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0대 이상의 사람 치고 <대학가요제>에 영향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당시 <대학가요제>에 무관심했다는 것은 '왕따'를 각오하는 것이었다. 그건 청(소)년문화의 중요한 이벤트였고, 한번 더 과장해서 말하면 <대학가요제>가 열리는 날은 '고교야구 결승전'이 열리는 날과 더불어 '빅 이벤트 데이'였다. 설레는 마음을 달래면서 집에 돌아와 TV 수상기 앞에 앉아서 대학생 형·누나(혹은 언니·오빠)의 어설픈 듯하면서도 열과 성을 다하는 노래와 연주를 보았던 경험은 많은 이들에게 소중한 것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누가 1등할까'를 맞추는 재미도 쏠쏠했다. 물론 1970년대 중반부터 약 10년간 사이에 국한된 이야기다. 4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 많던 대학가요제들 중에서 남아 있는 행사는 한두개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대학생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서 그런 것이겠지만, 언제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가 주말 밤에 '재방영하는 영화가 뭐 없나...'하면서 채널을 돌리다가 '어, 대학가요제 하네'라면서 우연히 보게 된다. 몇 년째 그런 걸 보면 나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전람회(및 김동률) 이후 '대학가요제 출신의 스타'가 없는 것도 관심이 감소한 현상의 간접적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긴 해도 프로그램의 신설과 폐지가 '자기들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지상파 TV의 세계에서 비록 연례 프로그램일지라도 장수하고 있다는 사실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전통'도 '뿌리'도 없이 '현대'만을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현대적 전통'을 만들어나가는 시도에 반대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대학가요제>가 비용은 만만치 않게 드는 반면 기대할 수익은 크지 않은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대학가요제의 현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도 과연 지금 '대학가요'라는 것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지워지지 않는다. 대학가요라는 단어가 단지 대학에 적(籍)을 둔 사람들이 만들고 연주하는 가요가 아니라 '대학생다운 감성을 담은 가요'라고 한다면, 대학가요는 죽어버린 지 오래다. '대학가요와 대중가요가 절대적으로 다르냐'라는 말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지금 하고 싶은 말은 대학생들의 음악적 취향이 이전처럼 동질적이지는 않고, 그렇다면 '대학가요'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전에는 동질적이었냐'라고 묻는다면, '상세히 논할 필요는 있지만 그래도 그때는 대학생들의 지배적 취향이란 게 있었고, 그건 주류 대중가요에 대한 취향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던 차에 한 음반을 구해서 듣게 되었다. 음반 표지에는 "누구나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습니다. 통기타와 청바지, 그리고 한잔의 생맥주, 목마른 갈증을 해소하며 밤새도록 친구들과 함께 부르던 노래가 있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푸른 시절: 꿈·추억·축제의 채집 음악]이라는 타이틀로 다섯 개의 CD로 이루어진 '박스 세트'였다. 요즘 수없이 나오고 있는 '편집음반' 중의 하나에 속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대체로 허름한 편집과 속보이는 의도를 가진 것들과는 다르다. "최고의 가요제 인기곡만을 수록하여 정성껏 만들었습니다"라는 기획자의 표현대로 정성을 느낄 수 있다. 이 음반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의 주제는 아니다. 단지, 위의 문구들을 보고 '밤새도록 친구들과 함께 부르던 노래들'이 지금은 없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된다. '누구나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표현도 지금 대학생 세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이유는 무엇일까. 진부한 이야기지만 '지금의 대학생들이 대중문화에 물들어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차이가 있다면 4반세기 전에는 대중문화의 주류가 성인지향적이었던 반면, 현재는 청년지향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주요 장본인이 바로 '방송국'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대학가요제라는 행사는 처음부터 그랬는지도 모른다. 