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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다오(2); '땅고 아르헨띠노'의 세계

아르헨티나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탱고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넘어가는 일은 브라질 음악에 대해 말하면서 삼바(samba)를 빼놓는다든가, 멕시코 음악에 대해 말하면서 마리아치(mariachi)를 제끼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이들 모두는 '국민의 피에 흐르는 것이다'는 식의 표현에 어울리는 음악들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글을 쓰는 사람이 탱고 음악에 대해 알고 있는 수준은 탱고 매니아들이 비웃을 만한 수준이고, 탱고 춤은 고개를 홱홱 돌리면서 장난삼아 스텝을 밟아 본 게 전부다. 그래도 '기본'은 알아두어야 한다는 심정으로 몇 가지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탱고는 현재 아르헨티나의 '국민 음악'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탱고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음악으로 출발했고 이후에도 탱고의 향기는 여기에서 가장 잘 발견된다. 20세기 초 엄청난 수의 이민자가 쇄

도한 결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시민들 중 70%가 이민 1세대였고 그들 대부분은 이탈리아의 하층 계급 출신이었다고 한다. 세계의 대문호 호르헤 보르헤스의 부모가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 교사를 통해 '영국식 교육'을 가르친 이유도 '비루한 이민자들이 넘쳐나는 학교에 보내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우리한테 더 익숙한 예는 축구일 것이다. 월드컵 축구에서 이탈리아는 세 번, 아르헨티나는 두 번 우승컵을 차지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축구는 남미 축구이면서도 브라질과 달리 개인기와 공격력에 의존하기보다 조직력과 수비가 강하다. 1980년대를 풍미한 디에고 마라도나(Diego Maradona)가 나폴리 팀으로 진출하여 극진한 환대를 받고 급기야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나폴리 시민들이 이탈리아 대신 아르헨티나를 응원했다는 에피소드, 그리고 최근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로 진출한 하비에르 사비올라(Xavier Sabiola)가 외국인 선수 보유규정 한도에 걸리자 '할아버지의 국적'인 이탈리아 국적을 신청했다는 뉴스도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사이의 끈끈한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들 중 하나다.

그건 그렇고 20세기 초로 돌아간다면 유럽으로부터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1세대 중에는 '불세출의 가수' 까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 그리고 '탱고를 예술로 승화시킨' 아스또르 삐아솔라(Astor Piazzolla)의 부모도 포함된다. 단, 가르델은 프랑스로부터, 삐아솔라의 부모는 이탈리아로부터 이주해 왔고 곧 다시 뉴욕으로 이주하지만…. 어쨌든 탱고가 '라틴 유럽'에서 온 이주민들이 남아메리카의 낯선 항구에 와서 형성한 음악 문화인 것의 증거는 충분히 된다. 처음에 탱고를 '뽀르떼냐의 음악(musica poertena)'이라고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항구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다분히 비하하는 의미가 깔려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탱고의 탄생지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동남부에 위치한 보카(Boca) 지역이다. 조선소, 도살장, 공장이 늘어서 있고 부두 노동자, 도살장의 백정, 뱃사람, 밀수꾼, '여자들'이 분주히 오가는 곳이다. 지금도 이곳에 있는 레스토랑이나 바에서는 정어리 튀김을 안주삼아('어, 비려…') 와인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청중으로 삼아 탱고를 연주하는 악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있는 매음굴이 탱고의 발상지라는 사실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간단히 말하면 포주(pimp)가 창녀와 추는 춤이 탱고의 시작이고(탱고 춤에서 남녀가 서로 껴앉는 '자세'를 유심히 보라), 이들 포주들이 꼼빠드리또(compadrito)라 불리는 보헤미안적인 건달 문화를 형성했다는 이야기도.

탱고의 형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아메리카 대륙의 다른 음악들처럼 유럽 무곡에 아프리카 리듬의 영향이 혼합되었다는 점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이 중 '유럽 무곡'은 꾸바에서 형성된 아바네라(habanera)를 매개로 전달되었고, '아프리카 리듬'이란 깐돔블레(candomble)라고 불리는 남미 대륙에 거주하는 아프리카계 주민들의 특유한 문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정리하면 19세기 초 꾸바에서 만들어진 우아한 무곡인 아바네라가 19세기 중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수입되어 나름의 변형을 거친 뒤 1860-70년 경에는 밀롱가(milonga)라는 무곡이 탄생하고, 1880년대에 밀롱가가 깐돔블레의 영향을 받아 탱고가 탄생했다는 것이 지배적 설이다. 밀롱가는 비장하고 어두운 탱고와 달리 2박자의 빠르고 경쾌한 무곡이라는 점도 알아 두자. 또한 월츠와 비슷한 3박자의 리듬을 가진 발스(vals)라는 무곡이 있다는 점도 추가한다.

탱고의 고전인 "Bartolo", "El choclo", "El Amancer" 등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작곡되었다. 그렇지만 탱고의 형식이 완성된 것은 1910년 경이다. 탱고는 기타, 바이올린, 플루트, 클라리넷 등으로 연주되었지만, 1910년 경 독일에서 건너온 반도네온(bandoneon)이 도입된 이래 반도네온 둘, 바이올린 둘, 피아노 하나, 베이스 하나의 6인조가 탱고 악단의 표준적 편성이 된 것이다. 여기서 반도네온이나 바이올린이 한 대로 줄어든 편성을 취하기도 했다. 전자를 '전형적 오케스트라'라는 뜻의 오르께스뜨라 띠삐까(orquestra tipica)로 부르고, 후자를 '콤보 악단'이라는 뜻의 꼰훈또(conjunto)라고 부른다.

