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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사용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TV에서 'AR(미리 녹음한 음원)을 틀고 립씽크하는 '가수들'의 모습은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아니었으면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노래방이라는 한국형 음악문화도 마찬가지. TV나 노래방 뿐만 아니라 음반을 들어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립씽크까지는 아니지만 똑같은 후렴부가 두 번 이상 나올 때는 한번 녹음한 것을 재활용하여 잘라붙이기(cut'n'mix)한다. 아날로그 레코딩 시절에는 편집과정에서 음 손실이 발생하지만 디지털 레코딩은 그런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살아있는 것을 죽이고, 진짜를 가짜로 대체한다. 아,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정녕 이렇게밖에 활용될 수 없는 것인가. 라디오를 켜니 "이등병의 편지"라는 곡이 흘러나온다. 한 영화의 흥행으로 인해 뒤늦게 히트하고 있는 곡이다. 가사나 곡의 분위기는 '아날로그'에 어울릴 곡이다(사족이지만 군대가는 심정이란 부모와 친구와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아픔 못지 않게 컴퓨터와 인터넷과 게임기를 박탈당하는 아픔도 강하다). 녹음이 아날로그 방식이 아니었더라도 이 곡의 원곡은 어쿠스틱 기타와 가수의 목소리가 중심을 이루는 소박한 편곡이다. 어, 그런데 영화에 삽입된 그 레코딩이 아니다. 새롭게 레코딩된 곡의 목소리는 김광석이 아니라 윤도현이다. '뒤늦게 히트하니까 한몫하려는 건가'라고 투덜거릴즈음 깜짝 놀라게 된다. 2절은 김광석의 목소리같다. 혹시나 비슷한 음색과 성량을 지닌 가수가 아닌가 의심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을 목소리였기 때문에 그럴 확률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곡은 김광석의 헌정 음반인 [다시 꽃이 되어]에 수록되어 있다. 헌정 음반이란 것이 동료나 후배들이 음악인의 업적을 기리는 음반이라면 으례 원곡을 어떻게 리메이크했을까를 궁금해하게 된다. 물론 리메이크의 방식은 음악인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해서 원곡 그대로 충실하게 리메이크하는 경우부터 원곡의 흔적조차 알아보기 힘들게 개성있게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든 리메이크란 작곡만 하지 않을 뿐 다시 편곡하고 다시 연주하여 레코딩한다. 그런데 김광석의 헌정 음반은 또다른 방식을 취했다. 그것은 오래전에 레코딩된 본인의 목소리를 불러와서 새롭게 레코딩된 음들과 뒤섞는 방식이다. 이런 건 디지틀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리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업이다. 누구나 생각해 내기는 힘들지만. 그 결과 "이등병의 편지"는 윤도현과 김광석이 번갈아 부르는 듀엣곡이 되었다. 다른 트랙은 이것보다 더한 경우도 있다. 특히 첫 트랙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에서는 이소라, 김건모, 윤도현, 이정열, 안치환, 박학기를 비롯해 20명에 가까운 출연자 전원의 목소리가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는 후렴부의 'We Are the World 스타일의 합창'이 이어진다. 그렇지만 이 많은 인원이 한자리에 모여서 녹음했을 것 같지는 않다. 얽히고 섥힌 스케쥴을 맞추어 이들을 한 날 한 자리에 모으기는 몹시 힘든 일이다. 편한 일정에 스튜디오에 와서 한두 소절씩 부르고 간 것이 틀림없다. 따지고 보면 이미 1991년에 나탈리 콜(Natalie Cole)은 이미 고인의 된 그녀의 아버지 냇 킹 콜(Nat King Cole)의 오래된 레코딩을 빌려와서 함께 입을 맞춰 불렀다. 제목마저 "Unforgettable". 그렇지만 이 경우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딸의 목소리의 음색이 어느 정도는 구분된다. 반면 김광석의 헌정 음반의 수록곡들은 너무 감쪽같다. 이유는 냇 킹 콜의 목소리는 아날로그 레코딩, 그것도 멀티트랙 레코딩 이전의 테크놀로지로 기록된 반면, 김광석의 목소리는 디지털 레코딩으로 기록되고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예술이 기술과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느낌'이다. 냇 킹 콜과 나탈리 콜의 노래는 디지털 레코딩으로 편집되었으면서도 아날로그 시절에 발매된 레코드 특유의 무드를 기조로 하고 있어서 시점이 '과거'에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산 자와 망자(亡者)의 대화가 과거와 현재를 이으면서 한동안 망각된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김광석의 헌정음반 수록곡들은 '현재'만 있는 듯하다. 이걸 어떻게 해석하는가는 청자의 몫으로 남게 된다. 꿈을 못다 이루고 세상을 뜬 가객을 그리워하면서 지금 여기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아니면 오히려 너무 감쪽같아서 고인을 기리는 방식으로는 적절치 않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런 상반된 해석은 단지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평가를 넘어서는 문화적 평가를 동반한다. 즉, 한편에서는 요즘같은 대중음악계의 상황에서야말로 라이브의 지존이었던 김광석같은 인물이 정말 필요하다는 절실함의 반영이라고 평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헌정 음반이라는 포맷도 식상해진 마당에 조금이라도 새롭고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대중의 입맛(아니 귀맛)을 추수한 것이라고 평할 수도 있다. 이는 결국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다. 식물과 동물은 물론 인간도 복제할 수 있는 기술이 이미 존재하지만 정말로 인간을 복제하기까지는 긴긴 '문화적' 논쟁을 거쳐야 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기술의 승리'를 찬양하는 시대에 '문화의 빈곤'에 대해 성찰하는 일은 오히려 더욱 절실해진다. 김광석 추모음반은 몇 번 들으니까 신선함이 사라지면서 기술을 '남용'했다는 생각이 짙게 든다는 뜻이다. 예술에서 테크놀로지는 사용하는가 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는가의 문제다.
* <에스콰이어>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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