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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그 중에서도 록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들의 경우 간혹 '심오한' 경우가 있다. 실제로 록 음악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밴드들의 음악은 심오한 해석이 내려질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비틀스(the Beatles),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벨벳 언더그라운드(Velevet Underground), 섹스 피스톨스(the Sex Pistols), 니르바나(Nirvana) 등등. 간혹 침소봉대나 아전인수를 낳기도 하지만, 그것마저도 이들의 음악에 '그럴 듯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기도 한다. '그럴 듯한 무언가'는 대략 히피(hippie)와 펑크(punk)라는 두 개의 유파로 대별될 수 있다. 위에서 예를 든 음악인들을 대별해 보면 비틀스, 지미 헨드릭스. 핑크 플로이드는 히피에, 벨벳 언더그라운드, 섹스 피스톨스, 니르바나는 펑크에 속(해야) 한다. 물론 현실은 이런 대별보다 훨씬 복잡하고 양자 간에 아무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라서 단순무식하게 말할 때만 이렇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단순무식을 계속 발휘한다면 히피는 낭만주의적 도피주의자로, 펑크는 허무주의적 무정부주의자라는 딱지를 달게 된다. 히피들이 서양사회의 문명을 등지고 '정직한 빈곤'을 추구하면서 '거지같은' 차림으로 여기저기를 유랑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펑크는 도시의 거리에서 머리를 울긋불긋 물들이고 찢어진 옷차림으로 현실의 부조리함을 드러내면서 아무런 지배도 없는 상태를 의도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도 이젠 오래된 이야기일 뿐이다. 히피는 1960년대 후반에, 펑크는 1970년대 후반에 '폭발'해 버린 뒤 이제는 전설과 신화가 되어 버렸다. 그 이유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히피든, 펑크든 서로 대립된 세계관과 사상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들이 현대의 기술 문명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따지고 든다면 히피와 펑크가 테크놀로지를 대하는 태도는 양면적이었다. 와와 페달(wah-wah pedal) 없는 싸이키델릭 록이, 디스토션 이펙트 없는 펑크 록이든 가능했을까. 나아가 레코딩 스튜디오에서의 복잡한 사운드 프로듀싱 없이 이들의 음반이 나올 수 있었을까. 이 점은 차치해 두자. 어쨌든 이들의 '이데올로기'는 반(反) 테크놀로지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점은 테크놀로지의 자식들인 1980년대 이후의 세대들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이야기다. 테크놀로지는 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도처에 실재하고 있었고 그래서 테크놀로지의 효과들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비현실적이다. 그렇다면? 테크놀로지를 부정하거나 테크놀로지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테크놀로지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이로부터 변이를 꿈꾸는 것이 하나의 길일 것이다. 어쩌면 새로운 상상력의 현실적 조건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서론이 길었다. 히피와 펑크에 대해 말을 꺼낸 것은 그저 라디오헤드라는 밴드가 히피와 펑크라는 대립되어 보이는 두 개의 전통(?) 모두로부터 자양분을 흡수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한 너스레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도 록 음악 전문 평론가라면 이들의 음악에 대해 "프로그레시브 록의 음향의 텍스처와 펑크 록(혹은 인디 록)의 성난 기타 노이즈를 뒤섞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이들은 한 평론가의 말처럼 "강박적인 인디 키즈로부터 45세의 고전적 록 팬까지 흡수하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히피와 펑크를 결합시킨 것이 이들만 있는 것도, 이들이 처음인 것도 아니다. 게다가 '본래 그대로의' 히피와 펑크를 결합시키는 것이 지금에 와서 대수인가라는 생각도 없지 않다. 실제로 1980년대의 인디 록에서 이런 경우는 꽤 있어 왔다. 하지만 라디오헤드가 새롭다면 이들이 테크놀로지와 대면하면서 그를 '통해서' 독특한 감성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록 음악을 듣는 사람의 침소봉대와 아전인수'가 허용된다면 이들의 음악은 사이버펑크로부터 바이오펑크로 이어지는 '시대의 징후'가 반영된 좋은 텍스트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들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국내에도 꽤 알려진 "Creep(날건달)"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단명하고 끝날 존재, 이른바 원 히트 원더(One Hit Wonder)가 되리라는 악평도 꽤 있었다. 당시는 미국에서 니르바나가 선도했던 이른바 그런지 록(grunge rock)의 시대. 그때 라디오헤드는 좋게 말하면 그런지 록의 '동맹자', 나쁘게 말하면 '추종자' 정도로 비쳤다. 분노에 가득찬 기타 톤, 내성적이고 분열적인 가사, 소외된 채 흐느적거리는 페르소나 등은 그때의 '유행'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지 록의 진원지인 미국 북서부와는 거리가 먼 대서양 건너 영국의 옥스퍼드 출신이라는 사실은 '편승'이라는 혐의까지 두게 만들었다. 당시는 혁신적이고 흥미로운 음악이 주류 시장에 대거 등장했기 때문에 라디오헤드의 존재는 그리 부각되지 않았다. 평판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가 저물면서 '요즘 재미있는 음악이 왜 이렇게 없을까'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올 무렵이다. 