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VIEW:
  • 한국 대중음악의 '종속적' 이미지 메이킹의 해부

한국 대중음악계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예외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건 '국산'이 분명한 대중음악에 '한국적' 특징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초대형 다국적 음악기업의 비즈니스가 이토록 죽을 쑤는 곳도 드물어서 전체 음반시장의 70% 이상이 한국 대중음악(이른바 '가요')건만 바로 그 '한국' 대중음악이 '이국적'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여기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한테는 이상할 것 없는 이야기라서 이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지만.

'표절 얘기 하느냐'고 물어볼 사람이 있겠지만 오늘 주제는 사운드라기 보다는 이미지다. 올해 여름을 강타한 홍경민과 백지영은 '라틴'의 이미지로 성공을 거둔 경우다. 홍경민은 리키 마틴(Ricky Martin), 백지영은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를 많이 참고했다는 점은 누가 보아도 명백하다. 한편 가을에 5집 앨범을 들고온 H.O.T는 음악 스타일은 달라졌어도 작년부터 차용해온 X-Japan 등의 일본식 '비주얼 록' 이미지는 계속 사용하고 있다. 같은 기획사 소속의 '신상품'인 보아(Boa)는 1990년대를 풍미했던 일본의 아무로 나미에의 데뷔 시절의 모습이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인기가수'들이 모두 그렇다. 엄정화는 '마돈나처럼', 박진영은 '마이클 잭슨처럼' 하는 것에 승부를 걸어 '1990년대의 가수'로서는 불리한 조건(나이나 용모)에도 불구하고 대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그뿐만 아니다. 김민종, 임창정, 조성모로 이어지는 짜내기 창법의 가수들은 샘플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홍콩의  당대의 '*대천왕' 중 누군가로부터 이미지를 가져온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스타의 이미지로부터 모종의 덕을 볼 요량이 아니더라도 이미지의 국제적 차용의 사례는 더 있다. 대다수 힙합 그룹들의 의상과 헤어 스타일은 LA와 뉴욕으로부터 온 것이며, 샤크라는 인도, 이정현은 이집트, 스페이스 A는 일본으로부터 이미지를 수입·가공해 왔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기는 아주 쉬운 일이다. '민족 정기' 운운하면서 한 방으로 해결할 수도 있는 문제다. 요즘 세태만을 탓하기에는 역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1980년대만 해도 김완선은 마돈나를 전범으로 삼아 선정적인 춤으로 부족한 가창력을 만회했다(그렇다면 박지윤은 '마돈나를 흉내낸 김완선을 흉내낸' 것인가). 1970년대의 남진은 구레나룻까지 길러가면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율동'(그때 용어다)을 선보였고, 윤복희도 에디뜨 삐아프의 덕을 보지 않았다고 말하기 힘들다. 심지어 저항적 포크 가수의 원조인 한대수의 음악마저도 밥 딜런의 이미지 없이는 상상하기 힘들다.   

이를 대중음악의 변방국의 숙명이라고 하면 맥빠진다. 또한 이미지를 차용하지 않은 음악이었다고 해서 노골적으로 차용한 것보다 반드시 낫다고 말하기 힘들 때도 많다. 그러니 이미지 차용에도  '방식'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돈 벌려고' 하는 자들은 경멸해도 마땅할 것같다(가끔 안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정말로 좋아서' 비슷하게 하려는 사람을 뭐라고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민감한 이야기지만 서태지가 들고나온 헤어 스타일과 무대 동작은 미국의 하드코어 그룹들, 특히 콘(Korn)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본인이나 팬은 이를 부인하려고 한다. '영향은 받았지만 모방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콘이 한국에서 그다지 '인기인'은 아니므로 스타 이미지의 덕을 보려는 심산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찜찜하다. 1990년대 중반 경 오아시스(Oasis)와 블러(Blur)라는 영국의 '국민 밴드'는 '비틀스의 모방이다'라는 지적에 '뭐 어때서?'라면서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아시스같은 경우는 표절 판정을 받고도 당당하게(뻔뻔하게?) 나름의 '철학'을 늘어놓았다. 반면 한국에서 '흉내냈다'라는 지적을 받으면, '아니다'라고 우기든가, '다 그런 거지'라면서 멋적어하든가 둘 중 하나다. 그게 음악인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외국에서 개발한 기술을 복제해서 돈버는 데 능한 '경제계'나 외국의 이론과 사상을 수입하는 게 가장 폼 나는 '학계'는 별다를까.

대안은 없을까. 있다. 문제는 의외로 '우리'의 '민족주의'적 관습에 있다. 외국(그들?) 것과 한국(우리?) 것을 칼로 무자르듯 구분하는 관습 말이다. 한국 것이든 외국 것이든 자기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있다면 그 영향으로부터 '한국적이지도 외국적이지도 않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면 된다. '장사'를 위해 외국의 이미지를 일회용품으로 쓰고 버리는 짓이나 외국 것을 '우리 식으로 소화해야 한다'는 하나마나한 잔소리나 모두 짜증나는 이야기다. '순종'과 '정통'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잡종과 이단에 보다 몰두할 때다. 잡종에도 혁신과 사이비가 모두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 <에스콰이어>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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