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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에 가면 한국 음악만을 전문적으로 틀어주는 술집이 있다. '요즘 같은 때 업소에서 한국 음악 틀지 외국 음악 트느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겠지만, 요즘 음악이 아니라 '옛날' 음악이라는 이야기다. 주로 흘러나오는 음악은 1960-70년대에 유행했던 음악들이고 1980년대 이후에 나온 음악들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TTL 세대들 중 '연로'한 축에 드는 사람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음악이 대부분일 것이다.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즐겨 듣는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음악과도 성격이 다르다. 이곳을 상징하는 가장 특징적인 소품(?)은 오래된 LP를 이용하여 만든 메뉴판이다. 가로 세로 31cm의 정사각형의 LP 커버 앞면은 그대로 놓아두고, 뒷면 하단부에 메뉴와 가격을 적은 종이를 풀로 붙인 것이다. 서울의 황학동이나 회현동 등에 있는 중고 LP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에 판매하면 꽤 비싼 값에 팔릴 음반의 커버가 메뉴판으로 변한 모습을 보고 있는 마음은 꽤 특별하다. '이렇게 중요한 자료를 허투루 쓰다니...'라고 분노를 표할 필요는 없다. 수많은 LP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별도의 음반을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내가 찾은 날 받은 메뉴판은 '1970년대의 SES'쯤 되는 펄 시스터스의 데뷔 음반의 커버였다. '1970년대의 SES그 무렵의 음반답게 사진의 '해상도'나 글자의 '폰트'가 열악하기 짝이 없었고 교정을 보지 않았는지 철자가 틀린 것도 있었다. 그 당시의 표기법 때문인지 '펄 씨스-더즈'라는 좀 이상한 표기법도 보였다. 그래도 그곳의 독특한 분위기 탓에 정겨운 마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미사리 등 대도시 교외의 라이브 카페의 번드르르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오늘의 주제가 '추억의 LP 여행'같은 건 아니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당시에는 이런 음반을 공산품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 보면 어떤 '아우라'가 느껴진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이런 류의 음반들은 집들이 이사갈 때마다 수없이 내다 버려졌겠지만 지금 구하려면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다. 공산품은 예술품으로 둔갑한다. 묘한 것은 '한국 대중음악의 명반'이라고 평가받는 음반들보다 당시에는 그저 하루살이같았던 가수의 음반이 때로 더 소중해 보인다는 점이다. 그건 마치 자신이 10대 시절 찍었던 사진을 '어디 두었지'하고 분실했다가 10년 뒤 이사를 한다든가 봄맞이 대청소하면서 발견하는 기분일 것이다. 이런 현상을 경제학 교과서 첫 페이지에 나오는 '희소성의 법칙'으로 설명하면 그만일까. 그것보다는 훨씬 복잡한 문화현상인 것 같다. 하지만 그 원인을 해명하느라고 골머리 앓느니 이제 슬슬 자취를 감춰가는 '1990년대 X세대 댄스가요'의 음반들이나 모아 두는 게 나을 듯하다. 그런데 아직은 이걸 사기 위해 주머니에서 돈이 잘 나오지 않는다. '내가 그걸 10,000원이나 주고 사야 하나'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나중에 후회하려나? 일단은 '길보드'에서 구매했던 <X세대 인기가요> 테이프라도 고이 보관해 놓아야겠다. 그리고 최근 LP로 나온 [서태지와 아이들]의 베스트 음반도 꼭 구매해야겠다. 혹시 또 아나. 나중에 팬 클럽 회원들에게 비싸게 팔 수도 있을지. * [TTL 매거진]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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