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통일 그날 음악회]: 2001. 6. 9. 올해 들어 같은 장소에서 열린 두 종류의 대형 공연에 다녀 왔다. 장소는 목이 좋아서 대형 공연의 메카로 자리잡은 서울 신촌에 자리잡은 모대학교의 노천 극장이었다. 지난 6월 9일에는 [통일 그날 음악회]라는 공연이, 10월 6일에는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이라는 공연이 열렸다. 또하나의 공연이 있었지만 사정 상 참석하지 못했으므로 오늘은 두 공연에 대한 이야기로 한정하자.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는 이유만으로 두 공연을 비교하는 일이 얼마나 타당할지는 모르지만, 내가 경험한 두 공연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청중의 연령대 뿐만 아니라 문화적 취향이나 정치적 성향도 달라 보였다. 잠시 객석의 모습을 스케치해본다면, 6월 9일의 [통일 그날 음악회]에서는 검은 머리카락에 짧은 다리에 거무튀튀한 피부를 가진 30대의 아줌마·아저씨들이 관객의 대다수였다면 10월 6일의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에서는 울긋불긋한 머리카락에 긴 다리에 뽀얀 피부를 가진 20대의 대학생들이 대다수였다. 10대들도 두 공연 모두 관객으로 참석했지만, 이유는 좀 달라 보였다. 6월의 공연에서는 '선생님이 가보라고 해서' 교복을 입고 참관한 듯한 '중고딩'이 눈에 띄었던 반면, 10월의 공연에서는 사복으로 갈아입는 등 대학생처럼 보이려는 중고딩이 대부분이었다. 단정적인 느낌이 없지 않지만 '두 공연을 모두 참석한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공연의 분위기가 달랐다는 이야기다. [통일 그날 음악회]의 기획자는 가수 전인권과 시인 김정환이었고, 그날 무대에 오른 사람은 들국화, 정태춘, 사랑과 평화, 이은미, 장사익 등 베테랑 뮤지션들이었다. 정태춘과 장사익을 제외하면 '록 뮤지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정태춘의 경우도 록 음악과 그리 거리가 먼 것은 아니다. 공연 이름이 [통일 그날 음악회]였던 이유는 두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민중후보'로 출마했던 백기완 선생이 운영하는 통일문제연구소에서 펴내는 계간지 [노나메기]를 후원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장의 분위기는 마치 1980년대의 '대중집회'와 '록 콘서트'를 결합한 것이었다. 그건 어쩌면 1980년대 중반 경 내가 마음 속으로 바랬던 꿈이 드디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음악인들은 왜 정치적으로 무관심할까"라든가 "한국의 운동가들은 왜 문화적 취향이 고루할까"라는 오래 전부터의 생각이 편견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운동권'과 '가요판'이라는 다른 장에 있었지만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간 사람들이 만나지 못할 이유는 없고 그게 '이제서야' 이루어졌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꿈이 현실이 되었을 때 예상보다는 감격스럽지 않았다. 그걸 두고 "이런 류의 행사는 투쟁했던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일 뿐"이라고 단정하지는 것은 자의적 평가일 것이다. 게다가 이런 평가는 '이제 다시 시작하려는' 주최자들의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방관자의 논평일 것이다. 그렇지만 연주되는 음악의 내용과 행사의 취지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대중음악계의 베테랑들이 1980년대 그들의 '히트곡'을 연주할 때는 "다른 장에서 활동했어도 같은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 사이의 공통된 정서가 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1980년대에 '대중가요'와 '민중가요'라고 불리는 두 음악 사이의 괴리를 생산적 긴장으로 작용시키기 위해서는 단지 같은 무대에 서는 것 이상의 '새로운 음악적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주최측의 의도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집단적 주체성을 부활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보다 새롭고 적극적인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말을 한다면 "밖에서 말만 하지 말고 와서 좀 도와줘라"고 말하겠지만. 2.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2001. 10. 6. [통일 그날 음악회]가 '1980년대적'이었다면,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의 분위기는 '1990년대적'이었다. 크라잉 너트, 노 브레인, 어어부 프로젝트, 언니네 이발관 등 1990년대 중반 경 '홍대앞 인디'라는 단어와 연관되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인디 록 밴드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고, 스네일램프, 롤리타넘버18밴드 등 일본 출신의 밴드들도 참여했다. '언더그라운드의 난타'라고 불리는 공명도 타악기 연주를 들려주었고, 인디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 출신의 국제적 뮤지션'이 이상은도 오랜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객석에는 형형색색으로 머리카락을 물들이고 트렌디한 옷차림을 한 젊은애들이 '여기는 우리끼리'라고 시위하는 것처럼 '스탠딩'으로 공연을 마음껏 즐겼다. 물론 나이가 많아서 체력이 달리거나 성격이 내성적인 관객은 뒤쪽의 좌석에 앉아서 소풍나온 기분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도 있었다. 어느 위치에 있었든 '뮤직 비디오로만 보던' 문화 선진국들의 록 페스티벌 정도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이제 '제대로 된' 페스티벌이 정착해 간다는 뿌듯한 느낌을 여기저기서 관찰할 수 있었다. 