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view:

  • 한국에서 '록 문화'든, '인디 문화'든 잘 안 될 수밖에 없는 이유들

1. 한국의 인디 음악은 하늘이 반대한다?

1995년 7월 29일 포천군 화현면이라는 곳에서 '한국판 우드스톡'을 꿈꾸면서 '코리아 록스탁 페스티벌'이 일주일 예정으로 열렸다. 페스티벌을 주최한 기획사는 '한국 록 음악이 너무 침체되어 있어서 록의 활성화를 위해' 마련한 행사였다고 말했다. 특이하게도 별도의 협찬을 받지 않고 참여 뮤지션들의 '촌지'를 모아서 행사비용을 조달했다. 그렇지만 관객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나마 비가 계속 내리면서 하나둘씩 자리를 떴고 급기야 나흘째인 8월 1일 모든 스태프들이 철수했다.

1999년 7월 인천 송도에서는 대규모 국제 록 페스티벌 [99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이 열릴 예정이었다. 실제로 절반은 열렸다. 그러나 물경 18만원의 입장료를 내고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생만 직싸리하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다름 아니라 때마침 쏟아진 폭우로 이틀로 예정된 순서에서 첫날 일정만 가까스로 절반 정도 치러졌을 뿐 둘째 날 일정은 모두 취소된 것이다. 주최측은 10억을 넘는 적자를 보았고, 그 결과 미리 약속했던 환불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1년인 올해도 7월 28일부터 3일 동안 경기도 동두천 어등레포츠공원 특설무대에서 '소요 록 페스티벌 2000'이 개최될 예정이었다. 국제 페스티벌은 아니었지만 국내 록 음악의 산 증인들과 신인들이 한 데 모일 예정이었던 이 페스티벌 역시도 때마침 '경기 북부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인해 거의 모든 일정이 취소되고 말았다. 주최측과 참석자의 기분은 비장함에서 비감함으로 바뀌었다.

이렇듯 한국에서 야외 록 페스티벌 중에는 '천재지변'으로 인해 좌초된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천재지변을 당하지 않은 경우도 사정은 비슷했다. 2000년의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처럼 '예매 저조'라는 이유로 사전에 취소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개최할 예정이었던 '속초 대한민국 록 페스티벌'도 비슷한 이유로 취소되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하는 [독립예술제]는 정부로부터 일정한 지원을 받아 치러지고 있으므로 이런 참담한 실패를 맛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 행사도 '오는 사람만 오는'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왠지 이야기가 '하늘이 돕지 않는다'는 식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미신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똑같은 일이 반복되면 사람의 마음이 약해져서 불가사의한 힘의 존재를 믿게 되는 모양이다. 어쨌든 한국에서는 결국 '록'이든, '언더'든, '인디'든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독립적으로 음악 문화를 일구어보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있다. 그래서 그 원인들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2. 아이돌 스타 시스템 -> 상업적 대중문화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주류 연예 시스템의 성격은 'TV 의존형 아이돌 스타 시스템'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조금 부연하면 소규모 기획사들이 TV를 통한 홍보를 통해 '대박'을 목표로 행동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은 어디나 있기 때문에 한국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혁혁한 공로도 세우고 있으니 '국위선양'에 유난히 약한 민족성을 고려한다면 비판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문제는 '아이돌 스타 시스템'과는 조금 다른 시스템이 성립해 있는 '선진국형' 시스템과는 달리 한국에는 오직 아이돌 스타 시스템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음악적 재능이 있는 사람이 음악인이 되는 통로는 차단되어 있다. 영미의 단어를 사용하면 '테스트 시장'이나 '탤런트 풀'이 부재하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 시스템에 편승하여 벼락출세를 하든가, 아니면 평생을 지하(언더그라운드)에서 썩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음악을 하고 싶은 사람을 음악인으로 훈련시키고 양성하는 시스템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른바 '틈새 시장'이 부실하다. 틈새 시장(niche market)이란 '한정되지만 확실한 수요'를 가진 시장이고, 이 시장을 담당하는 것이 이른바 '인디 레이블'이다. 재즈나 블루스같은 오래된 음악, 새로운 음악이라도 인디 록, 테크노같이 수요가 크지 않은 음악이 시장에서 일정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상은 이 때문이다. 인디 레이블이 제작하는 음악들이 '정말로 비상업적이냐'라는 점에는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메이저 레이블의 상업주의와는 다르다는 점은 사실이다.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외국' 음악에 대해서는 틈새 시장이 있지만, 국내 음악 중에는 이런 경우가 거의 없다. 쉽게 말해서 외국 음악에는 '장르'의 구분이 존재하지만 한국 음악은 모두 '가요'로 분류된다. '가요'란 '최신 인기가요'이고 옛날 말로는 '유행가'다. '흘러간 가요'는 음반판매점에 없고 라디오에서나 가끔 흘러나올 뿐이다.

