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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아무개가 '약물을 복용했다'는 뉴스는 이제 더 이상 충격적이지 않다. '황수정 히로뽕 사건'은 충격적이었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 경우도 연예인의 평소의 이미지와 상반되는 행동 때문이었지 약물복용 사실그자체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녀의 '평소의 행실'에 관한 루머를 접한 사람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직후 세간의 관심도 그녀가 마약을 했는가 여부가 아니라 '무슨 용도로' 했는가에 맞추어졌다. 사건과 관련하여 흘러나온 '최음제'나 '간통' 등의 단어는 입방아 찧기 좋은 일이 되었다. 대중문화의 즐거움은 '대중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는 편이다. '입방아찧는 것'이라는 표현은 '이야기하는 것'의 또다른 표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만약 대중문화를 혼자서 경험하고 그친다면 즐거움은 반감될 것이다. 하나 더. 이야기의 대상은 대중문화 그자체라기보다는 대중문화인, 즉, 연예인일 때가 많다. 10대라면 학교에서 급우들이랑, 20대라면 카페에서 친구들이랑, 30대 이상이라면 술집에서 동료들과 함께 '연예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큼 흥미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스포츠신문에 '스포츠'와는 아무 상관없는 연예 정보가 넘치는 것이나, 지상파 TV 방송국들마다 '연예 정보 프로그램'을 따로 마련하고 있는 것도 '대중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의 즐거움'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런 프로그램의 기능은 대중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즐거움이라고 해야할까. 앞의 두 문단을 종합하면 마약도 대중문화에 포함되는 시대가 된 것일까. 일단 마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으니 말이다. 물론 힌국 사회에서 마약은 아직도 금기의 대상이고, '가까이 하면 폐가망신하는 것'이라는 정도가 마약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마약이 한자로 '痲藥이 아니라 '魔藥'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사람도 아직 꽤 많을 것이다. 마의 마약같다는 뜻으로... 그럴진대 이런 대상에게 '문화'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모르겠다. 나 역시 마약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일반 대중의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 상 외국의 문헌을 읽다 보면 '마약 문화(drug culture)'라는 용어를 접하게 된다. 마약이란 '양아치'나 '인간망종'같은 존재들이나 하는 것이므로 '범죄 사회학'이나 '일탈 사회학'같은 곳에서나 다룬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20세기 후반의 대중문화에서 찬란한 업적을 쌓은 인물들이 실제로 마약을 복용하고 마약 문화를 선도했다는 논의를 접하면 '이런 거 읽었다가 괜히 잡혀가는 거 아냐...'라는 걱정이 들 때조차 있다. 20세기 최고의 대중음악인으로 꼽히는 사람들이 마약에 탐닉했다는 식의 글을 읽으면 무슨 불온서적이라도 읽은 것처럼 섬뜩했던 적이 있다. 실제로 1960년대 이후 'XX족'이라는 이름으로 서양 사회에 존재했던 청년문화의 여러 형태들은 각기 고유의 마약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학술서적들에 버젓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1960년대 중반 영국을 휩쓸었던 모드(mods)족들은 각성제의 하나인 암페타민(amphetamine)을 복용했고, 1960년대 후반 미국을 휩쓸었던 히피(hippie)족들은 이완제인 마리화나와 LSD를 즐겼다. 모드족의 우상이었던 후(The Who)가 당시 '청년 세대의 송가'라고 불린 "My Generation"에서 말더듬이처럼 노래부른 것이라든가, 히피족의 영원한 아이콘인 고(故) 짐 모리슨이 "The End"에서 정신나간 사람처럼 웅얼대다가 소리지르기를 반복하는 것은 마약의 속성과 무관치 않다고 한다. 최근의 테크노 음악이나 갱스터 랩같은 음악도 마약문화를 가지고 있다. 테크노 음악은 엑스터지(ecstasy), 갱스터 랩은 크랙(crack)이라는 마약과 각각 관련된다. 엑스터지의 경우 이 마약은 '양성적이고 유아적'인 상태의 몽환적 상태로 이끈다고 하며, 그래서 영국과 유럽에서 테크노 음악과 연관된 청년문화의 주역들을 '제너레이션 E(Generation Ecstasy)'라고 부른다고 한다. 'Generation Ecstasy'는 옥스퍼드 대학교 출신의 저명한 음악 평론가 사이먼 레이널즈(Simon Reynolds)'가 테크노 음악을 소재로 한 저서의 제목이기도 하다. 크랙이야 코카인과 비슷한 질나쁜 마약이라는 정보 이상으로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런 지면에서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자타가 '보수적'이라고 공인하는 신문사에서도 다음과 같은 기사가 발견되니 안심하고 얘기를 계속하겠다. "오로지 법 조문에 의해 세상을 보고 재단(裁斷)하는 우리나라 판·검사들의 눈에는 존과 요코의 삶은 예술을 빗대어 퇴폐와 향락을 일삼는 재기 불능의 마약 중독자쯤으로 비쳐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은 두 천재 예술가들을 법의 심판으로 격리하고 매장하지 않았다. 