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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50년만의 추위로 고통받고 있다고 하니 빨리 떠나길 잘한 것 같다. 이제 성하(盛夏)를 구가하고 있는 남반구 쪽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아, 그런데 때마침 찾아가려고 계획했던 아르헨티나는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계절을 보내고 있다. 몇 일 사이에 대여섯 명이 대통령의 권좌에 올라갔다 내려왔다니 참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er)가 작곡하고 마돈나(Madonna) 등 저명한 가수들이 불러 유명해진 "Don't Cry for Me, Argentina"라도 불러줘야 할지 모르겠다. 저 노래 제목을 아르헨티나의 공용어인 스페인어로 쓰면 'No Llores por Mi, Argentina'다. 발음은 '노 조레스 뽀르 미, 아르헨띠나' 정도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제목을 가진 노래가 하나 더 있다. 작곡한 인물은 찰리 가르씨야(Charly Garcia: 1951년생)이고, 연주한 밴드의 이름은 세루 히란(Seru Giran)이다. 찰리 가르씨아가 이끈 세루 히란이라는 밴드는 1978년부터 1981년까지 매년 한 장씩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고, 1982년에는 라이브 앨범을 발표한 뒤 해산된 밴드다. 단명한 셈이지만 저 시기가 아르헨티나의 역사에서 매우 '민감한' 시기였으므로 지금도 아르헨티나의 대중음악을 논할 때 매우 중요한 존재로 간주되고 있다. 그 시기는 다름 아니라 아르헨티나가 군부 독재로 신음하던 시기(1976년부터 1983년 사이다)다. 그 사이에 민간인이 최소한 10,000명이 사망 혹은 실종되었다니 30대 이상의 사람으로서는 동병상련의 념이 강할 것이다. 1978년 아르헨티나에서 월드컵 축구가 개최되어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팀이 우승을 차지한 일도 독재정권의 민심 호도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점도 참고로 알아 두자. 찰리 가르씨아의 "No Llores por Mi, Argentina"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Don't Cry for Me, Argentina"와는 분위기가 딴판이다. 웨버의 곡이 후앙 페론 대통령의 부인인 에바 페론의 파란만장한 삶을 배경으로 하는 애절하고 센티멘털한 곡이라면, 찰리 가르씨아의 곡은 이른바 송가(頌歌: anthem) 풍의 록 음악이다. 빠른 템포와 씽커페이션 강한 리듬 위에서 보컬은 냉소적으로 내뱉고 한번은 코를 드르릉거리는 효과음(?)까지 나온다. 메시지가 '조국에 대한 사랑'인 점은 비슷하지만 사랑을 피력하는 방식은 매우 다른 셈이다. 아르헨티나의 음악을 소개하는데 이들의 이름이 '난데없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긴 하다. 적어도 아르헨티나 사람이 아니라면 이들이 그리 유명하지는 않으니까. 그렇지만 그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찰리 가르씨아와 세루 히란은 군부 독재하에서 록 콘서트를 '평화적 저항(peaceful resistance)'의 공간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평화적 저항이라고 표현한 것은 게릴라의 '무장 저항(armed resistance)'와 구분하기 위해서다. 찰리 가르씨아는 세루 히란을 해체한 뒤에도 정력적인 솔로 활동을 전개해 왔고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폭파하지 마" 등의 메시지를 담은 저항적 록 음악을 노래했다. 1970년대의 경력을 추적해 보면 쉬 헤네리스(Sui Generis)라는 히피 성향의 '포크 듀오'에 몸담았다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한다고 간주되는 '월드 디바' 메르쎄데스 소사(Mercedes Sosa)가 1997년 [찰리 가르씨아를 노래한다(Canta a Charly Garcia)]라는 트리뷰트 음반까지 만들었을 정도니까. 그래서 그를 '아르헨티나의 존 레넌'이라고 부르는 것은 폄하는 아니지만 그리 상찬 같지도 않다. 물론 1990년대에는 약물로 고생을 좀 했지만. 정작 중요한 말을 빼먹을 뻔했다. 1970년대 말 - 1980년대 초 찰리 가르씨아 등이 이끌었던 운동은 '록 나씨오날(rock nacional)'이라고 불린다. '민족적 록', '국민적 록', '전국적 록' 중의 어느 것으로 번역할 것인가는 각자의 성향에 좌우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거의 거덜나버린 듯한 나라에서 '풍요의 시대'의 산물인 록 음악이라니... 그것도 주변적인 음악이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했다니... 아르헨티나에는 탱고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인 한국인으로서는 의아할 따름이다. 이건 다음 시간부터 차근차근 알아보자. 주) 포클랜드 섬은 아르헨티나인의 입장에서는 '독도' 같은 곳이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에 가서 포클랜드라고 말하면 한국에 와서 다케시마라고 말하는 것이나 똑같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게 되면 말미나스라고 불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 달라는 뜻이다. 월드컵 본선에서 아르헨티나가 잉글랜드만 만나면 눈에 불을 켜고 공을 차는 것처럼 보이면 이런 사정이 있다. 이번에도 예선에서 맞붙는다던데... 20020211 * 교보문고에서 발행하는 웹진 [Pencil]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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