그런데 음반산업 관계자들도 나름대로 이유있는 항변을 한다. 아이돌 스타가 아니면 도대체 음반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연도 소수의 스타들을 제외하고는 수지타산 맞추기 힘들다고 한다. 기성 세대들은 정말로 음반을 사지 않고 공연도 보지 않는 것일까. 그게 사실이라면 이유는 무엇일까.

3. 열심히 일하는 사회 -> '문화 없는' 기성세대의 문화  

외국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열심히 일하는 사회(hard working society)'로 압축된다. 이 말은 근로시간이 길고 노동강도가 높다는 객관적 사실 외에도 열심히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사람을 벌레나 쓰레기처럼 취급하는 정서적 합의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IMF 구제금융 사건 이후 '항시적 구조조정'이 일반화된 상태에서 '생존'하려면 별 수 없다.

한국의 노동시장의 특성은 '해고당하기는 쉬워도 재취업하기는 힘들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식 '유연 노동시장'과도 다르고, 일본식 '종신고용제'와도 다르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에서는 직장에서 짤리더라도 조금 낮은 보수를 받는 것만 감수한다면 다른 직장이나 직종을 선택할 수 있고, 일본에서는 한번 직장에 고용되면 알아서 그만 둘 때까지는 '평생직장'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반면에 한국은 위에서 말한 그대로다. (일본식 종신고용제는 최근에는 많이 퇴색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 비한다면 '고용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편이다).

젊었을 때는 음반도 꽤 모으고 공연도 자주 다닌 사람들 중에 취직한 뒤 음악으로부터 멀어지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당연하다. '음악이나 듣고 앉아 있다'가는 직장세계의 살벌한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영어회화나 건강관리는 몸값을 올리기 위한 선택사양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필수사양이 된 지 오래다. 이런 상태에서는 여가 시간이 나더라도 부족한 잠을 보충하거나 소파에 퍼질러 앉아 TV를 보는 것 말고 '문화 생활'이라고 할 게 별로 없다. "여름에 한 달은 쉬어야 가을 이후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유럽인들의 말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기성 세대에게는 음악 문화가 없다. 청소년기에 듣던 음악을 재탕 삼탕으로 반복해서 듣다가 노래방에서 한 곡조 부르는 것을 문화라고 포함시킨다면 모를까. 그러니 4시면 직장에서 퇴근해서 '인디 밴드'나 '클럽 DJ'를 한다는 미국의 '직장인'의 말을 들으면 어안이 벙벙해질 뿐이다. 한국에서 직장인이면 음악의 수동적 소비자가 되기도 힘든데 말이다. 그러면 직장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학교에 다닐 동안에는 여유가 있을까. 그것도 만만치는 않다.

4. '일등'이 되기 위한 교육 -> 획일적 청소년 문화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한국에서는 성인이 되면 음악을 소비할 시간조차 작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는 음악의 '생산'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음악의 생산과 소비의 경계는 날이 갈수록 흐릿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공연과 레코딩 세션에서 연주하는 기타 연주자는 기본적으로 음악 생산자에 속하지만, 악기, 음향기기, 레코딩 장비, 악보 등의 소비자이기도 하다.  훌륭한 연주자일수록 다른 사람이 연주한 음반이나 비디오를 구매하는 일도 더 많다. 게다가 직업적 음악인이 되기 이전 단계에서 연주인은 생산자보다 소비자에 더 가깝다. 힙합이나 테크노의 DJ의  경우도 다른 사람이 만든 음반(혹은 샘플 CD)이나 전자음향기기의 적극적 구매자가 아니었으면 직업적 음악인이 되기 힘들다.

