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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수의 패러디에 대한 네 가지 입장

이재수가 누구인지는 다들 알 테니까 설명은 생략. 그런데 이렇게 노래 못 부르는 오빠의 음악을 두고 가요계가 시끌시끌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을 하자. 이재수의 패러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천하의 서태지'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문제 해결 방법이 '법의 심판'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 사건의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웃어넘기고 말면 그만일 줄 알았는데 꽤나 복잡하다. 여기 사지선다형 문제에 익숙한 독자들을 위하여 네 개의 입장을 지문 형식으로 소개하니 답을 선택하라.

① 이재수의 노래는 단지 모방을 통한 원작의 훼손이고 희화화일 뿐이다. 문제가 된 "컴배콤"의 경우 가창력, 편곡, 음질 그리고 뮤직 비디오의 영상 등 모든 면에서 창작자의 작품보다 저열하다. 노래방에서 부르고 말 것을 음반까지 낸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마치 드라마 "용의 눈물"이 인기리에 방영되었을 때 나온 에로 비디오 제목이 "용의 국물"이었던 것이나 비슷하다. 대중문화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작품을 이렇게 고의적으로 낮은 품질로 만드는 것은 그 동안 대중문화를 현대의 예술로 육성해온 여러 아티스트들의 노력을 무화시키는 처사다.
② 이재수의 노래의 본질은 풍자와 해학이다. 그의 패러디는 창작능력이 뛰어나고 기량이 출중한 사람들만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통념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다. 전통문화에서도 풍자와 해학은 엘리트들이 문화를 독점하는 현실에 대한 서민들의 문화적 실천이었다. 더구나 현대 사회에서 대중음악의 의미는 창작자에 의해 사전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 의해 재창조되는 것이다. 나아가 가뜩이나 권위주의적인 한국의 문화적 분위기에서 이런 문화적 실천에 제동을 건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바람직하지 않다.
③ 이재수의 노래는 현재 대중음악계에 팽배한 상업주의의 소산이다. 그가 어떤 주장을 펼치고 있더라도 그의 활동방식은 철저히 주류 연예계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한마디로 그는 TV를 중심으로 하는 쇼 비즈니스의 생리에 따라 만들어진 기획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TV 쇼프로그램에 출연한다든지 대기업 제품의 CF에 출연하는 현상은 체계적인 매니지먼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의 패러디는 진정한 자기표현이 아니라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쇼이고, 그러므로 지배적 통념을 예술적으로 풍자하는 패러디 본연의 정신을 발견할 수는 없다.
④ 이재수는 원래 인터넷이라는 비주류 미디어에서 활동하면서 소수의 자생적 팬을 가지고 있던 존재였다(참고: 그는 지상파 라디오 프로그램을 패러디한 <배칠수의 음악텐트>에서 '신바람 이재수'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그는 분명 대중문화의 비주류 하위구조에서 패러디라는 독창적 소재를 꾸준히 발굴했다는 업적만으로도 평가받을 수 있다. 현재 그의 활동은 일종의 타협으로 보이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를 단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대중매체를 통해 인기를 얻은 뒤 자신의 독자적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답: '정답'은 없고, 각자의 견해가 있을 뿐이다. 단, 각 문항을 선택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경향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①의 경우 문화 엘리트주의 경향이 잠재하고 있다.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은 인정하지만 취향의 다양성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②의 경우 문화 대중주의(populism)경향이 있다. '대중의 정서', '서민의 정서'를 존중하는 자세는 훌륭하지만 대중적인 것 속에도 문화적 가치의 경중이 존재함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③의 경우 '인디'나 '언더'에 대해 다소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디어 상으로 독립된 것이 미학적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④의 경우 이른바 '하위문화(subculture)'의 창조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말하는 아저씨는요?"라고 묻는다면 양비론도 아닌 사비론(四非論)이라고 말할 수밖에. 그저 웃어넘길 일이 이다지도 복잡하게 꼬여버리는 한국의 대중문화판이 싫어질 뿐이라고나 할까. 01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