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 VIEW:
mp3 중독증에 걸린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
K군은 대학생이다. 그는 이른바 'mp3 junkies'에 속한다. 정키가 무슨 말이냐고? 입으로 직접 발음해 보고 각자 '필'을 느껴봐라. 나는 '무엇엔가 빠져서 헬렐레하는 사람'이라고 자의적으로 정의내리겠다. K씨의 일과는 대학교의 전산실에서 시작된다. 시험때라 요즈음은 자리잡기가 힘든 편이라 아침 일찍 나온다. 그리곤 구석 자리에 앉는데, 그가 구석을 고집하는 이유는 왠지 '주위의 시선'이 의식되기 때문이다.
K군은 어린 시절부터 '녹음병'에 걸렸던 일이 있다. 중급 수준에 속하는 국산 오디오가 집에 있었지만 오디오를 '가구' 개념으로 인식하는 엄마가 텔리비전 옆에 놓은 바람에 그건 무용지물이었다. 엄마는 텔리비전 방송이 없을 때 라디오만 겨우 들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방에는 포터블 카세트 데크만 있었는데 그는 이걸 가지고 라디오로부터 흘러나오는 팝송을 공테이프에 녹음하곤 했다. 물론 음질은 불만스러웠다. 요즘의 '소프트 터치' 버튼 이전에 스톱 버튼을 누르면 '틱'하는 소리가 녹음되었는데 K군은 이 소리를 몹시 듣기 싫어던 인물이었다. 게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불후의 명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틀어줄 것인지 노래의 앞과 뒤에 사설을 늘어놓은 DJ의 목소리도 영 듣기 싫었다. 엄마와 아빠가 잠든 사이 마루에 나가 LP 레코드를 공테이프에 담아서 다음 날 워크맨으로 듣는 일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물론 한번은 실수로 스피커 볼륨을 끄지 않고 녹음을 하던 중 잠옷 차림으로 나온 엄마한테 "오밤중에 뭐하니?"라고 혼구멍을 난 적도 있다.
그러던 중 K군이 대학교를 들어갈 무렵 CD라는 레코드가 LP를 싹쓸이했다. CD는 LP의 직직거리는 잡음이 없는 황홀한 음질을 들려주었다. 그렇지만 이게 왠 일. CD는 LP보다 재료비가 훨씬 싸 보임에도 불구하고 LP 가격의 세배쯤 하는 게 아닌가. K군의 주머니는 날이 갈수록 얇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컬렉션은 빈약해졌다. 명문대를 가지 못한 K군은 카페와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늘어나는 소비지출을 만회해야 했다. 게다가 갈수록 늘어나는 공테이프는 정리정돈의 귀재인 K군으로서도 처치 곤란이었고, 이사라도 할 때면 이삿짐센터 직원들의 구박을 들어야 했다.
K군에게 서광이 시력이 나빠 공익근무요원으로 나라에 충성하던 무렵 K군에게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공익근무요원이 된 뒤 음악을 멀리하던 K군은 PC 방에 드나들면서 mp3라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K군은 특유의 바지런함으로 이 사이트 저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mp3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곤 이걸 공 CD에 담으면 일반 오디오 CD의 11배를 담을 수 있다는 정보를 얻어서 용산에 가서 CD 레코더도 싼 걸로 하나 장만했다. 그리곤 부지런히 CD를 구워댔다.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음반의 경우 정품과 똑같이 굽는 일도 가끔은 했지만 K군은 이런 일은 가급적 삼갈 정도의 양심은 있었다.
이런 일은 부지런떨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복학한 뒤 그의 주위에는 'mp3 좀 같이 듣자'고 말하는 친구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음악을 혼자만 듣고 좋아하는 마니아라기에는 마음 좋고 사람 좋은 K군은 친구들에게 선물도 하곤 했다. 최근에는 미국에 있는 삼촌에게 연락해서 새로 나온 mp3 discman도 구해서 모든 것을 해결한 듯한 뿌듯함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두 가지 문제가 생겼다. 자기는 이제까지 살면서 남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다고 생각한 K군이지만 자신의 행동이 '불법'이라는 주장을 여기저기서 듣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의 우상이었던 미국의 M모 밴드가 이런 말을 할 때는 망연자실해야 했다. 'mp3 때문에 CD가 안 팔린다'는 음반업계의 주장을 듣고는 '나같이 용돈의 60%를 CD 구매에 지출하는 사람한테 저럴 수가...'라는 억하심정마저 다가왔다. 두 번째는 더 심각한 문제였다. 친구들의 부탁을 들어주다보니 K군은 음악을 들으러 mp3를 다운로드받는 건지, 아니면 mp3를 다운로드받기 위해 음악을 듣는 건지 구별이 안가는 지경에 처하고 말았다. 예전에는 한곡 한곡 정성스럽게 듣고 제목이 뭔지는 기본이고 가사도 읽어보고 꿈에 잠기던 K군이었지만 요즘은 곡이 귀에 안 들어오면 30초도 안 듣고 다른 곡을 클릭해버린다. 곡 제목은 고사하고 연주한 뮤지션의 이름도 귀에 잘 안 들어오게 되었다. 그냥 라디오를 듣듯 100여곡이 담긴 mp3 CD를 걸어놓고 건성으로 듣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요즘 K군은 집에 오면 옛날에 듣던 LP나 테이프를 듣는 일이 잦아졌다. 그때 듣던 레코드나 테이프는 한곡 한곡 제목이나 가사가 잘 떠올랐다. '그때가 좋았지'라고 K군은 상념에 젖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그 노래를 부른 사람과 도대체 무슨 관계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이란 그냥 주위에서 흘러 다니는 것 아닐까?라고 자뭇 심각한 표정마저 지어보았다.
* (아직) 발표되지 않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