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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린' 음악과 '쿨'한 음악

젊은 음악 애호가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구리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구리다'라면 인체의 가장 마지막 기관에서 만들어지는 배설물의 참기 힘든 냄새일텐데, '예술'에 그런 표현을 적용하는 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슨 뜻인지 유심히 살펴보기로 했다. 그런데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었다.

우선 '상업적 문화가 구리다'라고 생각해 보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예를 들어 [엽기적인 그녀]같은 영화는 그야말로 상업주의의 전형일 텐데도 불구하고 '구린' 문화에 해당되지 않았다. 다음으로 '오래된' 문화가 구린 문화라고 생각해 보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정통' 한국 무협영화를 그대로 모사한 [다찌마와 리]같은 영화나 '정통' 관광버스 뽕짝 메들리인 이박사의 음악에 '젊은이'들이 열광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때 '정통'이란 오래되었다는 뜻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 말이다.

아하 알겠다. '외국산(産)에 비해 국산(國産)가 구리다'고 생각하는 것이구나. '구리다'의 반의어가 '모던'한, '쿨'한 등의 영어 단어라는 점도 요즘 젊은애들의 영미문화 추종주의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도 예외가 있었다. 정작 영미권에서 '쿨'하다가도 존중받는 문화가 한국에서 별다른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역으로 한국에서 '쿨'하다고 간주되는 문화가 정작 본토에서는 '구린' 것으로 폄하되는 일도 적지 않다.

그래서 결국은 늙어가는 자신의 감성을 원망하면서 '맞아, 세대 간에 소통이 힘들 때 무리하게 소통하려고 하면 그게 더 문제야. 다르면 다르다고 인정하는 게 차라리 속 편해'라고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는 최근 개봉한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러 갔다. 영화의 스토리는 '한때 프라이드 강한 뮤지션이었지만 이제는 밤무대를 전전하면서 바람난 아줌마·아저씨들이 춤출 때 반주나 해주는 악사'의 이야기였다. 그나마 신씨사이저나 노래방기기같은 전자악기들이 개발되면서 기타나 드럼같은 '오래된' 악기들은 서서히 뒷전으로 물러나 버리는 모습도 생생하게 묘사해 주었다.

영화는 아저씨 세대의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인지 몹시 슬펐다. 하지만 감상과 노스탤지어에만 빠질 수는 없는 일. 유심히 보면서 느낀 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저씨같은 사람의 틴에이저 감성을 팍팍 자극했던 '캠퍼스 그룹 사운드'의 음악이 이제는 별달리 '쿨'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전문 DJ가 되어 있는 배철수 아저씨와 그의 밴드 송골매의 "세상만사", '종합예술인'이라는 자조적 명함을 달고 TV에 나와 수다를 떨고 있는 홍서범과 그의 밴드 옥슨 '80이 부른 "불놀이야"는 이제는 내게도 '구린' 음악으로 들려 왔다.

그런데 묘한 반전이 일어났다. 4반세기 전쯤부터 이제까지 '구리다'고 생각했던 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나 윤수일의 "아파트"는 너무도 감동적이었고, 영화 마지막에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가 흘러나올 때는 마침내 눈물까지 핑돌았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옆자리에 앉아있던 '젊은' 관객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속으로 "쟤들이 뭘 안다고 저러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것보다는 '공감'의 기쁨이 앞섰으리라.

그래서 앞으로는 나라도 '구리다'는 말을 삼가기로 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이래저래 세파에 시달려 퇴색한 모습으로 있는 문화예술인에게 '구리다'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5년 뒤 니네들도 핑클과 g.o.d가 출연하는 중년 나이트클럽이나 미사리 카페에 가서 눈물짓고 있을 거야"라고 말하던 평소의 심술도 거두기로 했다. 그렇게 소모품으로 이용하고 버리는 건 꼭 대중문화계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생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에이, 늦가을이라서 그런지 우울한 생각만 든다. 학생들을 무슨 실험대상 취급하는 수능시험 때문에 훨씬 더 우울한 사람들 많을 텐데. 20011110

* <포브틴>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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