대학가요제가 시작된 것이 1977년이고, 그때는 1975년 말의 대마초파동으로 인해 대중문화계에서 '청년문화'라고 부를 만한 실체가 소멸된 시점이다. 그래서 '너무 없다 보니' 청년문화를 '건전하게 육성'하려는 제스처가 있었고, 방송국이 주최하는 대학가요제도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방송국 주최의 대학가요제는 대학생문화 혹은 청년문화를 '순화'하고 '관리'하는 차원에서 기획되고 추진된 것이다. '방송국 주최의'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사용한 것은 이전부터 대학가요제같은 행사들이 다수 존재했기 때문이다. 대학교의 정기 축제 때마다 '가요제'는 빠지지 않았다. 이런 '캠퍼스 가요제'가 아마추어 성격이 강했다면, 이제 직업적 음악인으로 데뷔하려는 음악인들을 위한 페스티벌들도 다수 존재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대학가요제'라고 부르는 행사는 대마초 파동으로 '민간 주도의' 가요제들까지 모두 괴멸된 다음 탄생한 것이다. 이걸 두고 '관 주도'라고 말하는 것은 일방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전의 가요제들이 아래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것이었던 반면, 방송국 주최의 대학가요제는 그렇지 않았다. TV라는 지상파 방송의 괴력을 이용하여 대학가요제는 가요제라는 행사를 독점했고, 전국 각지의 캠퍼스에서의 가요제는 '예선'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대학가요제는 신인가수의 전국적 등용문이라는 성격이 강화되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은 지금으로서는 그다지 중요한 말이 아니다. TV를 통해 전국적으로 동시간대에 등장하는 기회는 속성 상 '가수 지망생'에게는 소중한 것일 수밖에 없다. 1980년대 중반까지 지방에서 올라온 참가자들이 가지고 있던 '(좋은 의미의) 지방색'이 점차 사라진 것도 이 점과 무관하지 않다. 올해 개최된 대학가요제를 지켜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떠오른다. 참가자들의 음악성은 '주류 대중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최측은 '올해는 록 밴드가 많다'는 점을 애써 강조했지만, 이들이 연주한 음악도 '상업적 록 음악'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명문대 출신'으로 퓨전 재즈 스타일의 음악를 연주한 밴드들의 음악도 '풋풋한 아마추어'와는 거리가 멀었고, 솔로로 참여한 경우는 '사랑을 노래하는 발라드'가 대부분이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대중음악의 주류가 이미 충분히 '청년지향적'이 되었기 때문에 대학가요제 출신이 주류가요계로 진출하여 스타가 될 가능성은 그만큼 작다는 점이다. 앞의 논제로 돌아와보자. '대학가요가 없다'는 논제 말이다. 이는 달리 말해서 대학생의 '공동체'가 와해되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대학생 공동체'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술집이나 MT에 가서 함께 부르는 대중가요 이외의 노래들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물론 지금도 MT는 가겠지만, 요즘은 민박집마다 노래방 기기가 갖추어져 있고 대학생들은 반주에 맞추어 '가수들처럼' 노래부르고 있다. 우리가 느끼듯이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음악 생산은 매우 '직업화'되었기 때문에 별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편견을 없애고 [푸른 시절]을 다시 한번 들어본다. 지금 들으면 연주나 편곡은 유치해도, 작사와 작곡 만큼은 독창적이고 창조적이다. 또한 완벽하고 실수없는 연주와 노래로 청중을 사로잡는다기보다는 청중과 함께 호흡할 여지를 남겨 놓는다. 음악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방송국의 관리 하에서 치러진 행사에서 발표된 곡이라고 하더라도 그때는 '정말 좋아서' 음악을 생산하고 표현하려는 욕망이 참 왕성했던 것 같다. 발표 시기가 늦을수록 이런 느낌이 줄어든다는 점은 '위로부터의 관리'가 작을수록 창작력이 독창적이고 왕성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반증한다. 하긴 그때는 '합숙 훈련'을 시키면서 참가자들에게 '왕년의 대학가요제 히트곡'을 춤추면서 부르게 하는 일도 없었다(올해는 죽 지켜보지는 못해서 올해는 이런 짓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이제는 역설적으로 방송국 주최의 대학가요제는 사라져줄 때가 된 것 같다. 햇수로 25회니 이제 나이도 대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없어져야 할 것이 대학가요제만은 아니겠지만 자연발생적 표현을 관리하는 것이 하나라도 줄어들기를 바래는 마음이다. 대학가요제라는 행사가 '우리 방송국에 좋은 음악 프로그램도 있다'고 생색내는 수단이라는 비난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20011105 * [질러]에 게재됨. |
OVERVIEW:
앞화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