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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중가요와 노동계급

한국인들이 '노래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위지동이전〉같은 고전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노래방이 여타의 방들보다 장수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잘 증명해준다. 노래(혹은 가요)는 마치 밥이나 공기처럼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다. 굳이 음반이나 테이프를 구매해서 집에 두고 있다가 재생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라디오나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면  마치 스냅 사진처럼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대중가요는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노래가 아니게 되었다. 심수봉의 노래는 대통령부터 서민까지 즐겨 들었지만, H.O.T와 핑클의 노래는 '요즘 애들'만 좋아할 뿐 '성인'들은 즐기기 힘들다. 가사를 알아듣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리듬이 너무 강하고 때로는 멜로디가 없이 '사설(랩)'만 나와서 영 낯설다. 달리 말하면 이제 대중가요란 '대중 모두'를 위한 노래라기 보다는 대중의 '일부'를 향한 노래가 되었다. 이때 일부란 대중가요에 대해 가장 극성스러운 정성을 보이는 계층일 수밖에 없다. 간단히 말해서 이들은 '10대 소녀'들이고, 이들이 아니라면 음반도 잘 사지 않고 공연장도 잘 찾지 않는다. 포스터나 사진을 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상황이 개탄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의 대중가요의 주류가 감수성 예민한 10대 소녀들을 홀리는 상혼의 산물인지, 아니면 갑갑한 현실을 벗어나는 유일한 출구로 작용하는지는 쉽게 판단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두 측면이 딱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긴밀히 연관되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어쨌든 요즘의 대중가요에서 '서민의 애환'같은 것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출신계급이 무엇이든 삐까번쩍한 치장을 한 가수들이 '계급없는 현실'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는 것이 작금의 대중가요의 주요 기능인 것만 같다.   

이런 문제에 대한 토론은 전문가들에게 맡기자. 오늘의 주제는 성인들, 특히 노동계급 성인이 즐길 만한 음악이 갈수록 사라진다는 점이다. 상류층이나 중산층 일부는 클래식이나 재즈같은 고상한 음악을 즐기지만 노동자의 경우는 그것도 마땅치 않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런 음악을 감상할 만한 음악적·문화적 소양을 교육받은 일도 별로 없고, 주거지와 공연시설 사이의 거리도 멀다. 이런 건 부차적 문제지만 '고상하다'고 간주되는 음악이 왠지 '우리'의 문화가 아니라 '그들'의 문화인 것만 같아서 그닥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클래식이든 재즈든 '외국' 음악이고 그래서 여기에 들어오면 경제적 여력이 있는 계층의 사치품일 뿐이다.

이상한 일은 한국에서는 록, 힙합, 테크노 같은 외국의 '대중'음악도 사치품이라는 점이다. 이런 외국의 대중음악 대부분이 '노동계급(working class) 가정의 자식들'로부터 생산된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아이러닉하기까지 하다. 대중음악이 노동계급 문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여러 말 할 것 없이 비틀스(the Beatles)라는 20세기 최고의 대중음악인이 '리버풀 노동계급의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점으로 충분히 증명된다. 한국에서는 비틀스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980년대 미국의 '국민가수(?)'라고 부를 만한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도 '블루 컬러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비틀스나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특수한 경우도 아니며, 대중음악의 스타들 대부분은 노동계급 출신이었다.

물론 대중 스타가 되어 거대한 부와 명성을 얻은 뒤에도 이들을 계속 '노동계급'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불성설로 보인다. 개중에는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애써 숨기려는 경우도 있고, 숨기지는 않더라도 들추지 않으려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더 많은 수의 대중스타들은 자신이 노동계급 출신임을 자랑스러워하는 경우가 더 많다. 어떤 경우는 노동계급의 삶을 '벗어난' 것을 자랑스러워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자신을 상류계층의 일원이라고 착각하지는 않는다.   

