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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대중음악의 수용자들의 '운동'이 가시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난 번에도 언급한 '순위 프로그램 폐지 운동'이 대표적이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전반적 평가를 내릴 시점은 아니지만 한 가지 던지고 싶은 말은 있다. 그것은 현재 대중음악의 개혁과 관련된 움직임이 '지상파 TV'라는 미디어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가라는 점이다. 현재 대중음악을 지배하는 미디어가 TV이고 따라서 초점을 TV에 맞추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렇지만 TV로, 그것도 지상파 TV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정상적인가? 논란은 있겠지만 TV는 음악의 미디어로는 적절치 않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역사를 통해 나온 결론이다. 오늘 다룰 대상은 '한국의 라디오'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의 라디오 방송은 음악방송이 아니다. 음악이 나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음악이 '주'는 아닌 듯하다. 정확한 집계는 아니고 요 몇일간의 개인적 경험에 따른 것이지만 1시간에 틀어주는 곡의 수는 평균 예닐곱 곡 수준이고 가장 많은 경우가 아홉 곡이다. 한 곡에 3분 남짓한 러닝 타임을 고려한다면 한 시간에 30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하나의 프로그램에서 음악이 나오는 시간은 절반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나머지 시간들이 무엇으로 채워지는가는 라디오를 들어본 사람이면 잘 알 것이다. 음악을 대체하는 것은 '말'이다. DJ의 멘트는 방송 진행 상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음악과 관련이 없는 '말'이 지나치게 많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 '청취자 사연 소개'같이 오래된 포맷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게스트'가 등장하면 말 잔치는 더욱 요란해지게 되고, '도대체 음악은 언제 나오는가'라는 의문이 나오게 된다. 청취자와 전화 연락을 하고 심지어는 '전화 노래방'까지 진행하다보면 '음악'은 저멀리 사라져버리고 만다. 'AM은 그럴지도 모르지만 FM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거의 모든 AM 방송을 FM으로 수신할 수 있게 된 현 시점에서는 저런 주장은 큰 설득력이 없다. 거대 방송사들이 무상으로 특정 주파수대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미심쩍은 일이지만 그 문제를 일단 차치하자. 특정 시점에서 주파수를 FM에 맞추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볼 때 '음악'이 나오는 경우는 '말'이 나오는 경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FM의 AM화'라고 해야 할까. 이건 단지 음악이 방송되는 시간의 양적 비중의 문제가 아니다. '음악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을 달지 않은 방송 프로그램은 거의 없지만 대부분의 경우 음악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토크쇼'에 가깝다. 간단히 말해서 라디오를 듣는 것은 음악을 듣는다기보다는 음악과 함께 방송에 출연한 인기인의 '말'을 듣는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음악은 그런 말을 듣기 위한 배경음악에 가깝고 음악 그자체의 가치는 별로 없어 보인다. 라디오를 듣는 청취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인기 연예인의 말을 듣기 위해서 '음악방송'을 듣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이런 말 잔치에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대다수가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는 사람이 '라디오란 음악을 듣는 매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적어도 이전 시기에는 라디오가 음악방송의 매체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경우 라디오는 아직도 여전히 음악방송의 주요한 매체다. "비디오가 라디오를 죽였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든가 "라디오 가가(Radio Ga Ga)"처럼 라디오가 '철지난 매체'임을 풍자한 노래들이 나온지 십수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라디오는 음악 방송에서 여전히 중요한 매체다. 그래서 문득 '언제부터 한국의 라디오는 토크쇼가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한 석사논문에 의하면 변화의 계기는 1980년대 후반이라고 한다. 변화의 주요 현상은 FM 라디오에서 '팝'보다 '가요'의 비중이 커진 것이다. 이런 편성의 변화와 함께 진행자가 대거 교체되었는데, 이전의 음악 전문 DJ가 연예인 DJ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음악뿐만 아니라 진행자의 재담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고, FM 라디오 프로그램은 AM 라디오 혹은 '토크쇼'처럼 되었다는 것이 이 논문의 주장이다. 이는 FM 라디오 프로그램, 특히 심야 프로그램이 거의 전적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게 되었다는 '타겟 청중의 변화'와도 직결된다. 결국 음악 전문방송은 언제부턴가 청소년 청취자에게 '최신유행가요'를 틀어주는 방송으로 변모했다. 최신 유행가요를 선곡해서 틀어주는데 특별한 '전문성'은 필요 없다. 그 대신 청소년 청취자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을 해주는 전문성(?)이 강조된 것도 이때부터인 것 같다. '그게 뭐 어떠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고 '청취율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답변하겠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라디오로부터 멀어지는 현상을 방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권리가 얼마나 존중되어야 하는지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바가 없다. 그렇지만 연예인들이 자기들끼리 카페나 술집에서 만나서 하는 이야기들을 원칙상 '공중의 것'인 지상파를 통해 방송하는 것은 공해같다. 좀 표현이 심했나? 다음과 같은 말만 듣지 않았어도 이런 표현을 자제했을 것 같다. 다름 아니라 얼마 전 진행자 한 명과 몇 명의 게스트들이 수다를 떨다가 "자, 이제 노래'나' 하나 들을까요"라고 진행자가 멘트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특히 거슬렸던 것은 따옴표친 '나'라는 조사였다. 음악을 신주단지처럼 받드는 것도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수다 떨다 지쳐서 잠시 쉴 때 사용하는 것은 좀 지나친 것 아닐까. 그나마 끝까지 틀어주지도 않고 중간에 페이드 아웃되더니 CF가 흘러나오고 조금 뒤에는 '라디오는 내 친구' 어쩌구하는 자사 광고가 나왔다. 그 친구, 정말 친구 맞아? * 방송위원회 회보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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