한마디로 한국에서는 음악 소비자에서 출발하여 음악 생산자가 되기 위한 '과도기'가 극히 짧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적어도 20대 이전에 미리 해두지 않으면 기회는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다. 직장에 다니면서 생계를 벌면서 음악 생산자로의 길을 개척할 가능성은 극히 협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그래도 가능성이 클까. 그것도 만만치는 않다.  

한국에서 교육은 사교육이든 공교육이든 창의성 개발과는 거리가 멀고, 이는 문화적 취향에도 영향을 미친다. '모범답안'이 존재하고 그걸 똑같이 베껴 써야 등수가 높아지는 교육제도에서 '어설프더라도 개성적인' 표현의 가치가 인정될 여지는 협소하다. 이런저런 음악을 접하면서 소비자로서 자신의 취향을 확인하고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을 습작처럼 만들어보는 과정을 충실히 갖기는 힘들다. 그러니 음악을 하려거든 '학업을 포기하고' 일로매진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부모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같이 '공부 안하고 음악이나 들으면서 기타나 치고 있는' 자식을 혼내면서 기타를 뽀개는 부모는 사라졌지만, 그대신 '공부도 잘 하고 취미생활도 잘 해라'고 말하는 부모가 등장했다. 겉으로는 "니가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해라"고 말할 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뭘 해도 좋으니 1등만 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음악을 듣는 문화도, 음악을 만드는 문화도 '일등부터 꼴찌까지 등수를 매기는' 교육문화와 관련이 없지 않다.

아이돌 스타와 연관된 이른바 '빠순이·빠돌이 문화'(주의: 경멸할 의도는 없다)만 그런 게 아니다. 음악 깨나 듣는다는 사람들의 이른바 '매니아 문화'도 오십보 백보다. 인터넷의 각종 게시판을 돌아다니면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남이 싫다고 그러면, 서로 입에 거품을 물고 싸우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라는 충고는 따분한 설교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종교 믿듯이 음악 듣는 습성은 '문화적 취향에도 학교에서 보는 시험성적처럼 1등부터 꼴등까지 위계가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 때문으로 보인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음악을 꾸준히 한다는 자체가 힘든 일이니까 이건 좀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한국은 '카피'가 유난히 발달한 나라같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 한 음악인의 표현을 빌면 "기타쟁이는 많아도 기타리스트는 별로 없는" 상황 말이다. '개성 있는 연주'보다는 '잘 하는 연주'가, '독특한 사운드'보다는 '매끄럽게 잘 빠진 사운드'가 우대받는 분위기도 비슷하다. 이 모든 것이 획일적 입시교육의 자동적 산물은 아니겠지만 관련이 적지 않아 보인다.    

5. 대학가의 '민중문화' 이후 -> 부모의존적 대학생문화    

언제부터인지 한국의 '대학생'들은 매우 '중고생'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찾아보면 다른 점이 있겠지만 정신적·물질적으로 '부모에 의존적'이라는 점은 똑같아 보인다. 재정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부모에 의존적이고, 그렇게 살다보니 대학생이 되어도 '독립'은 요원하다. 한 예로 '인디' 문화에 관심을 갖는 대학생들마저도 집에서 받은 '용돈'으로 지출할 뿐이다. 학자금을 대출받아서 웬만한 구매력(돈을 빌렸으니까)과 독립심(나중에 갚아야 하니까)을 모두 확보하는 문화는 한국의 경우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경제적 구매력도, 정신적 독립심도 모두 없이 부모와 가족에 얽매여 있다. .

