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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악 문화의 이상한 특징

다른 나라의 경우 어떤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한국인은 '우리'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그때 의 우리란 '국가와 민족'이다. 가족이나 학교를 가리킬 때도 있지만 이런 건 부차적이다. 대중음악도 마찬가지다. '우리 가요'라는 말은 한국 대중음악의 축약어이자 대체어다. 아예 그냥 '가요'라고 부르는 게 '우리'의 더 일상적인 용법이다.

'우리 국민이 사랑하는 음악이고 노래'인데 뭐가 문제냐고 묻는다면 할 말 없다. 또한 바쁜 현대 사회에서 단어가 짧아지는 현상이 다반사다. 하지만 찜찜한 게 있다. 대중음악 평론가 강헌이 주장했듯이 가요라는 용어는 일제의 식민지배의 상징인 '기미가요'로부터 유래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존재한다. 그걸 눈감아 준다고 해도 하더라도 보통명사에 지나지 않는 단어를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음악 장르로 통용하는 것도 또하나의 찜찜한 이유다.

허나 어쩌랴. 언어라는 것이 엘리트에 의해 논리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일상적 사용에 의해 굳어지는 것임을 인정한다면 용빼는 재주 없다. 대중매체는 아무 생각 없는 건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굳어진 것인지 음악 프로그램의 제목들에 이 단어를 사용한다. '가요 무대', '가요 콘서트', '가요 앨범', '가요 산책'.... 이 모든 프로그램에서는 가요가 '우리'의 삶의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강헌은 가요라는 말 대신 노래라는 말을 사용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된다. 한 자료에는 "가요라는 말을 쓰지 맙시다. 우리에게는 노래라는 좋은 말이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우리'에 대한 추구는 여전하다. 오래 전 이야기지만 1980년대의 대표적인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이 함께 모여 발표한 옴니버스 앨범의 제목 역시 '우리 노래 전시회'였다.

그 결과 노년층이 즐겨 듣는 트로트부터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테크노까지 모두 '우리 가요'다. 트로트도 테크노도 우리에게는 익숙하다. 트로트는 '왜색'이라고 비난받아 왔는데 이제는 우리의 음악적 전통처럼 인식되고 있다. 테크노의 원산지는 유럽이나 미국 어딘가의 나이트클럽일텐데 테크노는 우리 국민정서에 익숙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백지영은 라틴 여인같고, 샤크라는 인도 여인같고, 이정현은 이집트 여신같다. 이런 현상을 보고 '국적불명'이라고 개탄하는 목소리도 예전같지 않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게 요즘의 문화적 세태다. 하지만 '우리'의 음악적 정서가 무언지는 묘연하기만 하다.

언젠가 나는 다른 글에서 '가요'라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를 논한 바 있다. 간단히 말하면 그것은 음악의 풍부한 뉘앙스를 노래(혹은 곡조)로 환원시켜버린다는 가설이었다. 이 글의 주제는 그것보다는 그 앞에 붙는 '우리'라는 단어다. 거창하게 말하면 대중음악이라는 장(場)에서 형성되는 한국인의 정체성이다.

우리 가요는 '뽕끼'라는 가설이 있다. 복잡한 이야기를 거두면 뽕이란 뽕짝이 변형된 것이다. 논자에 따라서는 한국에서 인기있는 모든 가요는 뽕이다. 신승훈은 뽕 발라드, 클론은 댄스 뽕, 심지어 이소라도 재즈 뽕이다. 이런 경험적 견해에 대한 비판적 평가도 다른 글에서 언급했으므로 생략할 것이다. 어쨌든 '일리'는 있는 얘기다. '일리'만 있는 얘기지만.

내가 듣기로 가장 뽕끼 넘치는 사운드는 노래방에서 흘러나온다. 에코우와 리버브(잔향)라는 음향 효과를 듬뿍 집어넣은 벙벙한 사운드 말이다. 뽕끼에는 다른 특징들도 있다. 가수의 창법, 악곡 형식, 리듬 패턴 등등. 하지만 이런 건 전문가들이나 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가장 일차적인 것은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사운드의 효과다.

