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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스파이스라는 이름은 아직도 일반 가요 팬들에게는 생소하다. '[이소라의 프로포즈]에도 출연할 정도'고 1년 전에는 '예술의 전당'의 야외무대에도 섰지만, 이들의 음악은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음악이다. 특별히 어려운 음악이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그렇다. '남녀노소 지위고하 막론하고 사랑받는 가요'라는 한국 대중음악의 '가치기준'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한국에서는 왜 록 음악이 인기 없는가'라는 맥빠진 논의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저런 '난해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단칼에 내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델리 스파이스의 음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록 음악'과 다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록 음악'이란 것이 머리를 길게 기르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서 전기 기타의 곡예와 함께 젊음의 분노를 토해내는 음악이라면. 이런 록 음악의 관습적 코드에 비한다면 델리 스파이스의 모습은 수수하고, 음악은 말랑말랑하다. 이들의 히트곡(?)인 "챠우챠우"의 가사가 '록 스피릿을 외치던 1990년대 중반의 록 담론에 대한 반대'라는 사실을 안다면, 이들의 음악적 성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델리 스파이스는 흔히 '홍대앞 클럽'과 연관된 '인디 록'으로 분류된다. 용어가 생경한 사람을 위해 부연하자면, '인디(indie)'란 거대 음반사가 아닌 소규모 음반사(이른바 '인디 레이블')에서 '자기 힘으로 스스로(Do It Yourself)'라는 신조로 음악 활동을 전개하는 지향 혹은 태도를 지칭한다. 그렇지만 델리 스파이스의 경우 이런 인디의 규정과도 거리가 있다. 그들이 경력의 초기에 홍대앞 클럽에서 연주하면서 열성 팬들을 확보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식 데뷔는 인디 레이블과는 거리가 있는 '기성' 음반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지난 번 '연제협 파동' 때 대변인을 맡아 TV에 몇 번 얼굴을 비친 가요계의 실력자가 이 음반사의 대표(사장님)다. 델리 스파이스가 그 동안 발표한 세 장의 음반은 '가요 기획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시스템에서 제작되고 홍보된 셈이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그렇다. 밴드 멤버인 윤준호가 한 TV프로그램에 나가서 "저희는 처음부터 언더그라운드 밴드가 아니었고, 지금도 오버그라운드 밴드가 아닙니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의미일 것이다. 델리 스파이스의 음반은 (업계 용어로) '대박'을 터뜨린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쪽박'을 찬 것도 아니었다. 공식적 판매량을 집계하지 않는 한국의 음악산업의 관행 상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하나의 앨범 당 5만장에서 10만장 사이의 판매고를 올렸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을 뿐이다. 이런 판매고는 '성공'이라고 말하기도, '실패'라고 말하기도 모호한 수치다. 경제적 성과의 모호함은 이들이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차지하는 지위의 모호함과도 직결된다. 이들은 오버그라운드도 언더그라운드도 아닌 위치에 서 있을뿐더러 언더그라운드 내에서도 주류가 아니다. 언더그라운드라는 용어를 1980년대부터 활동해 왔던 뮤지션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한다면, 이들은 들국화, 신촌 블루스, 시인과 촌장 등으로 대표되는 40대 뮤지션들과 크라잉 넛, 노 브레인으로 대표되는 20대 뮤지션들 사이에 모호하게 걸쳐 있다. 한때 이들과 함께 활동했던 언니네 이발관, 노이즈가든 등 '인디 1세대'의 활동이 소강상태를 보이는 상황에서 이들의 고독은 두드러져 보인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비교적 대중적인 편이다. 밴드의 두 축인 김민규(기타, 보컬)과 윤준호(베이스, 보컬)의 곡들이 고루 실렸고, '형들'의 그늘에 가려있는 듯한 드러머 최재혁(드럼, 보컬)도 한 트랙에서 만만치 않은 작곡 솜씨를 뽐냈다. 