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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이 되지 못한 한국의 '록 음악'에 관한 이야기

1970-80년대 그룹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했지만 아무래도 한 번 더 해야 될 것 같다. 다름 아니라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많이 나왔으므로 아까운 지면을 낭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저 몇 개의 인상적인 장면들만 단편적으로 언급하고자 한다. 하나는 약 20년전쯤 학교 강당에서 열린 '그룹 사운드 발표회'에서 조운 제트(Joan Jett)의 "I Love Rock'n'roll"을 거칠게 토해내던 여고생이 지금은 '중년 나이트'에서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부르는 아줌마가 되어 있는 장면이었다. 영화를 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마지막 장면이다. 트로트 특유의 '꺾기 창법'으로 구슬프게 부르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 보고 있으니 눈물 비슷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CD나 테이프 한 장 구매한 적 없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와도 채널을 돌려버리던 노래를 듣고 이게 왠 일인가.  

송골매의 "세상만사", 옥슨 80의 "불놀이야", 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 윤수일의 "아파트"같은 '그 시절 그 노래들'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송골매나 옥슨 80은 '캠퍼스 그룹 사운드'이고, 함중아와 윤수일은 '직업적 그룹 사운드'"라고 내가 했던 구분은 '그런 구분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라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었다. "I Love Rock'n'roll"이나 제이 가일스 밴드(J. Geils Band)의 "Come Back"같은 '팝송'이 '가요'와 뭐가 또 그리 다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이런 음악들은 한때 '젊은이의 음악'이었지만 이제는 그랬다는 사실이 몹시도 낯설 뿐이었다. 따져보면 4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음악인데도 영화 [서편제]에 나오는 음악을 듣는 것처럼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는 '고전(classics)'이 없다는 점이다. 정말 없다는 것이 아니라 찾아보면 분명히 있지만, 고전으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올디스(oldies)'로 취급한다는 점이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비틀스와 밥 딜런의 음악을 들으면서는 '좋았던 옛 시절'을 떠올리는 반면, 키보이스와 히 식스(He 6)의 음악을 들으면서는 '구질구질했던 흘러간 시대'를 떠올릴 뿐이다. 영화사의 성실한 사전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예상대로' 흥행에서 참패한 것도 '구질구질한 것 싫어하는' 당시 청년이었던 세대들의 정서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오래된 노래라도 첨단 인테리어가 갖추어진 미사리 카페가 제격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런데 대중음악에서 고전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보면 별 거 아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불멸의 음악적 가치'이기 이전에 '당대의 청년문화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 가치를 높게 평가하느냐 별 게 아닌 것으로 보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다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주인공에게 기타를 가르쳐 주었던 '원장 선생님'의 발언이다. 알콜 중독자가 된 그는 지미 헨드릭스를 들으면서 "언제 들어도 예술이군. 저 사람이랑 나랑 똑같이 42년생야. 저 사람은 스물 여덟에 죽었는데 난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내가 스물 여덟살 때는 남편 월남에 보내 놓고 바람난 여편네들이랑 허구헌 날....에이 관두자"라고 읊조렸다. 이 발언은 한국에서 '청년문화적 가치'가 어떻게 굴절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 발언으로 들린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체념'으로 끝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생산적 제안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대중문화의 고전이란 예술가에 의해 창조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평가와 재평가를 거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임순례 감독이 '구리다'고 치부된 음악들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가치'를 일깨웠다면, 그걸 보관하고 저장하는 작업은 대중음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넘어온 셈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저 음악들은 인터넷 CD 숍에서 구하기도 힘들다. 비상업적 목적의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지는 것을 기대하기도 요원하다. 이런 작업은 알량한 국제경쟁력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것일 텐데 말이다. 지금도 늦은 것만 같다. 물론 가장 많은 음반자료를 보유한 공영방송국들에서는 고전의 잠재적 가치를 갖는 LP들을 다수 분실했거나 지하실로 이동시켰다고 들었다. 황학동과 회현동의 중고 음반점을 뒤진 애장가들의 집에서 고이 잠들어 있는 것들도 많을 것이다. 이번에도 그저 사운드트랙 음반 한 장의 일시적 유행으로 끝낼 것인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온다. 20011110

* 위 영화에 나오는 대사는 기억에 의존한 것이므로 부정확하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 웹진 <창작과 비평>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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