노래방 말고 몇 군데 더 있다. 여름에 제철을 만나는 유원지나 사철 변함없는 관광버스에서 들려오는 '도롯도 메들리'다. 춤 이름을 따서 '지루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것도 외국어 'jitterbug'의 와전이다. 싸구려 전자 키보드가 시종일관 뽕짝뽕짝거리고 마이크는 악기가 되어 목소리를 변조한다. 대중음악 자체가 통속적이지만, 도롯도 메들리는 '더 이상 통속적일 수는 없다'는 점을 드러내놓고 과시하는 듯하다. 이게 한국적인 문화고 한국적인 정서다.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음악적 망명'을 하는 수밖에 없다. 클래식으로, 재즈로, 록으로, 힙합으로, 테크노로, '월드 뮤직'으로...

그런데 최근 기현상이 발생했다. 도롯도 메들리의 주역 한 명이 '컬트'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것도 보통 아줌마, 아저씨들이 아니라 나름대로 문화적으로 세련되었다는 젊은이들 일부로부터 말이다. 주인공은 관광버스 안내원으로 근무하면서 도롯도 메들리 테이프 몇 장을 발표한 바 있는 인물로서, 본명보다는 이박사라는 예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박사는 최근 라이브 무대도 가졌다. 장소는 홍대앞의 테크노 바였다.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처럼 고상한 취향의 소유자임을 자랑하는 곳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고상한 장소에 출입하는 사람들보다 문화적으로 더욱 첨단적인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테크노 바는 이정현이나 채정안같은 '테크노 가수'가 나오는 곳이 아니고, 일반 나이트클럽처럼 '부킹'를 목표로 선남선녀들이 '섹시'하게 춤을 추는 곳도 아니다. '진짜' 테크노, 그러니까 노래는 없고 전자음향의 비트가 흘러나오는 곳이다.

문화적 첨단을 자랑하는 장소에서 '천박한' 음악의 대명사였던 뽕짝이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무얼까? 하나의 시각이 있기는 하다. '3류 문화'나 '넘버 쓰리'에게도 나름의 발언권을 주자는 식의 시각이 그것이다. 한 예로 한 방송국의 시사 도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이박사의 뽕짝 메들리를 '에로 비디오'에 비유했다. '나도 스타'라는 시각 말이다. 그들에게는 이런 문화가 '스타 시스템의 마이너 리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뭐 눈에는 뭐밖에 안보이니까. '천박하다'고 간주되는 문화적 소재를 이용하여 존중을 받는 예술을 만들 가능성은 애초부터 봉쇄하는 시각이다.

비주류 음악인들 중에서 싸구려스럽고 천박한 소재에서 예술의 영감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1990년대 초반부터 있어왔다. 황신혜 밴드, DJ 달파란, 볼빨간, 어어부 프로젝트 사운드 등이 그들이다. 볼빨간이라는 젊은 음악인은 "나는 육체의 환타지"라는 곡 제목 뒤에 '이박사에게 바침'이라는 헌사를 붙여 훨씬 전에 지금의 이박사 컬트 현상을 예고했다. 또하나. '미국 펑크 밴드'처럼 보였던 크라잉 너트는 작년에 발표한 음반에서 한국의 싸구려 문화와 영미의 펑크 록을 결합시키는 시도를 했다(혹자에 의하면 크라잉 너트의 멤버들은 이박사의 팬이라고 한다).

