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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가 슬슬 1980년대 중반으로 향하고 있지만 '무언가 중요한 존재를 빠뜨린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더니 '아차 산울림을 빠뜨렸네'라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이런 생각이 든 것은 모 진보 시사잡지를 읽다가 거기에 김형태가 쓴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김형태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황신혜 밴드'라는 이상야릇한 밴드의 리더라고 답해야 한다. 물론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황신혜가 밴드의 리더는 아니라는 사실도, '화가'라는 별도의 직업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황신혜 밴드는 이른바 '홍대앞 인디'라는 1990년대의 문화 현상의 하나지만, 상대적으로 '연로한' 인물이 주도했으므로 인디 밴드들의 주역과는 다소 감성이 달랐다. 이미 운을 띄운 셈이지만 황신혜 밴드의 우상은 산울림이었다. 후문에 의하면 김창완이 김형태의 결혼식에 주례까지 맡았다고 하니, 존경의 염이 보통은 아닌가보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황신혜 밴드는 '아마추어적'이지만 '실험적'이고 '희극적'이다. 불운한 예술가들은 타이밍을 잘못 잡는 법인데, 이들의 경우는 너무 빨랐다. 무슨 말이냐 하면 '엽기'라는 코드와 맞아떨어졌더라면 '뜰'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엽기라는 단어가 신문 지상에 오르내릴 무렵 황신혜 밴드는 활동을 잠시 쉬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언더그라운드의 컬트'에 머물고 있다. 산울림은 황신혜 밴드와 달리 1977년 어느날 '혜성같이' 등장해서 하루 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제 1회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샌드 페블스의 "나 어떡해"마저도 산울림이 만든 곡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더했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한국의 고질병인 학벌지상주의와 관련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들이 지성과 정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상징작용을 안겨주기에는 충분했다. 산울림의 음악의 스타일(혹은 장르)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는 조금 난감하다. 음악 장르명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제공하는 영미권 평단의 용어를 빌려 보아도 혹자는 '펑크'라고도 하고 혹자는 '싸이키델릭'이라고 할 정도로 의견이 분분하다. 영미권에서 펑크와 싸이키델릭이 불편한 사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산울림의 음악이 펑크로도, 싸이키델릭으로도 불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이러니다. 내가 듣기에 산울림의 사운드는 1960년대 중반 미국의 '거라지 밴드'와 가장 흡사해 보인다. 그렇지만 집집마다 차고(garage)가 있는 미국 교외와 한국의 상황은 달라도 너무 달랐으므로 이것도 그저 피상적 비교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장르 이름을 붙이든 산울림의 음악이 '거침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는 아무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때까지 "꼭 그렇진 않았지만"이라는 식의 구어체 가사는 한국의 대중음악에는 없었다. "아니 벌써 해가 솟았나 / 창문밖이 훤하게 밝았네"라는 무의미해 보이는 가사도 도시의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으로 수용되었다. 노래 가사에만 어울리는 정형화된 단어들과 구문들이 지배하던 시절, 이들의 가사는 '파격'이라는 표현 말고는 적절하게 표현하기 힘들다. 물론 일상적 가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일상적인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내 마음은 황무지"라는 식의 표현은 시적이었다. 아이러니와 위트와 풍자로 가득한 이들의 가사는 한국 대중음악의 가사의 역사에서 '모더니즘 단계'를 표상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음악은?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그건 대체로 산울림의 음악의 '아마추어리즘'적 성격에 대한 것이다. 이들의 아마추어리즘에 대해 한편에서는 '뮤지션십(musicianship)의 결여'라는 폄하가, 다른 한편에서는 '진정한 실험정신'이라는 상찬이 나온다. 상찬의 견해는 앞에서 언급한 황신혜 밴드의 김형태가 대표하므로 생략하자. 비판의 견해는 '연주력'이나 '가창력'을 중시하는 프로페셔널 뮤지션이나 음악 매니아들로부터 나온다. '산울림은 합주가 안 된다'라든가, '밴드로서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라는 식의 말이다. 그런데 '연주력'이 '작곡력'보다 중요한 것일까. '둘 다 겸비하면 좋은 것'이라는 답변은 하나마나한 것이므로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문화예술을 수용하는 사람의 몫일 것이다. 단, 그런 건 있다. 대마초 사건이 휩쓸고 지나간 뒤 1970년대 말 - 1980년대 초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직업적 음악인들이 장악했다. 이때 직업적이라는 말은 '음악을 잘 하는'이라는 뜻이기 이전에 '음악으로 먹고 사는'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음악을 잘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잘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산울림이 그토록 신선했던 이유는 이렇게 '닳아빠진' 직업적 음악인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런 용어가 없었지만, 산울림은 충분히 '대안적'이었다. 그렇다면 앞에서 소개한 황신혜 밴드의 불운에 대해서도 재론할 수 있다. 1970년대와 달리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는 우리가 보다시피 '가창력도 없는 가수들'이 무대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마추어리즘'을 무기로 언더그라운드에서 대안을 찾던 흐름은 그만큼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자발적인 것은 아니라도 현재의 립씽크 연예인들은 아이러니와 풍자를 몸소 보여주고 있고, 정말로 희극적이다. 비극은 본인들 스스로 자신의 희극이 희극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아이러니와 싸워서 넘어서는 방법이 필요한가. 물론 김창완은 1990년대 이후 탤런트로, 나레이터로. 그리고 동요 작곡가로 TV와 라디오에 얼굴을 비추고 있다. 그는 자신을 우상시하는 일부의 흐름에 대해서도 반역을 행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 역시 그런 그의 모습에 큰 불만은 없다. 단지 아이러니를 넘어서는 길이 고전적 진정성을 복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다음은 무엇인지 여전히 막막하다는 심정을 피력할 뿐이다. 2000113 정보 하나 어쩌다가 인터넷 CD 숍에서 찾은 [Love, Peace & Poetry: Asian Psychedelic Music]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찾았다. 여기에는 산울림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가 "It was Probable Late Summer, maybe"라는 이름으로 3번 트랙에 수록되어 있다. 신중현과 엽전들의 "아름다운 강산"의 오리지널 버전도 "Korean Titel A2"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마지막 트랙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트랙들은 홍콩, 캄보디아. 인도, 터키 등지의 1960-70년대 밴드들의 음악들이다. 부클릿을 읽어보면 이 음반의 제작자들은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 보인다. 물론 나 역시 이 음반사(레이블)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Made in Germany라는 문구로 미루어보건대 독일의 조그만 음반사라고 추측할 뿐. * 웹진 <창작과 비평>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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