만약 당신이 '인디 문화'나 '인디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본토에서 저 개념이 어차피 '중산층 대학생'의 문화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 인디 문화는 대학생 문화의 '주류'와 거리가 있고, 대학생들 중에서 문화에 관심이 많은 특정한 부류의 문화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도 알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방금 언급한 가족제도 이외의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1980년대 이래 대학생문화의 저항적 조류는 대체로 '민족적', '민중적'이라는 수사를 가지고 있다. 그게 '진짜' 민중문화인가는 따져봐야 되겠지만, 아무튼 지금도 '운동권 문화'에는 저런 관습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분명하다. 반면 인디 문화(라고 불리는 문화)는 아직도 '외국으로부터 영향받은 문화'라든가 '소비주의의 또하나의 변종'이라는 꼬리표를 띠지 못하고 있다. 운동권 문화는 인디 문화를 '정치에 무관심하고 심지어는 문화 제국주의의 변형'이라고 바라보고, 인디 문화는 운동권 문화를 '정치과잉적이며 반(反)국제주의적'이라고 생각한다. 한 예로 음악의 경우 민중가요는 인디 음악을 '탈정치적이고 영미추종적'이라고 오해하며, 인디 음악은 민중가요를 '비음악적이고 국수주의적'이라고 오해한다.  

여기서 누가 옳으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그렇지만 이런 미묘한 대립도 소수의 문제일 뿐이다. '보통의' 대학생들의 지배적 취향은 '상업적 주류 대중문화'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한 예로 어쩌다가 방송국 주최로 대학 캠퍼스에서 열리는 준(準) 관제 공연들에서 중고생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대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이 '한심하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주류에 대한 확고한 대안'이 없는 상황의 반증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1980년대 이후 '정치적 저항'과 '청년 반항'의 생산적 접속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뭐 그게 꼭 일어나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10대 취향의' 대학생 문화는 지속될 것이라는 말이다.  '10대 취향'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물론 '취향없이 오락가락한다'는 말이 별로 좋은 뜻은 아니겠지만 10대들이 그렇게 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와 근거가 있다. 20대가 넘어서 그러는 것도 별 문제는 없다. 문제는 20대 이후에도 10대 시절과 별다를 바 없다면, '인디 문화'도 '대학생 문화'도 성립하기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6. 마치며: 새로운 문화운동에 대한 '망상'을 위하여   

교육제도, 가족제도, 주택제도같은 제도들이 하루 아침에 변화될 리는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록 문화든, 인디 문화든, 언더 문화같은 것들이 한국 사회에 뿌리내릴 확률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이걸 뿌리내리려면 제도개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텐데, 이런 '운동'를 전개하는 것에 합의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음악 문화가 잘 되기 위해 사회개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라고 말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언제나 '먹고 사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으니까.  

그런데 중요한 제도적 변화가 발생할 조짐이 보인다. 다름 아니라 '주 5일 근무제'다. 이 제도가 몇 년 내에 시행되기는 할 모양이다. 그렇다면 '열심히 일하는 사회'라고 표현한 한국 사회의 정서 구조가 서서히 바뀔 것 같다. 여가 시간이 많아지면 아무래도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할 것 아닌가. 그런데 한 조사에 의하면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 하고 싶은 일은?"이라는 질문의 40%가 "학원에 가서 영어 공부하겠다"는 답변을 낳게 한다. 아, 그러나 뼛속깊이 새겨진 노동의 규율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문화 소비 지출을 늘리겠다'고 대답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제일 중요한 이유를 빠뜨린 것 같다. 다름 아니라 한국 사회를 수천년 동안 지배해 온 도덕주의와 권위주의다. 그 핵심은 여전히 '남북이 분단된 상황'이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사전검열을 행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온 거대한 국가권력이다. 이제 '개혁'한다고 하지만 도무지 개혁될 것 같지 않은 그 권력 앞에서 괜히 사소한 문제들만 건드렸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음악이 과연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음악이 생활양식, 즉 라이프스타일을 바꿔 온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생활양식이 바뀌어도 사회의 기본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보통 때는 그럭저럭 살 만한 것 같으면서도 특정 순간에 그토록 스트레스가 강하게 다가오는 건지도 모른다. 그럴 때 '좋은' 음악이 할 수 있는 기능이란 '기껏해야' 마음 속의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게 '기껏'인지 아닌지는 각자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지만, 그런 망상을 가진 사람은 새로운 '문화 운동'을 준비할 시기가 온 것 같다. 단지 특정 예술형식을 잘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 전반을 변화시킬 운동을.   20010924

* 서울예대 학보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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