외국어를 빌려와서 면구스럽지만 루츠(roots)나 그래스루츠(grassroots)라는 단어가 있다. 영어 사용권 나라들에서 자기들의 음악적 전통을 지칭하는 단어다. 미국의 경우는 포크, 블루스, 컨트리, 블루그래스(bluegrass), 케이준(cajun), 자이데코(zydeco) 등이 대표적인 음악적 루츠들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런 음악들을 듣고 있으면 20세기 초 한국의 대중가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게 있다면 후대의 사람들의 태도다. 한편에는 음악적 뿌리들을 갈고 다듬어 나름대로 존중받는 음악으로 만드려는 문화적 태도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어차피 천박한 것이라고 치부하여 한시적인 향락의 대상으로 삼는 문화적 태도가 있다. 전통을 토대로 음악적 혁신을 단행하고 버젓한 비즈니스로 성립시킨 문화와 별다른 혁신 없이 지하경제로 만들어버린 문화의 차이다.

나는 지금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좋다'는 가치판단을 내린 것은 아니다. 그런 가치판단이 내려지자마자 문화 제국주의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 영국의 록 스타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블루스의 제왕' 비 비 킹(B.B.King)과 함께 음반을 낸 사실을 듣고 '부러움'을 숨길 정도까지는 못된다. 에릭 클랩튼은 50줄이 넘었고, 비 비 킹은 고희를 넘긴 상태다. 그래도 '새' 음반을 발표하고 있다. 블루스는 정말 '흙냄새' 나는 음악이고 20세기 초의 블루스는 '각설이 타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차이를 지적하면서 나는 전자가 미국을 비롯한 문화 선진국, 후자가 한국을 비롯한 문화 후진국이라고 말한 것인가. 솔직히 그랬던 듯하다. 이건 음악 애호가들의 좋지 않은 관습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최근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개봉되었던 도큐멘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을 통해 '후진국'인 쿠바의 음악계를 간접 체험해보고 든 생각이다. 'social'을 '사교'라고 번역하지 않고 굳이 원어 그대로 사용한 것은 우리에게 '사교 댄스'의 이미지가 워낙 칙칙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소재가 된 쿠바라는 곳의 '소셜' 클럽도 한국의 '사교' 클럽과 진배없다. 실패로 끝나가는 사회주의 실험 이전의 쿠바는 친미 분위기의 나라였고, 사탕수수 수출과 더불어 미국인 관광객으로 먹고 사는 나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음반에 등장하는 이브라임 페레(Ibrahim Ferrer)는 72세이고, 루벤 곤잘레스(Ruben Gonzalez)는 77세이고, 꼼빠이 세군도(Compay Segundo)는 89세다. 퇴역이 아니라 현역(적어도 예비역)인데도 말이다. 이들의 음악은 우리에게는 '맘보'라고 통칭된다. 사실은 훨씬 복잡무변하다. 맘보? 몇 년 전 신승훈과 클론 등이 쏠쏠하게 한철장사 끝냈던 음악이고, 1950년대 블어닥쳤다는 맘보 열풍도 한때의 '경음악'으로 유행되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쨌든 '댄스 음악'이다. 그렇지만 댄스 음악도 이 정도면 품격이 있다. 직접 들어보는 수밖에 없는 점이 아쉽지만.

결론. '우리' 것이든, 남의 것이든 전통(루츠 혹은 그래스루츠)를 존중받는 예술로 승화시키지 않고 한때의 유행으로 소비하고 마는 게 '우리의' 음악 문화의 특징이다. 음악만 그런가. 그럴 리 없다. 왜 그럴까? 이유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할 것이다. 이유를 따지기 전에 천박한 것을 천박하다고 간주하는 게 가장 천박한 문화적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다수의 태도가 천박한 것을 고상하다고 우기는 소수의 태도와 평행선을 이루는 게 현재 한국('우리')의 문화적 지형도다.

최근 발표된 어어부 프로젝트 사운드의 앨범 <<21C New Hair>>의 대부분의 곡들은 방송 금지 판정을 받았다. 이들의 그로테스크하고 아이러니한 음악을 못 들었다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강원도의 힘> 엔딩 테마나 장선우 감독의 영화 <나쁜 영화>의 행려 편의 삽입곡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를 유심히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방송 금지의 이유는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속적이고 천박한 것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일은 '우리의' 정서와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일까. 이렇게 '오해'하면서 글을 마치자.

* 계간 <황해문화>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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