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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주택임대제도는 월세보다는 전세가 지배적이다. 매달 일정액의 임대료를 납부하는 것보다는 세입자가 정액('목돈')을 주택 소유자에게 맡겨 놓고 그로부터 나오는 이자를 자기가 납부해야 할 임대료와 상쇄하는 제도다. 말로 하니까 복잡하지만 현실에서는 간단한 문제다. 뜬금없이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음악산업에서 저작권제도도 주택제도와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점도 있으므로 이건 비유일 뿐이다. '곡비'라는 용어가 있다.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음악산업의 규모가 한국과 비슷한 다른 나라에는 없는 관행이다. 아마도 '작곡비'가 줄어든 말 같다. 그 의미는 음반을 제작할 때 한 곡의 작사 및 작곡에 대해 제작자(음반사 혹은 기획사)가 작곡자(및 작사자)에게 지급하는 비용이다. 주택 전세제도와 차이가 있다면 계약이 끝날 때 세입자가 주택 소유주로부터 돌려받는 것이 아니다. 곡의 소유주는 당연히 작곡자이므로 차후에 이 곡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다. 라디오 방송이나 노래방에서의 재생 등이 대표적이다. 단, 음반에 한해서 그의 권리는 곡비를 지급받으면 소멸하는 것이 관례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곡비 관행은 작곡자에게 불리해 보인다. 혹시라도 음반이 흥행에 성공해서 이른바 '대박'을 치더라도 작곡자는 미리 받은 곡비 이상을 받을 수 없다. 게다가 편집 음반 등 이른바 '음원의 2차 사용'에 대해서도 추가적 수입이 없다. 한국에서 편집 음반이 이렇게 봇물처럼 쏟아지는 이유 중의 하나다. 그런데 제작자의 경우도 불만이 없지 않다. 다름 아니라 유명 작곡가의 경우 곡비가 매우 비싸다고 한다. 그렇지만 음반 수록곡 중에 한두 곡은 이들의 힘을 빌지 않으면 히트하기가 힘들다. 전세값이 급등하거나 급락하면 세입자와 소유주 모두 부담스럽듯이 정액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인세제로 하자는 논의가 나왔고 작년 12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미리 선금을 정액으로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량에 비례하여 사후적으로 인세(로열티)를 지급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시행에 들어갈 듯하더니 전격적으로 '1년 유예'되었다. 그 이유를 유추해 보면 영 헷갈린다. 현재 상황은 한국 음악저작권협회(KOMCA)가 인세제의 도입을 강행하려는 반면, 대중음악 작가연대라는 곳은 인세제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음악 작가연대라는 단체가 저작권협회가 저작권자의 이익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서 출범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왜 합리적 제도에 반대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물론 작가연대의 입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세제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세제를 도입할 여건이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세제를 무리하게 도입하면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음반 판매량의 집계가 공신력이 없고, 한 앨범 중 어떤 곡이 히트곡인지도 불분명하고, 저작권 협회의 관리 능력도 의심받고 있는 상태이니 말이다. 그런데 "(인세제를) 당장 시행할 경우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된다"(<한국일보>, 2001. 11. 28. 작가연대 사무국장의 발언)는 말은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지금의 정액제 하에서도 충분히 부익부 빈익빈이 초래되지 않았는가. 실제로 한국 대중음악은 몇몇 히트곡 제조기에 의해 나온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이들의 곡비는 매우 높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1년에 10만장 이상 팔리는 음반이 5% 정도에 불과한 가요계 현실에서 계약금 없이 인세로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작곡?작사가들이 얼마나 되겠느냐"(위 기사)는 언급은 더 납득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지금의 곡비란 인세의 일부가 아니라 일종의 프리미엄이고, 제작자 입장에서는 '투자'인 셈이다. 작곡가들의 생활수준이 어떤지 음악산업 내부의 사정이 어떤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런 관행은 다른 분야에서는 보기 드물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무명 작곡가들은 남 몰래 인세제 도입을 찬성한다는 말도 들린다. 요는 좋은 제도라고 하더라도 제반 여건을 성숙시킨 다음에 추진해야 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한국처럼 추진 주체가 누군가에 따라 결과가 판이해지는 나라에서는 특히 그렇다. 나로서도 인세제 도입에 찬성하지만 다음과 같은 평판을 얻는 사람들이 추진한다면 다소 찜찜할 것 같다. "저작권위반 작곡가 저작권협회장 취임 물의"(2.20), "음악저작권협회 불법음반 제작 수억 대 챙겨"(3.16), "음악저작권협회 감사 구속"(5.26), "가요 관련 한해 수입 230억… 저작권료 어디로 새나가나"(12.12) 등등. 1999년 한 해 동안 한 일간지(<중앙일보>)에 인용된 저작권협회와 관련된 기사의 타이틀들이다. 작년 12월 회장이 바뀌었다니 한번만 더 믿어보기로 하자. 20010123 * [컨텐츠 코리아]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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