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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의 '시스템'에 관하여  

시스템

  요즘 많이 들려오는 용어 중의 하나가 '시스템'이다. 새롭게 만들어진 용어도 아니지만 유난히 많이 들린다. 직장인들이 많이 모인 술자리를 가보라. '시스템이 어떻다'는 이야기는 마치 술안주같다. 또한 논의의 대세는 한국은 시스템이 '잘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외국'과의 비교도 종종 들린다. 그러고 보면 시스템 타령은 '한국을 탓하고 외국을 동경하는' 한국인의 오래된 관습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렇게 치부하고 말아 버릴까? 하지만 허무주의적 입장은 일단 유보하자.

  내 견해로는 시스템이라는 용어는 급변하는 컴퓨터의 운영체계(O/S) 때문에 보편화된 듯하다. 컴퓨터 말고도 다른 요인들도 있으리라. 하지만 도스에서 윈도우로, 윈도우 95에서 윈도우 98로, 또 윈도우 2000으로 변해나가는 운영체계의 변화가 우리의 정신세계에 미친 변화가 워낙 심오했고, 그러다 보니 사회의 모든 영역에 시스템이라는 용어를 적용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진 듯하다.  

  여기가 시스템에 대해 자세히 정의하고 설명할 자리는 아닌 듯하다. 그럴 능력도 없고. 단지 그게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가는 추출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용어는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무언가를 지칭한다는 준다. 완전 자동은 아니라도 적어도 반(半) 자동으로.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는 뜻은 인간의 손길이나 '정성'의 개입을 최소화시키면서 돌아간다는 의미로 해독되고 또 그렇게 소통되고 있다. 똑같은 말이지만 '시스템이 안 되어 있다'는 무언가 사람이 하는 일이 많은 상태를 지칭한다. 한마디로 좋은 시스템은 스트레스를 없애주고, 나쁜 시스템은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좋은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의지는 귀찮고 번거로운 일을 피하려는 의지와 동격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기능적으로 효율적이고, 금전적으로 이득이라는 것이 최근 한국 사회의 윤리다.

  본론으로 슬슬 들어가 보자. '문화도 시스템이다'라는 말이 있다. 문화적 생산 역시 경제적 생산처럼 기능적으로 잘 돌아갈수록 좋다는 뜻이 될 것이다. 문화 역시도 생산성으로 측정된다는 말도 된다. 시스템, 생산성 이런 말들은 '산업'이라는 분야에서 익숙한 말들이다. 문화가 산업이냐고? 단칼에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문화적 생산이 산업적 생산을 닮아간다'는 과정에 전반적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문화 영역에서 어떤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자. 물론 이 글의 주제인 대중음악계가 고찰 대상이다.

스타 시스템

  1980년대 이전에서 대중음악의 스타는 있었다. 있었던 정도가 아니라 매우 많았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스타 '시스템'이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았다. 그때와 지금은 뭐가 달라진 걸까? 한마디로 말해서 그때도 스타 시스템이 있었지만 스타를 만들어내는 일이 '체계적'이지 않았다. '체계적이지 않은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그걸 대중음악의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부를 수는 있을 지 모르지만 스타 시스템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직접 목격한 것이라기 보다는 전해 들은 바를 옮겨보면 1980년대 이전까지는 스타가 되고 싶은 사람이 밟아야 할 일련의 단계가 존재했다. 과정의 첫 단계는 작곡가 사무실에서 시작되었다. 그 이후의 과정을 간략히 요약할 수도 있다. 스타 지망생의 작곡가 사무실 방문 →유능한 인재의 발탁 → 가창 및 연주 훈련 → 극장이나 클럽 출연을 통한 무대 경험 → 신곡을 받고 음반 취입 → TV와 라디오 등 방송출연.

  이런 경력쌓기 과정은 지금도 '트로트 가수'의 세계에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통기타 가수'의 경우 자작곡을 부르는 경우가 많으므로 위의 표준적 체계와는 조금 다르지만 몇 가지 변형을 거치면 대체로 들어맞는다. 이 과정은 통상 몇 년의 시간을 요구하는 복잡한 것이고, 그래서 도중하차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도중하차하는 경우는 음악 활동을 완전히 접는 게 아니라 '별'이 되지 못한 채 음악인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앞서 시스템에 대한 논의를 염두에 둔다면 당시의 대중음악의 시스템은 자동적으로 홱홱 돌아가기보다는 인간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수동(手動)' 시스템이었다. 주로 음반사 사장과 전업적 작곡가의 '자의'가 많이 개입되었다는 뜻이다. 가수들이 이들에게 '인사'하러 다니면서 눈도장을 찍지 않으면 안되었다.

