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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계의 이상한 '멀티컬처'
한국의 스포츠계와 대중음악계의 최근 경향의 공통점은? 점차 '멀티컬처'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차이점은? 스포츠계에는 '진짜 외국인'의 비중이 증가하는 반면, 가요계에는 '가짜 외국인'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농구장 가면 이건 뭐 거의 힙합 뮤직 비디오 보는 기분이고, 야구장 가면 백인, 흑인, 히스패닉이 드문드문 오가는 LA의 코리안 타운같다. 축구장은 백인이든 흑인이든 어쨌든 미국인 대신 유럽, 러시아, 중남미, 아프리카에서 온 서로 다른 피부색의 선수들이 즐비하다.
대중음악계는? 아직까지 한국을 주요 무대로 활약하는 외국인 가수는 없으니까 스포츠계와는 많이 다르다. 하긴 신체만 잘 놀리면 통하는 스포츠계와 달리 언어와 관습 등 문화가 다르니 외국인이 스타가 되기는 어려운 일이라는 점은 상식이다. 박일준, 인순이, 윤수일같은 혼혈 음악인도 이제는 찾기 힘들다. 아, 윤미래가 있구나. 하지만 이 경우도 미국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 경우이므로 예전과는 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중가수들은 충분히 '이국적'이다. 앞서 윤미래 이야기도 했지만 미국 흑인의 음악인 힙합과 R&B는 이제 우리 안방을 점령한 지 오래다. '추리닝'같이 헐렁한 바지를 입고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면서 주절주절 혹은 지근지근 랩을 '씨부려대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미국 메트로폴리스 뒷골목의 흑인들 모습이다. 아니다. 그러기에는 좀 삐까번쩍하다. 좌우지간 흑인이 미국 흑인만 있는 건 아니고 미국 밑의 자메이카 흑인의 모습도 오래 전부터 많이 보여 왔다. 이른바 레게 말이다. 머리카락을 밧줄처럼 칭칭 딴 드레드록(dreadlock)은 여가수들이 많이 하던 모습이다. 그래서 '드레드록 헤어스타일을 한다'의 미장원 용어는 '레게 딴다'라고 한다.
자메이카는 영어 비슷한 말을 모국어로 쓰는 나라지만 그 옆의 카리브해의 섬나라들은 대체로 스페인어를 쓰는 '라틴' 나라들이다. 이국적인 야자수, 넓은 백사장, 비키니 입은 여인들이 떠오르는 풍광이다. 이런 모습도 안방에서 볼 수 있다. 작년에 박미경이 가슴이 반 정도 보이는(=반 정도 안 보이는) 의상을 입고 나와 노구를 이끌고 라틴 댄스 시범을 보이더니, 백지영이 곧 그 뒤를 이어 요즘 한참 잘나간다.
'가요 프로그램'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TV 쇼 프로그램 봤더니 요즘 뜨고 있는(=곧 가라 앉을) 댄스 그룹 여자애들이 우루루 나와서 수영장에서 다이빙 장면을 보여주었다. 다들 시원시원하게 훌러덩 벗어 던지고 방송국 PD가 시키는 대로 잘도 하더라. 그 중에 의상이나 생김새가 인도풍인 애들이 눈에 띄어서 유심히 봤더니 샤크라라고 하더라. 아항, 룰라의 이상민이 키우는 애들이 쟤들이구나. 영국에 사는 인도계 주민의 방그라(bhangra)가 레게와 불가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식한 나로서는 '그럴 법하다'고 속으로 잘난 척 하게 된다.
5월 둘째 주 심야 연예 보도 프로그램을 보니 '테크노 여전사'(테크노로 전쟁할 일 있냐?) 이정현이 미국 시장에 곧 진출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이제 이정현이 미아리에서 빌려서 디자인한 듯한 의상으로 뮤직 비디오 찍어서 MTV 화면만 주름잡기만 하면 게임 끝이다. 그 야시꾸리한 의상을 '한국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꽤 많더라구. 나한테는 '이국적'으로만 보이던데. 어쨌든 안방에 앉아만 있어도 세계여행과 시간여행 모두 시켜 주는 위대한 한국 TV 그리고 한국 가요 만세! 짝짝짝!
* MTV 코리아 웹진 <Mzine>(http://www.mtvkorea.co.kr)에 게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