다름 아니라 1997년 발표된 이들의 세 번째 정규 앨범 <OK Computer>. 많은 사람들이 심상치 않은 음악이라고 평한 이 앨범의 특징은 테크노 혹은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라고 불리는 전자음악에 보다 깊숙이 발을 들여놓은 음반이었다. 가사는 이전의 내성적이고 분열적인 메시지를 담으면서 우주나 외계가 보다 자주 등장한다. 현실로부터의 탈주가 구체적으로 형상화된 셈이다. 더욱 특이한 것은 '외계'에 관한 상상이 20세기의 과학기술의 총아인 컴퓨터라는 반인반물(半人半物)을 통해 달성됨과 동시에 좌절된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는 "Paranoid Android"라는 곡에서 표현된다. 컴퓨터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이 앨범에 표현된 정서는 컴퓨터로 상징되는 디지틀 테크놀로지의 경험이 없다면 창조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현실은 결국 "여피 네트워킹"이자 "돼지가죽이 우지직거리는 소리"고 "먼지, 고함...공황, 구토"다. 이런 정신적 공황은 이미 앞에서 나직이 읊조리는 "나는 편집증 환자일지 모르지만 인조인간은 아니야(I may be paranoid, but not an android)"라는 대목에서 이미 암시되고 있다. "내가 왕이 된다면 너는 첫 번째로 벽을 등지고 설 것이며, 아무 결과도 없는 의견들을 낼 거야"라는 좌절감도 마찬가지다. 'OK Computer'라는 타이틀은 반어법에 가까워 보인다. "나는 인조인간이 아니야"라는 각오에 가까운 절규는 어떤 식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이 점에 대해 작년에 발표된 [Kid A]는 해결의 하나의 대답을 제시한다. 일단 음반의 전반부를 차근차근 들어보면서 접근해 보자. 첫 트랙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은 이른바 '앰비언트'라는 장르명으로 알려진 묘한 음향 위에 두 개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그 중 하나는 보통의 인간의 목소리지만 다른 하나는 기계음으로 덧입혀 있다. 두 번째이자 타이틀 트랙 인 "Kid A"의 경우 목소리는 더 이상 사람의 목에서 나오는 것 같지 않고, '가수의 노래'라고 하기는 더더욱 힘들다. 전자음향으로 프로그래밍되어 마치 잠꼬대를 하는 듯한 괴상한 보컬의 음색과 가사는 인간 신체의 흔적을 느낄 수 없다(잠을 자면서 꿈을 꿀 때 우리는 상상만 할 뿐 '몸'을 느끼지 않는다). 노래가 비교적 명확한 곡들의 경우도 이전처럼 내성적이고 자아중심적 메시지를 담은 언어라기 보다는 단어들의 단속적인 반복일 때가 많다. "National Anthem"은 각종 전자 효과음향들과 한 마디를 무한반복하는 기타와 드럼 소리 사이로 "Everyone", "What's Going On" 등의 문장을 무의미하게 뱉어내는 목소리가 등장하다가 관악기의 광기어린 협연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Treefingers"같은 '인스트루멘틀' 트랙을 삽입한 것은 "How to Disappear Completely"라는 곡 제목에 대한 답변인 듯하다. 이런 점에서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마치 윌리엄 깁슨이 [이도루(Idoru)]에서 그렸던 존재를 닮아 있다. "자신의 살인적 분노와 유아적 욕망이 극도에 달해도 말로 발설하지 못하고 리모콘으로 채널을 바꿀 따름이거나 대통령 선거 때 투표를 할 따름인 존재" 말이다. 이에 대해 "새끼 하마만한 크기에 일주일쯤 된 삶은 감자 색깔의 생물체"라는 표현은 지나친 엽기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이종교배된 생물체가 있다면 "Kid A"의 보컬처럼 노래를 부를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런 상상력을 두고 바이오펑크라고 부르는 게 요즘의 유행인가보다. 여기서 사이버펑크가 신체에 대해 가졌던 반감은 더욱 즉자적이고 노골적이다. 그건 무슨 의미일까? 여기서 우리는 조금 '덜' 심오해질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이후 인디 록의 정서가 '건강과 효율성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신자유주의적 여피에 대한 반감'이라는 사실은 정설이다. 이는 여피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건강한 신체에 대한 경멸과 조소로 드러났다. 면도칼 광고에 잘 빠진 남자의 나신이 등장한지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단지 그 반감이 '망가진 신체'라는 전통적 방법을 넘어서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찢어진 옷, 헝클어진 머리카락, 엽기적 화장 등은 이제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 뿐더러 그것들은 종종 주류의 패션 스타일로 자리잡기도 한다. '하위문화의 스타일'이 산업에 의해 포획당하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라디오헤드식의 신체에 대한 경멸이 보다 근본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다. 그래서 이들은 앨범의 히든 트랙에서 "미스터 로바또(Mr. Robato)"에게 감사의 예를 표하고 있다. 이유는 "내가 필요로 할 때 탈주하는 것을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escape'라는 영어 단어를 '도피'가 아니라 '탈주'라고 번역했다. 이건 고의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고전적 펑크든, 사이버펑크든, 바이오펑크든 신체성의 탈각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기성의 신체성의 탈각을 통해 새로운 신체성을 구성하는 것으로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건 기왕이면 수동적 도피보다는 능동적 탈주가 낫다는 가치판단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지 그게 그게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미루는 편이 나을뿐더러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 어떤 사보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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