1차 대전을 겪으면서 탱고는 변방의 댄스 음악에 그치지 않고 국제화되기 시작했고.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무도장'에서 선풍을 일으켜서 1920년대에는 서양에서 가장 인기있는 볼룸 댄스 음악으로 정착했다. "20세기 남미 대륙 출신 가운데 최고의 가수"라는 평을 듣는 까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이 출현하여 국제적 명사가 된 것도 이 무렵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와전'과 '왜곡'도 발생했다. '아르젠틴 탱고(땅고 아르헨티노)'과 구분되는 '콘티넨털 탱고'가 그것이다. 이때 '콘티넨털'이란 유럽을 말하는데, 스포츠 댄스에서 '모던 댄스'의 하나로 분류되는 탱고가 바로 콘테넨털 탱고다. '탱고 리듬'이라고 말하는 액센트가 강하고 정형화된 리듬 패턴은 콘티넨털 탱고에서만 나오는 것이다. 정작 부에노스 아이레스 사람들은 이런 탱고에 대해 '너희가 탱고를 아느냐', '서민의 애환이 없다'는 식으로 투덜댈 것이라는 사실도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일이다. 주)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는 오늘날의 탱고를 생각하면 다소 격세지감이 든다. 최근의 예만 들어 보아도 루이스 브라보(Luis Bravo)의 뮤지컬「Tango Forever」나 까를로스 사우라(Carlos Saura)의 영화「Tango」에서 보는 탱고는 대중 음악이라기보다는 예술 음악에 가깝다. 기돈 크레이머(Gidon Kramer)까지 극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연주 레퍼토리로 집어넣을 정도라서, 이제 아스또르 삐아솔라(Astor Piazzola)의 음반은 '클래식 코너'에 가야만 한다. 그래서 아스또르 삐아솔라를 비롯한 탱고 음악인의 예술적 업적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아르헨티나의 대중 음악에 대한 그의 영향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반면 지금도 각국의 댄스 교습실에서 울려퍼지고 있을 탱고는 '예술로서의 탱고'를 춤을 추기 위한 기능적인 용도로 '실용 음악'으로 만든 것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탱고'라는 단어가 들어간 헐리우드 영화들에 나오는 사운드트랙들도 몇몇 예외를 제외한다면 이런 실용음악, 이른바 무작(muzak) 이상이 아니다. 하물며 방실이가 부른 "서울 탱고"를 탱고에 포함시킨다면, 김수희의 "남포동 부루스"를 블루스에, 설운도의 "삼바의 여인"을 삼바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만년의 아스또르 삐아솔라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탱고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탱고는 이미 오래 전, 1955년 정도에 사라졌다. 그 이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 사람들은 탱고의 옷을 입었고, 탱고를 추듯이 걸었다. 그들에게서 탱고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지금은 록이나 펑크의 냄새가 더 많이 풍긴다. 요즘 탱고는 옛날 탱고의 향수에 젖은 지리한 흉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르헨티나의 록이나 펑크의 곡 제목에도 종종 탱고나 밀롱가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건 마치 그들의 피에 흐르는 무엇인가보다. 한국 대중 음악의 '뽕끼'처럼.

아르헨티나 탱고와 콘티넨털 탱고의 차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인용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탱고 순수주의자들이 '콘티넨털 탱고'를 경멸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는 문장이다.

"콘티넨털 탱고는 연주 스타일도 박자가 척척 들어맞는 듯한 아르헨티나 탱고에 비해 선율적이다. 악단의 편성도 본고장 탱고가 반도네온 · 피아노 · 콘트라베이스 · 바이올린의 4종류의 악기를 주제로 하고 있는데 비해, 콘티넨털 탱고의 오케스트라 편성 방식은 특별히 결정되어 있지 않지만, 알프레드 하우제나 말란도 악단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대체로 현악기가 중심이 된다. 무엇보다도 아르헨티나 탱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반도네온은 콘티넨털 탱고의 연주에서는 그다지 사용되지 않고, 대신 아코디언이 쓰인다. 이 반도네온과 아코디언의 차이가 각기 탱고의 음색을 상징하고 있다. 반도네온의 음색은 어둡고 무겁다. 그리고 멜로디를 연주할 뿐만 아니라 강력한 스타카토나 레가토 주법으로 아르헨티나 탱고의 독특한 리듬감을 만들어 낸다. 이에 비해 아코디언의 음색은 밝고 흘러가듯이 멜로디를 노래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가사다. 콘티넨털 탱고는 지금도 노래보다는 댄스를 위한 음악으로서의 성격이 짙다. 전자는 정열적이며 거칠지만 가리워지지 않는 인간의 감정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후자는 그러한 속에서 속악적인 면을 배제하고 품위 있으면서도 정열적이며 이국 정취에 넘치는 댄스음악이 된 것이다" (1996년『객석』에 실린 글을 재인용) ▲

* 웹진 [Pencil]에 게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