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VIEW:
- 싱글 앨범?
지나가다가 라디오를 들으니 이런 말이 들려왔다. "에쵸티의 새로운 싱글 앨범 발매 짜자자잔". 싱글 앨범? 그게 뭐지. 하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소라도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던 무렵 이 용어를 사용했고, 신해철도 언젠가 한번 그랬던 기억이 있다. 한국 대중음악계의 내로라하는 분들까지 이렇다면 음악계에서는 공용화된 말인 듯하다. 그래도 지나가는 말로 하는 것과 정식 CF에서 하는 건 느낌이 좀 다르다.
혹시나 '더블 앨범이 아니니까 싱글 앨범이라고 했나?'라고 반문해 보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입에 익어서 모든 음반을 앨범이라고 하는 게 틀림없다. 우리끼리 뜻만 통하면 됐지 아무러면 어떠냐고? 하긴 그렇다. 언어라는 게 사전에 나와 있는 뜻 그대로만 써야 한다는 법 없고 세월이 흐르면 단어의 뜻도 변하는 게 사실이다. 더구나 외래어의 경우는 본토의 뜻과는 영 다른 게 보통 아닌가. 동네 구멍가게를 '슈퍼'라고 부르고, 후줄근한 연립주택도 '빌라'라고 불러도 알아들을 사람은 다 아는데 뭔 시비인가.
그래도 다르다. 동네 구멍가게 주인이나 연립주택 건축업자야 외국인 상대하면서 영어 쓸 일 없지만 코스닥에도 상장하기로 했다는 벤처 기업인 S모 기획에서 그러면 되겠나. 중국과 일본에도 진출할 야망을 가진 사업체가 그러면 되겠나. 지구화 시대에 '글로벌 스탠더드'는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문득 한글을 막 배우기 시작한 양놈이 '슈퍼'와 '빌라'라는 단어를 읽고는 깔깔거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건 괜한 시비같다. '다음부터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램이 실현될 것 같지 않기에 한번 해보는 이야기다. 문제는 한국산 '앨범'이 세계적 기준에서 보면 '싱글'에 가깝다는 점이다. 여러 사람들이 여러 번 지적한 이야기지만 한두 곡만 들을 만하고 나머지는 리믹스보다 못한 짜깁기곡으로 채워져 있다. 한국은 음반사나 기획사들이 작곡가들한테 음반 판매량에 비례하여 로열티를 주는 게 아니라 '곡비(曲費)'를 주고 사는 나라다. 그 가격이 얼마라는 말을 대충 들은 나로서는 음반 들을 때 '이건 얼마 짜리군. 저건 얼마네'라는 못된 버릇까지 들었다. 좌우지간 이래 가지고는 길보드에서 '불법 테이프'를 사거나 mp3로 좋아하는 곡만 다운받아 듣는 애들한테 '니네 불법 복제 하지마'라는 말 해봤자 소용없다. 한때 난리치고 선전하던 CD 자판기도 요즘은 종적을 찾아보기 힘드니 말이다.
그래서 차라리 정말 싱글 중심으로 발매했으면 좋겠다. 한 두세곡만 정성스럽게 수록하는 게 현재 우리 가요의 시스템의 성격에 딱 맞다. 경제도 심상치 않으니 가격도 낮추고. 물론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앨범 만들면 된다. '앨범 아티스트'에 걸맞는 시스템이 미비하긴 하지만. 하지만 이런 말도 공자님 말씀이다. 기요팬들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앨범을 뭐 음악만 들으려고 사나요, 거기 실린 사진이랑 그림도 보고 그래야죠". 그래 알겠다. 가요 테이프를 화장품 가게에서 파는 이유를. 에이, 곧 나올 서태지의 삼십몇분 짜리 '앨범'이나 들어야겠다.
* <M-zine>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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