김민규는 "뚜빠뚜빠띠"와 "항상 엔진을 켜둘께"에서 애조를 머금으면서도 경쾌한 곡을, 윤준호는 "안녕, 비밀의 계곡", "동병상련" 등에서 향수를 담으면서도 귀에 잘 들어오는 곡을 선보였다. "천사의 자장가"(김민규 작곡)나 "낯선 아침"(윤준호 작곡)처럼 '대곡' 스타일도 보여줬고, "Doxer"에서는 공동 작곡을 했지만, 이런 곡들도 '대중성'을 희생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 앨범은 발매되자마자 한 인터넷 CD 숍에서 2위를 차지했고, 한 달 가까이 지난 지금도 9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은 이번 앨범에 대해 그다지 '좋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이런 현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들의 초기 팬들은 1997년에 발표된 데뷔 앨범이 '가장 좋았다'고 말하면서 2집 [Welcome to the Delihouse]부터 1집에서 보여준 독특한 느낌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이런 견해는 "1집 음반에서는 이들의 음악이 '가요와 다르게' 들렸는데 2집부터는 '가요처럼 들린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기 작곡가 유희열은 델리 스파이스의 1집 음반을 들은 뒤 "이건 가요가 아니라 팝이네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건 무슨 뜻일까. 아마도 가사가 영어라는 뜻이 아니라 가사는 영락없는 한국어임에도 불구하고 사운드의 질감이 '한국 가요'보다는 '영미 팝'과 비슷하다는 뜻이었다. 이때 '영미 팝'이란 단지 음악의 국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건 처음에는 낯설지만 한번 중독되면 헤어나기 힘든 소리의 유혹이다. 다른 나라에 살았더라면 중독과 유혹이 덜했을지 모른다. 미국 등 서양의 선진국들, 동양이라도 가까운 일본처럼 음악산업의 글로벌 센터에 살았더라면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었을 것이다(반면 아예 생존이 힘든 후진국이라면 중독이고 나발이고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델리 스파이스의 음악은 1990년대 중반 '홍대앞'이라는 공간의 사운드다. 당시 이곳에 모여들던 젊은이들은 '갑갑한 한국인의 삶'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영미권으로부터 유입된 문화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다. 이런 이야기는 오랜 역사를 갖는 것이고 따라서 깊게 다뤄야 할 이야기지만 그건 그만 두자. 오늘 할 이야기는 그 중 하나의 측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름 아니라 델리 스파이스는 음악의 '소비자'로부터 출발하여 '생산자'가 된 케이스라는 점이다. 이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뮤지션이라면 공통적인 것 아닐까. 맞다. 그렇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내가 만난 뮤지션들에게 물어본 경험에 의하면 현재의 직업적 음악인들 대부분은 사춘기 시절 들었던 음악을 평생의 지향으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음악이 직업이 된 다음에 듣는 음악은 '팬'이었던 시절에 듣는 음악과는 영 다르다는 것도 공통적인 말이었다. 당연하다. 그저 좋아서 듣던 음악이 '먹고 살기 위해' 듣는 음악과 같을 리가 없으니까. 반면 델리 스파이스의 멤버들은 지금도 가끔 레코드숍에 들르고, 인터넷으로 음반을 주문하는 등 이른바 '헤비 리스너(heavy listner)'의 삶을 살고 있다. 그건 '외국에서 뭐가 유행하는가'를 살펴보는 것과는 거리가 있고 단지 '음악이 좋아서'라는 순박한 동기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 남자의 라이프 싸이클을 고려한다면 직업적 음악인들은 군대 가기 전에는 '순수한 소비자'이고, 군대를 갔다 온 다음에는 순수한 생산자가 된다. 반면 델리 스파이스같은 경우는 '소비자와 생산자의 비율'에서 후자의 비중의 전자의 비중보다 조금 큰 정도다. 그런데 이들의 주축 멤버들의 나이도 이제 어느덧 30대에 접어들었다. 요즘 연예계 시스템을 고려한다면 뮤지션으로 활동하기에는 환갑에 접어든 나이다. 달리 말한다면 소비자로서의 낭만을 계속 누리기는 힘든 나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런 노랫말이 유난히 슬프게 들린다. "하교 길에 기웃거리던 우리 동네 작은 레코드샵 모두 모두 안녕 / 오후만 있던 일요일의 홍대앞 안녕 보고픈 회원들 모두 안녕"("안녕 비밀의 계곡). '홍대앞 안녕'이란 음악 생산자와 음악 소비자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던 시기, 따라서 지속될 수 없었던 꿈에 대한 단절을 의미한다. 이제 이들은 본격적으로 '전업적' 뮤지션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들이 '연예계'의 관행에 잘 적응할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만약 한국의 연예계가 지금처럼 '스타
시스템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면 이들의 꿈은 보다 현실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이들의 모호한 지위는 한국에서
음악을 진지하게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음악산업의 세계적 시스템 속에서
차지하는 모호한 지위의 한 단면이다. 비단, 음악만 그런 것 아니겠지만.
이들에게도 한국의 문화적 지형도는 아직도 회색빛으로 칠해져 있다.
* 월간 [질러]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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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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