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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계 시스템의 개혁을 위한 포럼, 엉망진창이 되다 지난 여름 한국의 '가요계'는 매우 뜨거웠다. 기륜실 대 박진영, MBC 대 연제협, 서태지 대 이재수, 음반협회 대 소리바다라는 4가지 '대립'만 말해도 뜨거움이 전해질 것이다. 이런 대립들의 시시비비를 가리고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지난 8월 29일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는 제 3회 대중음악계의 정기정책 포럼이 열렸다. 이른바 '공청회'라고 하면 적절할 것이다.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이하 '문화연대')라는 시민단체, 국회 문화관광부에 소속된 심재권, 정범구 두 국회의원실도 공동 주최자였다. 포럼을 주관한 측은 문화연대 산하의 매체문화개혁위원회, 그리고 문화연대와는 별도의 조직인 '대중음악 개혁을 위한 연대모임'(이하 '대개련')이었다. 이 포럼에 대해서는 부연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문화연대는 앞서 언급한 대립을 포함하여 몇 차례 공개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대중음악에 관련된 이슈들을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조명하는 일을 수행해 왔다. 그러니 대중음악이 단지 '연예'나 '비즈니스'일 뿐만 아니라 '문화'이자 '정치'가 전개되는 장(場)이라는 사실을 제기해 온 셈이다. 또한 국회에서의 포럼은 이슈 중심의 비정기적 토론회와는 달리 보다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 혹은 개혁을 모색하려는 의도로 조직되었다. 제 1차 포럼에서 토론한 '가요 순위 프로그램 페지'라든가 제 2차 포럼에서 토론한 '음반유통의 개선'같은 논제가 그것인데, 이들은 현재 어느 정도의 성과도 거둔 상태다. 정기 포럼은 모두 네 차례로 예정되어 있는데, 무언가 '결실'을 맺어야 할 시점이라서 세 번째 포럼은 '한국 가요 시스템의 문제와 대안'이라는 포괄적 주제를 잡고 진행되었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이날의 토론은 그리 생산적이지 못했다. 시민운동단체(문화연대, 대개련), 업계의 이익단체(연제협), 방송계(MBC), 음악인(정태춘), 학계(성공회대학교 최영묵 교수), 팬클럽(조용필 팬클럽)에서 1명 이상의 연사가 나섰는데, 주최측은 '너무나도 다양한' 입장을 조정하여 시스템을 개혁할 매스터플랜을 내놓는 데는 실패했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겉돌면서 '각자의 입장의 차이'를 확인하는 데 그쳤다(이 점에 대해서는 철저한 준비 없이 임했던 사회자로 초청된 본인의 책임도 작지 않다). 순위 프로그램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이런 식이다. 시민단체에서 순위 프로그램의 폐단을 지적하는 발제를 한다 -> 연제협 등 가수들의 이익단체에서는 '방송권력'으로 인해 순위 프로그램을 통한 홍보가 불가피하다고 항변한다 -> 지상파 방송에서는 소비자(청취자)가 원하기 때문에 순위 프로그램을 폐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 팬 클럽에서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들을 방송에서 외면한다고 항의한다 ->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온다. 이 날의 토론은 초점을 잃어버린 발제와 진행도 문제였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사고하고 토론하는 자세가 애초에 없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각자의 이해와 관심에 따라 어떨 때는 'MBC와 연제협 중 누가 옳으냐', '서태지와 이재수 중 누가 옳으냐', '소리바다와 음반협회 중 누가 옳으냐'라는 쟁점이 부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를 '시스템의 개혁'과 연관지어 논점을 잡아가고 토론하려는 자세를 보여준 사람은 없었다. 상대적으로 입장이 초연한 대학교수와 음악인이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이들의 선의만 가지고는 토론을 생산적으로 이끌어갈 수 없었다. 게다가 연제협과 MBC 측에서 나온 두 사람의 토론자는 '자기 할 말만 하고' 토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자리를 떴다. 음악인 한 명도 이런 맥빠진 분위기에서 토론을 진행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는지 중간에 자리를 떴다. 결국 마지막에는 연제협 이사 한 명과 방청객으로 나온 팬클럽과의 '진실 게임'이 토론의 주된 테마가 되고 말았다. 아직 우리는 대중음악을 비롯한 대중문화를 정치적으로 토론하는데 익숙하지 못해 보인다. 