세계인들이 존을 잊지 못하는 것은 그가 한때 마약에 빠져 있긴 했어도 가장 순수한 영혼을 소유한 음악가였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천재 예술가의 끝없는 실험을 관대하게 받아들인 그 사회의 포용력에 경의를 표한다"(<주간조선>, 2001. 7. 10). 서평의 대상이 된 책은 비틀스의 멤버였던 존 레논과 그의 부인 오노 요코의 삶에 관한 전기였다. 이 신문사가 '경의'를 표한다는 영국과 미국 사회의 '포용력'을 한국에서는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키울지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이건 다른 나라의 이야기들일 뿐이다. 이런 기사를 읽고 '선진국에서는 마약문화에 관대하니 우리도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이해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매우 험난할 것이다. 이 글의 요지는 단지 마약이 '대중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점 이상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밝힌다. '황수정 사건'외에도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마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 몇 개 생겼다. 한때 '신세대 댄스가요의 선구자'로 군림했지만 마약으로 철창을 들락날락했던 현진영의 컴백이었다. 한번은 그가 대마초도 히로뽕도 아니고 '중고등학생이나 하는' 본드를 흡입한 일이 있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본드까지 마시냐"라는 게 그때 대중의 반응이었다. 몇 년 간 잠잠하던 그가 이제 '거구'가 되어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보고 "마약 끊으면 살찌나봐..."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사람이라면 매우 과묵한 사람일 것이다. 기자회견을 갖고 마약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자진입원하는 모습을 보고 "새 앨범 홍보전략인가"라고 생각한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 '현진영이 컴백 음반에서 무슨 음악을 선보였는가'라는 궁금증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작년에는 심신이라는 '베테랑 가수'가 컴백한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새 음반을 발표하고 활동을 재개하던 그는 대마초를 복용하여 '형사처벌'되었다. 이때 역시 "음반이 잘 안 팔려서 마음 고생이 많았나 보다"라는 촌평이 입에서 자동적으로 나온다. 그 사람이 마약을 복용하여 정말로 폐인이 되리라고 걱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실제로 폐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중요한 화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그가 '무엇 때문에' 마약을 했는가가 중요하다. 연예인의 장래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일은 대중문화수용자의 일반적 속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고 보면 세상이 많이 변했다. 1970-80년대만 해도 '대마초 연예인'은 상종 못할 인간이고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할 존재로 간주되었다. '마약쟁이'는 '빨갱이'와 더불어 금기의 상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다소의 변화는 보인다. 한 예로 최근 연예 프로그램에서 교육적 성격이 강한 코너를 진행하는 개그맨 S가 있다. 내가 그의 모습을 직접 본 것은 록 밴드 들국화의 공연장에서였다. 당시 그는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수감되었다가 석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가 무대에 오른 것은 들국화의 리더인 전인권이 한국에서 '마약 복용으로 인한 고초'를 가장 많이 겪은 인물이라는 사실과 무관치는 않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자신의 대마초 흡연에 대해서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여러분 앞에 서겠다"는 발언으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그의 평소의 기지로 보아 다소 상투적이라고 느껴질 무렵 그는 "저는 한번밖에 다녀오지 않아도 이렇게 성숙했는데 전인권 형님은 얼마나 성숙했겠습니까"라고 말해 좌중의 폭소를 터뜨렸다. 당시 그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으로서 상반된 감정 두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하나만 먼저 말하면 이제 '특정한 사람'의 마약복용은 유쾌한 대화의 소재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특정한 사람이란 다름 아니라 '대중연예인'을 말한다. 물론 유쾌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전체 대중이 아니라 특정 음악인(및 연예인)을 좋아하는 '팬들'에 국한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의 주장은 "마약복용도 이야기거리를 제공해서 즐거움의 소재가 된다면 대중문화의 일부"라는 것인가. 이제 개그맨 S 씨의 발언을 들었을 때 느꼈던 또하나의 감정을 언급해야 할 차례가 된 것 같다. 다름 아니라 연예인의 마약복용이 하나의 가십거리처럼 희화화된다는 느낌 말이다. 