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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학생 나이쯤 되는 사람들은 "호환, 마마 어쩌구..."하는 '애니메이션'을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부터 보고 자랐을 것이다. 불법복제가 미치는 해악에 대한 '공익광고' 말이다. 이 광고물은 시중에서 유통되는 비디오 테이프 거의 모두에 삽입되었고,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다. 그렇지만 불법 복제가 가장 문제가 되는 분야는 비디오나 영화가 아니라 대중음악 그러니까 음반산업 분야인 것 같다. 위 공익광고에서 문제삼은 것은 '불법' 비디오 중에서도 '불량' 비디오였다. 그러니까 무슨 'X양 포르노'같이 시중에서 합법적으로 구하기 힘든 물건을 말한다. 배급이나 유통 뿐만 아니라 제작 자체가 불법인 셈이다. 그렇지만 음반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과 똑같은 '모조품'이다. '불량 비디오'라는 용어는 있어도 '불량 음반'이라는 용어는 없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불법복제 음반은 이제 하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60년대까지 외국에서 제작되고 한국에서 발매된 음반, 쉽게 말해서 한국에서 판매된 모든 '팝송 음반'은 불법복제 음반이다. 불법이란 '허가받지 않았다(unlicensed)'라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른바 '라이센스 음반'이 나오기 전까지 모든 팝송 음반은 '무허가 음반'인 셈이다. 그 다음 시기인 1970-80년대는 이른바 '빽판의 시대'였다. 이름이 왜 빽판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구구하지만 빽판은 누가 보아도 선명하게 판별할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오리지널 음반은 '총천연색'이었던 반면, 빽판은 단색(예를 들어 흑백, 청백 등등)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음질은 오리지널 음반과 비교할 바 없이 나빠서 전축 바늘이 손상되지 않나 염려할 정도로 '비가 오는' 소리가 배경음으로 나왔다. 희한한 것은 현재 30대 중반 이후의 사람들 중에서 음악깨나 들었다하는 사람들은 '불법 복제음반을 들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는 점이다. 현재 신문이나 잡지의 기자, 팝 컬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는 사람치고 젊었을 때 빽판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리 구하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라서 '총판'은 청계천 구름다리였지만 동네 판가게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작용했다. 하나는 경제적 문제다. 간단히 말해서 빽판이 훨씬 쌌다. 또하나는 문화적 문제다. 라이센스판에는 없는 '금지곡'이 빽판에는 수록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당시의 소득수준과 정부의 검열이라는 제도가 빽판의 유통을 하나의 '문화'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길보드의 시대'가 찾아왔다. 판이 아닌 테이프가, 그리고 팝송보다는 가요가 불법 복제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 이건 우리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으니 별도의 설명이 필요없다. 그 와중에 1988년 한국은 세계저작권협정(UCC)에 가입했다. 그 이전 한국은 "주요 저작권위반 국가"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으로 불렸다. 따라서 이 협정에 가입한 것은 앞으로 외국에서 제작된 음반의 허가받지 않은 복제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는 '시스템'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전까지 외국 음반의 발매가 국내 음반사와의 라이센스 계약을 통해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외국 음반사의 자회사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직배(직접배급) 시스템'이 확립된 것이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현실은 아니며 세계 모든 나라 공통의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복제음반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연구기관마다 상이한 견해를 나타내고 있지만 비중이 크다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1997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금액 규모로 시장규모의 10%로 추산하고 있지만, 한국영상음반협회의 1995년 자료는 불법복제음반의 규모를 6백억에서 1천억원으로 추산하는데 이럴 경우 전체 시장규모의 25%이다. 이 수치가 금액 규모임을 감안하고 불법복제음반의 가격이 정품의 절반 이하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개수로는 절반이 넘을 수도 있다. 조금 오래된 자료지만 외국의 문헌에 의하면 불법복제음반의 비중이 "아시아에서는 66%, 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30%, 남아메리카에서는 21%,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11%, 유럽에서는 3%"(Frith, [Music and Copyright], 1992]. 또한 불법복제음반의 주요 공급처는 1980년대까지는 대만, 싱가폴, 한국, 그 이후에는 중국과 러시아라는 것이 세계음악산업계의 견해다. 한국은 아직도 불법 복제의 천국인 셈이다. 이제는 정부 검열도 사라지고 소득 수준도 높아졌음에도 잘 사라지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불법 복제음반을 구매하는데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언론 역시 '길보드'니 '길거리 테이프'니 하면서 흥미로운 현상으로 취급하면서 크게 문제삼지는 않는다. 왜일까. 나는 아직 답을 모르겠고 누군가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모른다'는 답변 뿐이다. 간혹은 이런 '지하경제'와 '지상경제'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건 아닌가라는 혐의도 가지게 된다. 한 루머에 따르면 몇 년 전 모 그룹은 전국의 길보드에 배급하여 하루 종일 한 곡을 집중적으로 틀어댄 결과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들은 게 사실무근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불법복제의 혐의는 주로 인터넷을 통한 다운로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게 불법복제인가 아닌가는 논란이 있지만 이를 다운로드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최소한 판매를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명확하다. 그것도 문제가 없지는 않으므로 온라인에서의 규제도 필요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러기 이전에 오프라인의 정비부터 필요한 것이 아닐까. 막말로 올해 초 선풍을 일으켰던 '편집음반'도 판권을 가진 사람이 복제했다는 점만 다를 뿐 시장에 미치는 효과는 불법복제음반과 비슷했다는 주장이 많다. 현재의 저작권 제도 하에서는 편집음반이 아무리 많이 팔려도 가수나 작곡가들에게는 아무런 추가적 수입이 없다길래 해보는 말이다. * 문화산업지원센터 정보지 [컨텐츠 코리아]에 수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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