌 맞을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렇다. '글의 마지막에 반전이 있다'는 말로 일단 돌을 피하고자 한다. 축구공을 직접 차본 지도 10년은 족히 넘은 것 같은데, 그건 아마도 군대에서 '군대 축구'라는 이상한 경기를 치른 후유증 때문인 것 같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축구에 지면 그날 밤 잠 못 자는' 불문율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불문율은 축구의 경기규칙보다 상위에 있는 규칙이라서 군대 축구 경기는 '반칙왕'이 많은 팀에서 승리하기 마련이다. 경기장에 투입된 공이 두 개이고, 선수의 숫자가 두 팀을 합쳐 40명에 육박한다는 사실은 나라밖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을 일이다. 그때 이후 나는 축구가 '야만적 경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실제로 야만적인 것은 '군대'이지 '축구'가 아니라는 생각이 나중에 들었지만 그건 그때의 '부상'에 대한 기억이 망각의 늪을 건너간 다음이었다. 비단 '군대 축구'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축구부가 있는 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같은 반에 편성된 '축구 선수'의 이미지는 정말 어떻게 표현이 되지 않는다. 같은 학급의 동료들보다 서너 살은 많아 보였던 그 축구 선수의 모습은 '축구는 저런 사람들이나 하나 보다'라는 편견만을 낳았을 뿐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 '차범근을 보러' 아버지를 따라 축구장에 간 기억이나 한때 요한 크루이프의 우아한 자태나 디에고 마라도나의 반항아적 면모를 좋아했던 일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서야 불현듯 떠올랐을 뿐이다. 축구를 하는 환경이 다른 나라들과 한국을 비교하는 것은 불공평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건 축구를 잘 한다, 못 한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단적으로 말해서 축구를 '기층 민중의 문화'로 삼는 나라와 '국위 선양의 수단'으로 삼는 나라의 차이다. '한국 축구의 16강 기원'은 나도 바라는 바이지만, 16강을 어떻게 '문화적으로'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 '있는 힘을 다해', '투혼을 발휘하여', '젖 먹던 힘까지'라는 과거의 수사들만 나올 뿐이다. 이런 수사들은 나를 매우 불편하게 한다. 게다가 월드컵이 열리면 더욱 불편해 할 일이 발생할 것인데, 이는 단지 '선수'나 '팀'의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의 문제다.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이번 월드컵 때 몰려오는 젊은 축구 팬들의 행동이나 사고는 대다수 한국인들에게는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들을 그저 '원활한 경기진행을 위한 통제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고, 이들과 어떻게 하면 문화적으로 교류할까라는 '마인드'를 갖추는 게 필요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를 통해 한국 사회가 진정 문화적으로 '개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외국 기업에게 투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만 개방이 아니라 진정으로 마음을 여는 문화적 개방이... 그래서 1년 전 인터넷에서 만났던 카메룬의 한 청년이 '월드컵이 열리면 재워 달라'던 부탁을 들어줄 수 없게 되어서 안타깝다. 주지하듯이 카메룬이 속한 조의 경기는 한국에서 열리지 않고, 조 추첨이 불운해서 카메룬이 본선을 통과할 확률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속으로 '이거 귀찮게 생겼군'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래서는 안 될 텐데... 이건 개인의 선의의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일 텐데... 020403 * [수원 싸커]에 게재됨. |
GENERAL VIEW:
목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