공식적으로는 '선처'를 바라고 '반성'을 하는 반면, 비공식적으로는 '우스개소리'로 넘겨버리는 연예인의 이중성을 보는 것 같아 찜찜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와는 반대의 케이스지만, 작년 연말 세 명의 연예인이 모 신문의 '마약흡입 내사설' 보도와 관련하여 검찰에 자진출두하여 마약검사를 자청한 사건도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물론 그때 "동업자 정신의 위반 아냐",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시달리는군" 등의 가십성 입방아를 찌어대기는 했지만... 결국 한국에서 마약은 '문화'라기보다는 '문제'다. 이 문제는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법대로' 처리하는 당국의 경직된 자세, 다른 한편으로는 마약복용 연예인들이 스스로를 도덕주의의 덫에 옭아매는 태도로 인해 꼬이는 것 같다. 이는 작년 연말 대마초 흡입 혐의로 잡혀갔다가 '선처'를 받아 풀려난 가수 싸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근 발표한 두 번째 음반의 수록곡들에서 그는 '도덕적 세태 비판'을 하고 있다. 한 예로 <해지면(썅년놈들)>이라는 곡에서 "쉽게 돈 벌려는 미친 년들"과 "돈이 남아도는 미친 놈들"을 비난하면서 "병들어가는 영혼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멀쩡하게 생긴 년들이 사상이 더러워"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당신은 도덕적으로 얼마나 깨끗하고 떳떳한가?'라는 질문에 그가 뭐라고 답할지 궁금하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일은 마약문제를 '재미있는 뒷얘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공론'으로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으로 진지하게 논의되는 담론이 비공식적으로 뒤에서 떠드는 가십성 이야기의 반의 반만 되더라도 '멋모르고' 마약에 희생되는 일반인들이 이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마약의 효과에 대한 일반적 토론 없이는 마약의 '퇴치'와 '근절'은 이루어질 수 없다. 하다 못해 '모 재벌 총수가 마약을 한다더라'는 식의 근거없는 루머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전인권의 이야기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1년전 쯤 그는 한 학술계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약물복용에 대한 '소신'을 밝힌 일이 있다. 그는 "남에게 피해를 준 것이 아니므로 약물을 한 것이 죄는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1년에 수십 차례씩 하는 공연에서 팬들에게 좋은 노래를 들려주고 즐겁게 해주기 위해 약물을 했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은 "자신으로 인해 남을 즐겁게 해 주는 사람들은 약물에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또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말에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전인권의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이 발언만 가지고 본다면 그의 주장은 '기능적 약물복용' 정도다. 서양의 문화적 아이콘들처럼 마약이 '의식의 확대의 수단'이라는 등의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인권은 이 발언으로 인해 집중포화를 받아야 했다. 그걸 보면 약물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연예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비공식적으로는 연예인의 마약복용에 대해 낄낄거리다가도, 공식적으로는 근엄한 태도를 보인다. 최근 본 다음과 같은 기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렇듯 한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이 오랫동안 힘들여 쌓아올린 모든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는다....물론 마약에 손을 댔다가 재기에 성공한 연예인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마약사범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잊혀져 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여성동아>, 2001.12.3). 연예인들에게 웬 훈계인가. '우리 대중들'이 연예인들의 도덕과 인권과 건강을 진정으로 걱정해 본 적 있는가. 결론적으로 대중문화의 즐거움이 통속적 재미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문화적 향유가 되기 위해서는, 마약을 사회문제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 글에서조차 불가피하게 사용한 '연예인'이라는 단어부터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할 것이다. 예술인이든, 문화인이든, 아티스트든... '대중문화인들이 무슨 아티스트냐'고 반문한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유해에서는 코카인과 마리화나의 잔해가 검출되었고, 스티븐슨이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를 쓸 때는 코카인의 도움을 빌었고, 프로이트는 코카인을 상용했고, 사르트르도 마약에 손을 댔다고... 20020126 * [문화예술]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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