이제까지 이야기는 미국이나 영국 등 '문화선진국'의 예다. 노동계급의 형성이 수백년 동안 이루어지고 안정된 커뮤니티가 형성된 나라의 경우니까 한국의 상황과는 차이가 많을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전부 다 그렇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1980년대까지 한국의 대중음악 스타들도 노동계급 출신이 많았다. '노동계급'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는 논란이 있지만, '중산층 이하의 서민'이라고 하면 무리없을 것이고(대학교를 다닌 사람이 '가수가 되겠다'고 하면 부모 등 집안 식구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던 일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의 대중가요들은 일제 시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서민의 애환'을 그려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가수들이 노동계급 출신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명시적으로 드러낸 일은 별로 없다. 달리 말해 한국의 대중음악에서 '계급성'은 은폐되어 왔다. 여기에는 1970년대 이래 군부정권에 의해 사전검열 등 부단한 감시가 수행되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한국의 대중음악은 '무계급적'이었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남녀노소 지위고하 막론하고" 국민 모두가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은 한국에서 가장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런 현상이 특별히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사회가 다양화되면서부터는 문제점을 낳기 시작했다. 즉, 특정한 소수 계층(그게 계급이든, 세대든, 성별이든)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보통의 대중가요'만 가지고는 항상 불충분했다. 그 중에서 세대와 성은 어느 정도 해소되어 왔다. 세대의 경우 각 시대의 청년들에게는 그들만 즐길 수 있는 음악이 있었다. 1970년대에는 포크송과 대학가요가 있었고, 1980년대에는 '민중가요' - 실질적으로는 1980년대의 '대학생 가요'였다 - 가 있었다. 성적 소수자인 '여성'의 경우에는 청소년에게는 댄스가요, 그리고 성년에게는 '주부가요'라는 형식이 있다.  

그러고 보면 '계급'이라는 범주에서 사회적 약자인 노동계급에게는 보통의 대중가요 이외에 그들만의 음악문화가 없다(있다고 해도 매스 미디어에 의해 유통되지 않으니까 알려지지 않는다). 대중가요와는 별도로 '노동가요'라는 범주가 만들어진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노동현장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노동가요'는 지금도 시위와 집회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다. 노동가요는 TV나 라디오 등 매스 미디어에 의존하지 않고(성격 상 의존할 수 없고) 노조나 문화패 등 기층에서의 문화적 실천에 의해 창작되고 지속적인 연행 행위를 통해 재창조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가요는 본래 의미에서의 '민속' 음악, 영어로는 folk music인 셈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적잖은 사람들이 노동가요로부터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흥미를 끌지 못하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다. 하나는 노동가요가 시위, 집회, 공연 등에서 특정한 기능으로 사용되는 것 이외에 평소의 일상 생활에서 즐길 만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음반이나 테이프같은 형태로 감상하는 일은 별로 없다는 뜻이고, 노래방이나 술집에서도 보통의 대중가요를 즐기는 일이 더 많다. 다른 하나는 노동가요가 '낡은'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창작된 지 20년이 넘지 않아서 그렇게 오래된 것이라고 볼 수도 없지만, 한국 사회의 변화가 워낙 빠르기 때문인지 '요즘 아이들'은 노동가요나 트로트나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건 그저 '어른들'의 감성일 뿐이라고 치부하고 마는 듯하다.

결론적으로 노동가요가 '민속음악'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해 보인다. 하나는 일상의 정서를 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젊은 감성에 부합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꼭 그럴 필요가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직접 현장에 있지 않은 필자로서는 똑 떨어지게 답변하기 힘들다.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세상 속에서 직업적 음악인도 아닌 노동가요 창작자들에게 위와 같은 '과제'를 염두에 두고 창작활동을 해 달라고 부탁하는 일은 분명 과중한 기대일 것이다. 주관적으로 생각할 때 더욱 바람직한 방식은 노동계급의 자녀들 중에서 대중음악인을 지향하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노동계급의 정서를 담은 대중음악을 창조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대중가요와 노동가요의 구분도 점차 사라지고, 노동가요란 대중가요의 든든한 하부구조를 이루는 것이 이상적인 모델일 것이다. 대중가요가 '노동자의 답답한 삶을 벗어나는 출구'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의 삶을 담은 문화적 형식이 되는 상태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삶의 조건이 지금보다는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비경제적으로도 현재보다는 '여유'가 필요하다. 막말로 무슨 '여가 시간'이 있어야 문화생활을 즐길 것 아닌가. 불행히도 작금의 한국경제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1980년대식 노동가요'가 계속 불려질 수밖에 없다. 노동가요가 창조된지 오래되었다고 하더라도 '투쟁하는 노동자'가 과거의 모습은 아니니까 말이다.

 

* [한국노총] 회보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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