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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한테 왕따되기

  '요즘 애들을 잘 이해하는 어른'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살아갔건만 몇 주 전 있었던 사건은 이게 순 착각이었음을 말해 주었다. 작년 여름 인기 댄스그룹인 H.O.T와 젝스키스에 대한 음반평을 쓴 적이 있었는데 지면(아니 '웹'면)이 애들이 많이 보는 곳도 아니라서 '성인들이 아이돌 댄스 그룹 감상하는 법'이라는 주제로 썼다. 반응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음반평 중에 "설마 젝스키스 팬들이 이 글을 볼라구"라는 표현도 썼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최근에 웹진 게시판으로 이런 글이 날아왔다. 원문 그대로 옮겨 보겠다.

  "너무합니다. 전 젝키 오빠들의 팬입니다. 여기에 이런 글이 있더군요... 오빠들의 4집을 HOT와 비교해서 써놓은 글이.. 설마 젝키 팬이 그 글을 보겠느냐 하셨는데.. 보고야 말았습니다.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는... 다른 팬이 와서 보고는 팬페이지 게시에 가보라고 했더군요.. 그 글 읽은 젝키 팬이 저 뿐이 아닐줄로 압니다. 그렇게 가수의 팬이 보지않을 거라고 그런 비방을 쓰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화가 나지만... 앞으로는 그런일 없기를 바래봅니다. 그 글 읽는 팬은 얼마나 마음이 상하겠습니까? 아무튼 실망이 컸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기를 바라네요.. 지금 여러모로 힘든 젝팬을 더 힘들게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오빠들을 욕하는 것은 저희 젝키 팬을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란 사실을... 알아주시길 바라며.. 제가 올린 글에 대한 잘못된 사항이 있으면 메일로 지적을 해주시고... 그냥 막무가내로 이 글을 지워버리진 말아주세요... 지우신다면 이유라도 알려주시길 바라며... 아직 어리지만... 그저 저의 생각을 옮겼을 뿐이니..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인기 댄스그룹에 대해 무심코 쓴 표현으로 곤욕을 치렀다는 기자들의 '필화 사건'도 익히 들은 바 있지만, 남의 얘기로만 알았는데 막상 당하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위 글의 발언 수위가 그리 높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새파란 애들'이 대드는 것에 대해 기분좋을 어른이 어디 있겠는가.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비방이라고 생각하는 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들을 욕하는 것'과 '팬들을 욕하는 것'이 마찬가지라는 사고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소녀 팬들의 변덕'도 익히 경험해왔던 바라 다음과 같은 글을 답변으로 남겼다.

  "어쨌든 불쾌했다니 미안하네요. 그런데 에쵸티랑 비교해서 기분 나빴다면 그건 오해인 듯. 에쵸티 리뷰를 보세요. 적어도 공평하다는 걸 알테니까. 그리고 젝키나 젝키 팬에 대해서 감정 있어서 그런 거 아닙니다. 어린 학생이라고 하는데 정말 팬이라면 앞으로 10년 이상 젝키 좋아하시기 바랍니다. 더 잘생긴 오빠들 나온다고 마음 바꾸면 안돼요! 젝키 멤버들도 그 동네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생리와 잘 싸워나가길 마음 속으로나마 성원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대충 타협한다면 미워할 거에요. 기분 풀고 좋은 휴일 되세요"  

  "10년동안....... 우와 잔인하다..^^;; 비아냥 거린 다음 기분을 풀라고 하시다니... 아이들은 어른들의 그런 말투에 거부감을 느끼기 마련이지요.. 삐진답니다... 여하튼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어린 학생 치고는 점잖은 말이었지만 '어른들의 그런 말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애들하고 싸워서 뭐하나'라는 생각에 더 이상 정색하고 답변하지는 않았지만 새삼스럽게 '벽'을 느끼고야 말았다.

  따지고 보면 '어린 학생들'의 심정에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 '대중스타에 대한 열광' 말고 그들이 '권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을까(하나 더 있다면 '농구장'일 듯하다). 권력이라는 말이 좀 거북스럽지만 적당한 용어가 없다. '파워'라는 영어단어를 떠올리면 조금 나으려나. 아니면 한국 지식인의 식민근성이려나. 어쨌든 스타를 통해 권력을 찾는 현상이 최근의 것만도 아니다. 지금은 '엄마'가 된 과거의 소녀들도 예전에는 '오빠 부대'의 일원이었다. 이상해 하는 것은 '뭐가 그리 좋을까'라는 의문을 품었을 정도로열광적이었던 소녀들이 시간이 흐르면 싸늘해진다는 점이다.

  갑자기 '애들 비판'에서 '여자들 비판'으로 바뀐 듯하다. '남자 어른'의 편견이 어디 가겠나? 따지고 보면 소녀 팬들의 열광은 스타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것'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들이 좋아했던 스타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보통의 여성의 경우 결혼한 뒤 '가정'이라는 작은 권력을 소유하게 되면서(자기 집의 '인테리어'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혼 남자는 없다) 굳이 가정 밖에서 열중할 수 있는 대상을 찾을 필요가 작아진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조금 고상한 취향을 개발하든가. 물론 직업을 계속 가지는 경우 직장에서 권력을 추구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아직도 그리고 당분간 특권적 소수에만 해당될 뿐이다.  

  얼마 전 TV를 보다가 '문화'라는 영역이 '10대'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뉴스 보도를 접했다. 그렇군. 나같은 '성인 남성'은 문화라는 영역에서 '왕따'로군.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재의 '오빠들', 즉 남성 아이돌 스타들도 그곳 생리상 곧 왕따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문화에서 왕따가 되면 '경제'나 '정치'로 보상받으려는 게 남성중심사회의 법칙인가 보다.   

* [우리교육]에 게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