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VIEW:
- 대중음악에서 프로듀서의 역할
한국이 학벌 사회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대중음악계만은 '학력 파괴'의 장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처럼 '가방끈 길다'는 핀잔을 들으면서 글이나 써대는 평론가 나부랭이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음악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순수' 음악이 아니면 제도권 학계에서 음악을 공부할 곳은 마땅치 않으니 이들 중에는 '유학파'도 많다.
대중음악도 예술인 이상 공부하는 것을 나무랄 수 없으나 조금 이상한 분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서로의 내공을 알아보는 고수끼리 모여서 유유상종하는 게 뭐 나쁜가. 상부상조를 통해 품질 좋은 대중음악을 생산해 내는 걸 뭐라고 그럴 필요는 없다. 문제는 이들 학습파 및 유학파 뮤지션들의 취향에 맞는 사운드와 편곡이 있다는 점이다. 잘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대체로 '화려하고 매끄럽고 꽉찬 사운드'같다. 악기구성도 이것 저것 나오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슬픈 부분에는 현악기, 흥겨운 부분에는 관악기, 품격있을 때는 피아노, 격하게 분출할 때는 메탈 기타, 장중할 때는 신시사이저 이런 식으로 말이다. 사운드 이펙트도 이것저것 자주 그리고 많이 사용한다. 소박하고 단촐한 것보다는 '뭔가 있어 보이는' 사운드 말이다. 그러다 보니 '개성'보다는 '기량'을 중시하는 풍토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아, 이건 아무개가 프로듀싱한 거구나"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고, 하나의 모법답안이 있어서 "아, 이 답은 뭐가 틀렸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는 뜻이다.
이런 경향에 대해 '대중음악의 미학이란 DIY(Do-It-Yourself, 이른바 '마구리')'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하긴 the Beatles, the Sex Pistols, U2같이 음악 교육이라곤 받아본 적도 없는 음악인들이 훨씬 훌륭한 음악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흑인 음악은 더더욱 그렇고...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비틀스에게는 George Martin이 있었고, U2에게는 Brian Eno가 있었다. 이들 조련사가 없었던들 비틀스도 U2도 오늘날과 같이 광범한 영향력을 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국과는 사정이나 시스템이 다른 경우긴 하지만,
생각을 펼치다 보니 대중음악에서 '프로듀서의 역할'을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하게 된다. 프로듀서는 "난 잘 모르니까 녹음기사랑 상의해서 니네가 알아서 해"라고 방치하는 '행정가형'부터 "편곡이랑 믹싱은 내게 다할테니까 레코딩만 잘 끝내"하는 '뮤지션형'까지 다양하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둘 중 하나'가 대부분이라는 점. 화려하고 쌈빡한 편곡에만 몰두하지 않고 뮤지션의 숨어있는 재능을 길러내고 '조련'하는 프로듀서가 나왔으면 좋겠다. 1980년대만 해도 몇몇 선구자가 있었던 듯도 한데...
* <M-zine>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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