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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전과(前過)'가 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법률에 저촉되어 잠시 어디에 다녀온 일이 있다.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랑스러워하기도 우스운 일이다. 지금 할 이야기는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그때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사람들은 가족밖에 없었다. 정치적 성향이나 문화적 취향 모두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부모까지도 '자식의 일'에 발벗고 나섰다. 그에 반해 '동지'나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들은 면회는 고사하고 편지 한 통 제대로 보내준 것 같지 않다. 나의 인덕의 부족 탓이었을까? 물론 그 점도 있겠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나의 '동지'나 '친구'가 비슷한 일을 당했을 때 나 역시 비슷한 무관심을 보냈으니까. 그래서 한국인에게 가족은 각별한 제도다. 설령 젊은 시절 가족을 싫어하던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가족의 따뜻한 품에 돌아오는 것이 보통이고, 예외적으로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그리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래서 가족을 생각하면서 '엉엉 우는' 모습을 보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다. 이렇게 가족이 각별한 존재인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까지일까? 하지만 '개인을 보호해주는 사회적 장치'를 비교하면 중요한 차이가 발견된다. 국가는 개인을 보호해 주지 않는가? 한국 정부는 '명령하는 정부'이지 '보호해주는 정부'가 아닌 것 같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복지 정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가 무섭게 사회주의니 좌파니 하면서 '색깔론'을 들먹이는 곳은 '국가'와 밀접하게 관련된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학교나 교회 같은 사회적 장치들도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하다. 그래서 개인이 보호받고 싶다면 가족에 집착할 수밖에 없고, 가족의 형태가 유난히 '표준적'(4인 가정?)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단적으로 말해 가족이란 현대 사회의 정글에서 전쟁을 치르고 나와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따라서 싫더라도 어쩔 수 없이 매이고 코 꿰어야만 하는 대상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순수한 애정이라기보다는 지긋지긋한 애증에 가깝다. '내 자식은 반드시 출세시켜야지'라는 일념으로 애들을 잡아대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애정'이 이런 애증의 대표적 예다. 그 결과는 살벌한 가족 이기주의다. 이웃의 가족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내 가족의 경쟁상대'이기 때문 이상은 아니다. 이웃의 가족의 어려움에 대해 관심을 표현하면 그 가족으로부터 '약 올리냐', '잘난 척 하냐'는 반응을 듣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면 대안은? 다른 나라를 둘러보면서 점검하는 수밖에 없겠다. 한 극단에 가족 내에서조차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해주는 미국 같은 사회가 있고, 다른 한 극단에는 국가의 수반을 '어버이'라고 부르면서 나라 전체가 한 가족 같은 북한(혹은 이라크) 같은 사회('악의 축'들?)가 있다. '어느 편이 좋을까'라고 묻는다면 다시 한번 국가보안법에 저촉될지 모르니 '노 코멘트'하겠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한국은 두 극단을 피하는 원만한 케이스거나 아니면 두 사회의 단점만을 결합한 최악의 케이스이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는 정도다. 어떤 사람에게는 전자일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후자일 것이다. 당신은 어느 편인가? 020404 * [도베]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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