이날의 주최측은 다름 아니라 쌈지라는 브랜드로 성공을 거둔 중견기업(?)이다. 쌈지는 공연장, 인터넷 방송, 음반 레이블 사업 등 인디 음악과 관련된 비즈니스에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져왔고, 이 날의 페스티벌도 이런 문화산업의 일환이었다. 공연은 거의 무료에 가까웠지만 '기업 홍보' 차원의 여느 공연과는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 인디 밴드들을 '운동의 대의'에 무리하게 참여시키려고 한다든가,상업적 비즈니스와는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으면서 '맨땅에 헤딩'을 했던 1990년대의 페스티벌과는 달리 번듯한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는 '아름다운 환상'을 심어 주었다. 공연이 끝난 뒤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을 들어보아도 대체로 '좋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물론 '앞으로 인디의 미래는 밝고 창창하다'고 예상한다면 순박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인디 음악도 제대로 된 비즈니스 시스템에서 작동하게 되었다는 판단도 성급한 것일 수 있고, 나아가 점차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것이 인디의 승리라기보다는 비즈니스의 승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시장과의 게임'에서 시장을 이용할 수도 있고 역으로 시장에 이용당할 수도 있다. 이건 앞으로 이런 사업에 직접적으로 발을 담고 있는 사람이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이므로 더 이상의 논평은 무의미할 듯하다. 3. 그룹 사운드 초청공연: 1981. 10. ? 여기서 문득 20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그때 서울의 모 대학교에서는 축제행사의 일환으로 그룹사운드 초청 공연이 열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학우들'은 공연을 실력으로 저지하여 결국 무산시켰다. 그 과정에서 학우들은 짱돌과 각목도 동원했고, 경찰과 '짭새'와도 한판 승부를 벌여야 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때 대학생의 '전위'들은 그룹 사운드가 연주하는 록 음악은 '겉멋 들은 부잣집 자제들의 낭만적 여가생활'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당시의 그룹 사운드는 학교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 존재였다. 이른바 '1기', '2기' 식으로 기수가 있는 그룹 사운드 말이다. 그러니 그룹 사운드는 '외래 문화'와 '관제문화'를 결합한 존재 정도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아마도 당시 짱돌과 각목을 들었던 대학생들이 지금 영화 [친구]를 보면 사운드트랙으로 나오는 로버트 파머(Robert Palmer)의 "Bad Case of Loving You"나 제이 가일스 밴드(J. Geils Band)의 "Come Back"를 들으면서 묘한 향수에 사로잡힐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두 곡을 포함한 '외국의' 록 음악 중 몇몇 곡들은 '인기 팝송'이었을 뿐만 아니라 캠퍼스 그룹사운드가 연주하는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지금은 향수에 젖어서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음악을 그때는 왜 그렇게 싫어했던 것일까. 답변은 간단하다. 위 사건 1년 전쯤 광주에서 유혈 참극이 벌어졌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본질'도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미국 문화 전반 나아가 미국으로부터 영향받은 대중문화는 의식적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1980년대 대학가에서 전개된 문화운동은 '민족적이고 민중적인 문화'를 지향했고, 따라서 '관제축제에 출연한 그룹 사운드'는 대학생들의 공격 대상 이상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러고 보면 참 아이러니다. 20년 전의 대학생의 전위들은 록 음악이 캠퍼스에 '침투'하는 것을 저지시키려고 애썼던 반면, 현재의 대학생의 전위들은 록 음악이 캠퍼스에 진출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건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20년 전과 지금의 정치상황의 차이라든가, 세대별 문화적 취향의 차이로 해석하면 충분할까. 20년 전의 대학생은 정치적이고 집단주의적이었던 반면, 지금의 대학생은 탈정치적이고 개인주의적이라고 비교해 버리면 끝나는 문제일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건 알겠는데, 해결의 실마리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 4. 아! 한대수 그리고... 며칠 뒤에는 한대수의 '처음이자 마지막'
단독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문득 1980년대 초 민중가요 운동에서 '한대수는
보헤미안적'이라고 규정하고 그의 노래를 기피하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1970년대의 낭만'을 소중하게 기억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이런
분위기에 숨막혀 했던 기억도 함께 떠오른다. 한대수가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야만적으로 탄압받았던 인물이라든가 김민기가 여전히 한대수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사실은 별로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술집에서 "물 좀 주소"와 "행복의 나라로"를 목청껏
부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지만. * 계간 <황해문화>에 게재됨
|
Overview:
20010112
앞화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