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VIEW:
- 록 스타의 남성 숭배
'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남성숭배주의자'라는 세간의 인식이 있다. 남성에서 '성'자 대신에 '근'자를 집어넣는 경우도 있다. 이런 말이 가뜩이나 한국에서 인기없는 록 음악에 대한 음해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이 나라에서 문제가 되는 '가부장제'나 '호주제'와는 거리가 머니까 말이다. 록 음악의 남성숭배주의는 '집을 떠난 사나이'의 허세이지 집에서 큰소리치는 코리안 남자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해도 남성숭배는 요즘처럼 여성이 각광받는 시대에 구시대의 유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오명에서 가장 가까운 장르는 뭐니뭐니해도 주류 하드 록이나 헤비 메탈이다. 한국에서는 '정통 록'이라고 간주되는 장르 말이다. 꼭 거칠고(hard) 무거운(heavy) 사운드가 아니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록 공연의 상징인 마이크나 기타의 모양새가 남자의 성기같다는 말은 서양 사람들의 이상한 상상력인지 그럴 법한 이야기인지 헷갈린다. 그냥 이런 이야기 모두를 '서양놈들 참 이상하네'라고 생각하고 말아버려야 할까. 하긴 남근숭배사상이 한국에는 없더냐. 아들 낳으면 집 앞에 고추 달아놓았던 일 하며 마을 앞산에 남근바위가 있어야 마을이 잘 된다고 생각했던 조상을 가진 우리가 이런 걸 보고 뭐라고 그럴 권리 없다.
하지만 마이크에 여자 팬티를 걸어넣고 공연하던 Kiss의 모습을 보고 심증이 가더니, 내 앞에 놓여있는 음반 커버를 보니 확증이 선다. 누구의 음반이냐 하면 캐나다의 Loverboy라는 밴드다. "Working for the Weekend"라는 히트곡이 우리에게도 꽤 알려져 있다. '흘러간 팝송'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곧잘 나오니까. 그런데 앨범 커버는 좀 황당하다. 앨범 제목부터가 'Big Ones'다(이 앨범은 1989년에 나온 베스트 음반이다). 커버 앞면에는 사진이 열 개 조금 넘게 있는데 좀 심난하다. 비행기 뒤에 장착된 미사일을 포함하여 남근의 상징같은 사진이 여자의 입술과 가슴 사진과 함께 그려져 있다(물론 한국 라이센스 음반에는 유두는 빨간 줄로 지워져 있다).
'언제 적 이야기냐?'할 분도 있을 터이므로 조금 가까운 이야기를 하면 Guns'n'Roses를 떠올리자. 보컬을 맡은 액슬 로즈의 복장은 이른바 스판덱스다. 이거 입으면 '물건'이 강조되어 보인다. 1980년대의 팝 음악계는 여성 취향이 지배하여 하드 록이나 헤비 메탈마저도 여성화되어 빤짝이 기타를 들고 머리는 푸들(poodle) 강아지처럼 생긴 라이트 메탈의 예쁜이 오빠들이 전성기를 누린 시기다. 액슬 로즈야 그래도 '터프 가이'였기 때문에 남자다움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택한 복장이 스판덱스였다.
사태가 변한 건 1990년대. 이른바 '얼터너티브 록'의 주역들은 하나같이 어디서 여자한테 주어터지고 와서 소리지르는 애들 같았다. 'Kurt Cobain과 Cortney Love' 커플이 그런 상징이었다. Pearl Jam의 Eddie Vedder나 Alice in Chains의 Layne Staley도 비슷했다(물론 에디는 좀 건전했고 스테일리는 퇴폐적이었다는 차이가 있지만). 스매싱 펌킨스의 Billy Corgan도 여자한테 빌빌매다가 실연당해서 열 받은 애 같았고(빌리 코갠은 실제로 코트니 러브한테 차였다). Red Hot Chili Peppers가 '거시기에다 양말을 끼우고' 공연하는 모습도 '좌절한' 애들이 하는 행동이었지 '정복한' 애들의 잔치가 아니었다.
그래서 리프가 있어도 선명하지 않고 노이즈에 휘말려드는 사운드가 많았다. 이런 건 말로 하기 좀 쑥스럽지만 외국의 어떤 음악평론가는 리프를 남근에 노이즈를 질(virgina)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래서 10년 전쯤 당당한 건 오히려 여성들이었다. 이제는 '언니'들이 된 쟁쟁한 록 우먼(rock women)들 말이다. 이들의 역사는 또 다른 스토리, 즉 록의 'history'가 아니라 'herstory'다. 그래서 두 스토리가 통합될 기운도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록 음악계의 언니들이 점차 컨트리, 포크 성향의 말랑말랑한 음악으로 기울면서 조금 아랫 세대의 애들은 언제부턴지 다시금 '남성'을 강조하고 나서고 있다. 누구 얘기냐고? Korn이나 Limp Bizkit처럼 잘 나가는 '하드코어 밴드'들 말이다. 무늬는 1990년대 초엽의 '좌절된 남성성'이지만 내용은 좀 다르다. 음악도 거칠고, 우악스럽고, 공격적이고, 무겁고, 빠르다. 모두 혈기방장한 사춘기 남자애들 정서다. 왜 있지 않은가. 여자 속옷 광고만 봐도 신체 특정부위가 팽창하는 십대말이다. 이제 '냄새만 틴 스피릿'이 아니라 '진짜 틴 스피릿'이 도래한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작년의 <우드스톡 99>에서 강간 사건이 발생했고, 대부분의 록 공연장에는 '떡대좋은 양놈들'만 우글거린다고 한다.
뜬금없이 이런 말 왜 했냐고? 최근 한국에서 음악 좀 듣는다는 중고딩들은 대체로 하드코어에 빠져드는 것 같아서다. 아니면 갱스터 랩인데 이것도 여성비하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나 같은 평론가 아저씨가 드는 의문은 '남자애들은 갈수록 비실비실한 마마 보이같아지는데 듣는 음악은 이렇게 센 이유가 뭘까'라는 것이다. 하긴 진짜로 비실비실한 애들이 빌빌대는 걸 계속보는 일이 지겨울 때도 됐다. '터프'한 거 좋아하는 세태도 정말 터프한 남자가 없어서 그런 것 같고... 하지만 걱정 말라. 한국의 '로커'인 김경호는 오늘도 무늬만 터프한 채 바이올린의 감미로운 선율이 흐르는 록 '발라드'를 애절하게 불러주고 있으니 말이다.
P.S. 오늘은 주로 미국 얘기만 했네요. 다른 나라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 웹진 <M-zine>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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