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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수의 난 삼세판으로 성공하다 이재수의 난이 성공했다. 1901년 제주도에서
'진짜' 이재수의 난이 실패로 돌아간 지 정확히 100년만이다. 2년 전
박광수 감독의 영화 <이재수의 난>도 흥행에서 실패했으니 삼세판만에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음치 패러디 가수' 이재수에 관한 이야기다. 독일
출신의 록 밴드 스콜피언스의 "Still Loving You"를 부르는
장면이 CF에 삽입되어 세인의 주목을 끌더니 마침내 음반을 발매하기에
이르렀다. 공식 타이틀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앨범 타이틀은 '이란'이다.
李亂도 아니고 耳亂이다. 20대 이하의 경우는 이런 경험이 보편적이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들을 위한 공간은 따로 있는데 다름 아니라 노래방이다. 이재수의 노래는 노래방 '안'이라기보다는 '밖'에서 듣는 소리다. 방 안에서 밖으로 흘러나오는 남자애들의 노래 중에 이재수와 비슷한 목소리들이 많았다. 방 안에서야 알고 지내는 사람끼리 흥에 겨울 수 있지만, 생면부지의 사람이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소리가 방 밖으로 흘러나오면 웃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웃음은 '한심하다'는 뜻의 냉소가 아니라 정겨운 미소다. 음반에서도 이런 스타일의 노래들이 가장 성공적으로 보인다. 본격 록 발라드는 아니라도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난 바람 넌 구름" 같은 트랙들이 그렇다. 반면 나머지 곡들은 '음치 창법'보다는 '개사 패러디'에 속한다. 이런 '개사곡'들은 때로 기지가 엿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다. "누나", "초야", "파란나라"(앨범 미수록)의 가사처럼 '남자의 원초적 욕망'을 담은 경우도 두 번 들으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 혹자는 미국의 개사/편곡/패러디의 달인인 위어드 앨 얀코빅(Weird Al Yankovic)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이재수가 그런 '경지'에 이른 것 같지는 않다. 하긴 20년 이상 활동한 얀코빅같은 인물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서태지의 난? 이재수의 난에 제동을 건 측은 한국 연예계 최고의 슈퍼스타 서태지다. 문제가 된 곡은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발표한 "Come Back Home"이다. 지난 7월 30일 서태지 측이 서울지방법원에 이재수의 음반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서울지방검찰청에는 이재수의 관계자들을 고발했다. 서태지측의 주장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이재수 측이 서태지측으로부터 '사전 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재수의 레코딩과 뮤직 비디오가 원곡을 희화화했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저작권법상의 '저작인격권', 특히 그 중에서도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 '일신전속성' 같은 골치 아픈 법률 용어를 동원해야 한다. 이는 앞으로 법적 논란을 거칠 문제지만, "서태지와 그의 팬들이 과민반응한다"는 여론이 존재하는 것 같다. 사실 '웃자고 만든' 것에 대해서 정색하면서 '엄숙하게' 반응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재미없는 분위기의 또하나의 단면인 것 같다. '원작의 훼손'인지 '패러디의 승리'인지에 대한 가치판단은 '법으로 제재를 가할' 문제라기보다는 대중문화의 일반적 흐름에 맡기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면 이재수의 작품이 '잘된' 패러디인지 아닌지, 그게 상업적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도 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 번째 문제는 이야기가 다르다. 서태지측은 "컴백홈"의 사용을 사전승인해 달라는 이재수측의 요청을 거부했고, 저작권협회에 '내용증명'까지 보내서 사후승인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월 16일 저작권협회에 의한 사후승인이 났다는 것이 서태지측의 항의다. 이런 논의에서도 '사전 승인', '사후 승인'이라는 복잡한 단어를 이해해야 한다. 요지를 말하면 특정 곡이 발표된 지 일정 기간(통상 1년 반)이 지나면 원작자의 승인이 없이도 그 곡을 재녹음할 수 있다. 원작자가 '죽어도 안 된다'고 말할 경우에도 저작권협회가 승인해주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모호한 표현이지만 "한국의 저작권법은 예술창작물의 기간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저작권협회로 그 권한이 넘어간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보다 상세한 사항을 알고 싶은 분들은 저작권법에서 "저작물 이용의 법정허락", 특히 "판매용 음반의 제작"에 관한 항목을 뒤져 보시길). 문제는 패러디가 아니라 제도와 관행 이상의 관례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것인지 한국에만 특수한 것인지는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법 그자체가 아니라 법이 운용되는 방식이다. 솔직히 말하면 음악산업과 저작권에 대해 알만큼 안다고 생각한 나로서도 이런 말은 금시초문이었다. 물론 저작권협회가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단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처럼 연줄이 중요한 사회에서 이런 조항은 저작권협회와 줄이 잘 닿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사후승인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재수의 음반을 발매한 기획사는 이런 경우에 속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게다가 위 항목이 개정된 것은 2000년 1월 12일이니,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닌 셈이다. 우연치고는 묘하게 편집음반, 리메이크 음반 등이 범람하기 시작한 것과 시기적으로 비슷하다. 리메이크 음반으로서는 최초의 대박이었던 조성모의 [클래식]이 발매된 시점이 2000년 1월 26일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어떤 공모가 있었다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위 조항이 창작물의 사용을 '편리하게' 해주는 효과를 가졌다면 창작자들에게는 독소조항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재편집된 음반의 판매를 통해 창작자가 추가적 수입을 올리기 곤란한 시스템이라면 문제는 더욱 크다. 서태지측은 이번 사건이 "패러디에 대한 제소가 아니며 특히나 이재수 개인에 대한 제소 또한 아니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패러디 행위나 가수 개인에 대한 문제가 이번 사건의 본질은 아니다. 마치 최근의 언론개혁 논란에서 '정부 개입' 여부가 본질적이 아닌 것이나 비슷하다. 어쨌든 한국 사회가 여러 분야에서 꼬여 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무슨 말이냐 하면 작품 그자체에 의미가 '배후'의 여러 세력관계에 대한 복잡한 컨텍스트들에 의해 굴절된다는 뜻이다. 이건 어느 나라라도 그럴 지 모르지만 한국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모처럼 웃게 만들어준 이재수의 노래를 듣고도 이제는 웃기 힘들 것 같다. '웃기지도 않는' 제도와 관행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사족: '옛날 가수들'인 정태춘과 이미배는 재편집 음반에 대해 법정 공방을 벌였지만 모두 패소했다. 대한민국 사법부라는 곳도 참 갑갑한 곳인 듯하다. 마지막으로 궁금해지는 것은 '왜 서태지 이외에 다른 가수들은 왜 이렇게 조용할까'라는 점이다. 그러니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는 말을 믿을 수가 있나... 2001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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