  예전 TV의 대중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보면 1등을 차지한 가수가 '앵콜곡'을 부를 때 대성통곡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갑자기 밀려와서였다고 잠정적으로 판단내려 보자. 그건 마치 '헝그리 정신'으로 권투 선수가 세계 챔피언이 되었을 때의 감정과 비슷해 보인다.
지금은 어떤가? 스타를 만드는 과정을 어떤 책에서 인용해보자. "공개오디션을 통한 가수 선발과정 → 정해 놓은 그룹 이미지에 알맞는 개인들을 선발 → 팀 이름에 맞는 개인 캐릭터 선정 → 음반 제작 → 춤 개발 → 타이틀 곡에 적합한 패션과 코디 선정 → 기획사의 기자회견 → 공식 데뷔 → 각종 방송활동 → 팬클럽 조직 → 대형 라이브 개최 → 방송활동 중단 → 새 음반작업 착수". 최근 스타가 된 조성모와 SKY같은 경우는 여기에 하나의 과정이 추가되었다. '뮤직 비디오'라는 매체가 그것이다. 음반을 발표하기 전 뮤직 비디오를 케이블 TV로 내보내는 전략이 그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수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함구하여 신비감을 조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뮤직 비디오를 전광판에 담거나 시내버스 옆에 현수막 형태의 광고판을 붙이는 전략도 등장했다.  

  과거와 비교한다면 현재의 시스템은 매우 체계적이고 '전략적'이다. 시스템의 주체는 음반 제작의 전과정에 개입하는 주체(이른바 '음반사')가 아니라 음반을 기획하고 음악인의 매니지먼트에 특화한 주체(이른바 '기획사')다. 기획사가 모든 것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음반사는 단지 음반만을 '찍어낼' 뿐이다. 이런 시스템은 적어도 효율성 면에서 이전보다 개선되었다. 스타가 되기 위한 채널은 기획사와 방송사 사이의 창구로 단일화되어있다. 사람의 손길이 이전보다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한 지점에 특화되어 단일화되었다는 것이 현 시스템의 특징이다. 기획사 매니저는 마치 CPU(중앙처리단위)같고, 가수들은 플로피 디스크같다. CPU의 성능은 날로 개선되고 플로피 디스크는 자주 교환된다.

  그 결과 이전처럼 가수와 작곡가 사이의 인격적으로 친밀한 관계는 더 이상 필요없고, 가수들은 기획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일부는 스타가 된다. 가수와 매니저의 분리, 음반사와 기획사의 분리가 현재의 효율적 시스템의 특징이다. 기획사는 기존 음반제작사는 물론 다국적기업의 국내 지사(이른바 '직배사')보다 자금력에서 열등해도 기동력에서 월등하다. 그 결과 한국 대중음악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전체 시장에서 국내 대중음악의 비중이 70%를 넘는 나라는 폐쇄적인 문화권을 제외하고는 발견하기 힘들다.  
 
'인디' 시스템 혹은 반(反) 시스템

  스타 시스템이 불만스러운가? 소수이지만 불만인 사람이 있고 불만의 '강도'는 매우 높다.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음악다운 음악', '가수다운 가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소망은 무엇인가? 1980년대 민중가요처럼 시스템의 '외부'에 있는 완전히 비상업적인 음악? 그건 아닌 듯하다. 대안적 시스템은 대략 '인디'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인디란 무엇인가? 인디펜던트의 약자니까 원론적인 의미로는 '독립'이라는 뜻이다. 무언가 비장한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경제학 용어로는 '자영업'이라는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거대 기업조직으로부터 독립된 자영업, 그러니까 회사 다니다가 나와서 차린 사업은 모두  '인디'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인디 역시도 비즈니스다.

  그렇다면 혼동스럽다. 앞서 본 기획사도 '인디'인가? 기업 형태의 분류 상으로만 본다면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다. 실제로 방송사와 음반사에 의존적인(dependent) 기획사들을 인디라고 부르기는 곤란한다. 큰 성공을 위해서 일로매진하여 '주류'를 장악하고 싶은 지향에 이런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디 비즈니스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소박하게도 이윤이 아니라 생존이고, 확대가 아니라 현상 유지다. 그게 인디의 시스템이다. 실제로 인디의 시스템은 수동 시스템의 성격이 많이 잔존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본다면 말이다. 인디란 용어가 없던 시절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이라고 불렸던 음악들 중에는 이런 움직임이 있었다. 들국화, 시인과 촌장, 신촌 블루스, 어떤 날 등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본인들이 이런 말을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인디의 선구자 혹은 프로토 인디(proto indie)라고 불러보자. 1990년대 중반 이후 여러 곳에서 인디 밴드, 인디 음악, 인디 씬(scene) 등의 용어를 선명하게 내세운 일군의 흐름이 등장했다.  

  그렇지만 아직 찻잔 속의 태풍같다. 라이브 클럽들은 여전히 경영난이고 인디 음반들은 손익분기점을 못 넘는다. 인디의 시스템은 다분히 수동적이다. 버벅거리는 낡은 컴퓨터의 시스템같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추상적 차원에서 말한다면 혹시 현상유지라는 지향이 '보수적'이라서 그런 걸까? (대)기업 체제로부터 독립된 인디라는 환상은 낭만적인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의 변종 아닌가? 그럴 지도 모른다. IMF 체제 극복 이후 다시금 '앞만 보고 달려나가는' 한국 주류 사회의 분위기에서 '성장과 확대'가 아닌 시스템을 논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한국에서 인디의 시스템이란 주류에 부착된 하위 시스템, 또하나의 시스템이 아니라 반(反) 시스템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디의 에토스는 전업주의(professionalism)에 반대하는 부업주의(副業主義)다.

  이런 시도가 디지틀 문화, 구체적으로는 인터넷을 통해 가능할 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과연 그럴까? 조심스럽게 희망과 기대를 품어보며 디지틀 테크놀로지의 영향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알아 보자.  
    
* [황해문화]에 게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