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VIEW:
- 한국인 취향의 '월드 뮤직'?
[Q] 월드 뮤직이란 다음 중 어느 것인가?
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 ② 세계를 무대로 하는 음악 ③ 세계 각지의 대중음악
④ 세계 각지의 전통 민속음악
[A] 원래는 ④에 가까운데 한국에서는 ③에 가깝다.
한국에서도 '월드 뮤직'이란 단어가 이제 정착한 듯하다. '세계 음악? 그게 뭐야?'라면서 처음에는 '되게 이상하다'라고 생각했던 (나같은) 사람마저도 이제는 익숙해졌으니 말이다. '어덜트'용 라디오 방송에서도 이 용어가 곧잘 나오고 음악도 꽤 소개하고 있다. 빌보드 차트를 보아도 '월드 뮤직' 차트가 따로 있으니 세계시장에서 지분도 꽤 확보한 모양이다(몇 년 전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시장에서 월드 뮤직은 재즈와 비슷한 약 2%의 규모라고 한다).
문제는 '월드 뮤직'이라고 부르는 음악과 미국 등지에서 'World Music'이라고 부르는 음악이 똑같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비교언어학을 훑어본 사람은 (예를 들어) '물'과 'water'가 지시하는 대상이 다르므로 '월드 뮤직'과 'World Music'이 지시하는 대상이 다르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런데 다른 건 좋은데 너무 엉뚱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작년의 '테크노'같은 불상사는 좀 없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월드 뮤직을 소개할 때는 '영미 팝에 식상한 팬들을 위해'라는 문구가 따라다닌다. 그래, 너무 특정국의 음악만 편식하는 건 좋지 않지... 그런데 라디오에서 소개하는 음악들은 가사가 영어와 한국어가 아닌 '발라드' 계열이 대부분이다. 셀틱이나 라틴 계열의 가수들이 많고, 그 중에서도 뭔가 영묘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가진 노래들 말이다. Enya나 Vaya con Dios같은 경우 말이다. 라틴 음악의 경우도 Amalio Rodriguez(아말리오 로드리게스: 포르투갈)의 파두(Fado)나 Pablo Milanes(파블로 밀라네스: 쿠바)의 누에바 트로바(Nueva Trova)같이 선율 고운 발라드나 Astor Piazzola(아스토르 피아솔라: 아르헨티나)같은 품격높은 탱고가 인기있을 뿐이다.
이 정도면 그래도 '월드 분위기'가 있는 경우지만, 어떤 경우 음악은 영미 팝과 거의 똑같아도 가사만 제 3국어면 월드 뮤직이라고 부른다. '팝'이 아니고 '가요'도 아닌 발라드는 몽땅 '월드 뮤직'? 그런 음악은 그 나라에서는 그냥 '국내 가요'일 뿐인데 말이다. 한국 가요를 다른 나라에서 '월드 뮤직'이라고 불러주지는 않는데.... 반면 리듬감 넘치는 스타일(이른바 '월드 비트')는 방송은커녕 음반도 구하기 힘들다. 대형 음반매장에 가뭄에 콩나듯 들어왔다가 금방 사라지고는 다시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음악은 <라이언 킹> 사운드트랙이나 신승훈의 최신 히트곡("전설 속의 누군가처럼")의 반주로 맛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나같이 '월드 댄스(정확히 말하면 월드 비트)' 취향인 사람은 영 불만이다.
곰곰 생각해 보면 '월드 뮤직'의 수요자는 30-40대의 베테랑 음악 애호가들이 주류인 듯하다. 요즘 나오는 힙합이나 테크노의 리듬은 부담스럽고, 팝이나 록은 이제 질렸고, '가요'는 원래부터 천박하다고 생각한 사람들 말이다. 또 클래식, 재즈, 국악에 심취하기에는 '고급예술 옹호자'들의 재수없는 태도에 생래적으로 반감을 가졌던 사람들 말이다. 그래서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고, 순수하면서도 때묻고, 이국적이면서도 친숙한 걸 찾다보면 '월드 뮤직'으로 가는 수가 많다. 그래 맞아. 어차피 대중음악이란 취향의 구별짓기 문화니까. 암, 흘러간 가요만 듣는 보통 아저씨·아줌마들보다는 고상해야지... 그리고 젊은 너희들도 아저씨가 보기엔 '영미 팝'에만 너무 중독되어 있는 것 같애.
* <M-zine>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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