가요계,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요체는 토론회가 맥빠진 자리가 되었다는 점과 더불어, 최근 몇 개의 사건들에서 보듯 이날 토론에서도 연제협(및 음반업계) 측의 '적극적' 주장이 개진되었다는 점이다. '창조 산업'이라든가 '컨텐츠 산업'이라는 21세기형 외국산 용어들이 연제협 측에서 음악산업을 수식하는 표현들이다. 중국과 동남 아시아 지역에 불고 있다는 '한류(韓流)' 열풍은 이런 표현들이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실현가능한 목표라는 자신감을 낳고 있다. 몇몇 나라들의 경우 정식 외교로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한류가 해결했다는 말도 들리고, '이제 한국 대중음악이 아시아를 제패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문화산업의 육성'이라는 정부의 의지와 맞아떨어지면서 논리적 설득력까지 갖추고 있다. .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우리 음악'이 외국의 젊은이들로부터 열광적 반응을 얻고 있는 마당에, 듣는 음악이 아니라 보는 음악이라느니, 장르가 10대용 댄스음악 중심으로 편중되어 있다느니, 라이브가 아니라 립씽크 중심이라느니, 계약관계가 불공정하고 저작권제도가 불투명하다느니, 클럽을 비롯한 공연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느니 하는 말들은 시쳇말로 '말이 필요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 시민단체든, 학계든, 방송계든, 언론계든 열심히 잘 하고 있는 음악산업 종사자들에게 박수 치면서 성원해 줄 일이지 '시스템 개혁'을 운운하는 일은 '부당하다'는 것이 연예 비즈니스계의 입장으로 보인다. 연예계 종사자들의 그동안의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들의 주장대로 한국의 가요가 막강한 자본을 앞세운 다국적 메이저 음반사 및 그들이 거느린 세계적 스타들과 경쟁해서 국내시장이라도 성공적으로 지켜왔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켜온 수단과 방법이 '비공식적'이고 '비합리적'이었다는 점도 눈감아줄 수도 있다. 외국 시장까지 어렵게 개척하고 있는데 용기를 북돋와주지는 못할 망정 '성토'하는 것이 이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것도 이해할 수는 있다. 게다가 대부분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자수성가한 분들이 '말만 잘 하는' 가방끈 긴 사람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리가 없다. 다 좋다. 그런데 요즘 우리 주위에 '들을
만한 음악'이 있는가. 이건 단지 취향의 문제인가.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현재의 아이돌 스타 시스템이 그나마 1980년대까지 '음악인'을 발굴하고
재생산시켜 왔던 시스템을 붕괴시켰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 스타가 되는 시스템이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은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산업의 '인프라'와 관련된 문제다. 대중음악 개혁을
위한 연대 모임에 조용필과 이승환의 팬 클럽이 가담하는 현상은 정말
아이러니다. 정상적 시스템이라면 조용필과 이승환같은 존재는 주류의
스타덤에서 호의호식하고 있어야 해야겠지만, 현재의 이상한 시스템
하에서는 팬들이 나서서 대중음악 시스템을 '개혁'하는 운동에 가담해
있다.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대중음악은 이제까지 그래왔듯 그저 '순수한 연예'일 뿐 '창조적 자기표현'의
수단이 될 전망은 없어 보인다. 음악이 '들어서 즐거우면 그만'이지
굳이 창조적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어야만 하느냐고 물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창조산업'이란 것이 이제까지 존재해 왔던 '연예산업'과 똑같은
것이라면 굳이 새로운 용어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이런 말은
입만 아프니 그만 두자. 그런데 '한류'와 '가요'에 대해서 대부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데 왜 당신만 그렇게 비관적이냐고? 가을이라서
그런가보다. 델리 스파이스의 신보나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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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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