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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축구대회'에 대한 나의 생각은 평균적 한국인들과 많이 다른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말해서 자신의 유별남을 티내는 것이 얼마나 '잘난' 일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나의 '무관심'이 걱정된다. 단적으로 말해서 나는 '월드컵 기간 중 자동차 2부제 운영'같은 시책이 내린다면 불복종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유를 묻는다면 월드컵이라는 행사가 '나'와는 무관한 '관(官)'의 행사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월드컵에 대한 민(民)의 협조를 요구하는 '주최측'의 태도는 '행사 기간 시끄럽게 굴지 말고 조용히 하던 일이나 해라'는 것 이상이 아닌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돈 있으면 가까운 경기장 가서 축구나 구경해라'는 것일 테고... 월드컵 기간을 전후하여 이런저런 문화행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에 한정해서 이야기해 본다면 한일 디자이너 패션 쇼, 서울세계불꽃축제, 서울드럼 페스티벌, 종묘대제봉행, 월드록 콘서트, 월드 갈라 콘서트 등이 개최될 예정이라고 하고, 3-4월에는 서울월드컵경기장 북측 이벤트광장에서 관람객들을 위한 상설 이벤트를 개최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행사에서 일반인은 '구경꾼' 이상이 되지 못할 것 같다. 한마디로 100년에 한번 치를까 말까 하다는 월드컵 행사에서도 '관 주도'라는 한국의 전통적(?) 행사 관행은 예외가 아닌 것 같다. 그 이유를 곰곰 따져 봤더니 '한국의 현대 대중문화' 중에서 별달리 세계에 내세울 만한 게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현대 대중문화'라고 표현한 것에 유의해 주기 바란다. 즉, 현대 문화가 아니거나 대중문화가 아닌 것은 그럭저럭 세계에 내세울 만한 것이 없지는 않다. 일단 나의 영역인 음악 분야에 대해서 말해 보자. 한편으로 전통문화의 경우 외국인들로부터 'wonderful'이라는 감탄사를 받을 문화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원더풀'이라는 반응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있고, 기껏해야 '신기한 것(novelty)' 이상이 아닐 것 같다는 '불안감'이 있다. 최근 유행했던 표현을 쓰면 그건 '오리엔털리즘'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게다가 나같은 유형의 사람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는 이제 더 이상 '한국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좀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내게 한국의 전통문화는 서양 대중문화보다 더 '이국적'이다. 위에서 언급한 종묘대제봉행을 보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가 진심으로 부럽다. 이런 현상이 뼛속깊이 서양 대중문화에 오염된 결과 그런 것인지 아닌지는 논란이 되겠지만, 그건 한국 대중문화 전체의 문제지 나 개인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국어(國語)라는 개념에는 '현대'와 '외래'가 포함되어 있지만 국악(國樂)이라는 개념에는 왜 '현대'와 '외래'는 배제되어 있는지 새삼스런 의문이 든다. 외국인들이 '국악'이라는 말을 독해한다면 'national music'으로 번역하겠지만 한국의 국어는 국민 전체가 향유하는 음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국악이라는 것이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외래 문화로 출발했을 텐데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대중문화가 아닌 고급예술의 경우 세계적인 한국의 문화예술인이 꽤 있다. 지휘자, 성악가, 기악 연주자 등 많이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경우 '양악(洋樂)'을 하는 것이지 한국의 음악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월드 갈라 콘서트'의 경우 정명훈, 조영창 등의 세계적인 한국인 음악가들이 에핌 브롬프만, 슐로몬 민츠, 다이신 카지모토, 미샤 마이스키, 유리 바슈메트 등과 함께 연주할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때 '한국인'이란 국제법 상의 국적 이상은 아닌 것 같다. 논란이 있겠지만 그들의 문화적 국적은 '한국인'은 아닐 것 같다는 말이다. 물론 그들의 일상생활이 한국인의 정체성과 무관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작품이나 연주에서 한국적인 무엇을 찾기는 힘들다. 월드컵 기간 중에 모습을 드러낼지는 모르지만 조수미, 장영주, 장한나 같은 세계적인 성악가나 악기연주자들도 이 점은 마찬가지다. 이들이 활동하는 '시스템'이 서양의 고전음악계의 시스템이니 이건 불가피한 일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현대 한국 대중음악'일 것이다. 이때 현대란 '1945년 이후'로 넓고 느슨하게 정의해 보자. 그렇다면 현대 한국 대중음악 가운데 세계에 내세울 만한 것이 있을까. 분명한 것은 내세울 만한 것이 있든 없든 현재 내세워진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를 따지기 전에 과연 '선진국'에 속하지 않는 나라의 대중음악이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방식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월드 뮤직'이라는 범주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월드 뮤직이란 무엇인가. '월드 뮤직'라는 용어는 이제 일반화된 것 같지만 그것을 똑부러지게 정의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일단 한국에서 이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알아 보기로 하자. 달리 말해 세계 음악산업에서 저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라는 이야기다. 우선 저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들인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이나 '세계를 무대로 하는 음악'은 월드 뮤직과는 별 관계가 없다. 오히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은 '인터내셔널 팝/록'이라고 부르지 '월드'라는 수식어를 달지는 않는다. 그러니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백스트리트 보이스처럼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이름을 알 만한 스타들은 '인터내셔널 팝 스타'이지 '월드 뮤지션'은 아니다. 그렇다면 '세계 각지의 대중음악'인가. 그렇게 말하기도 힘들다. 세계적 명성이 없고 그 나라(혹은 지역) 사람이나 알지 외국에서는 '그 사람이 누구냐'라고 할 만한 음악인이 만들고 연주하는 음악도 '월드 뮤직'이 아니라 '로컬 팝(local pop)'이나 '로컬 록(local rock)'이라고 불린다. 예를 들어 독일의 록 밴드나 홍콩의 대중가수의 음반은 음반 대형매장에서 '월드 뮤직' 코너에 진열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대중가요' 대부분은 '로컬 팝'이나 '코리언 팝'으로 불릴 것이다. 용어 선택에 불만을 제기해도 이미 확립되어 있는 관행을 바꾸기는 힘들 것 같다. 그렇다면 '세계 각지에 남아있는 민속음악'인가. 이 정의가 월드 뮤직의 실체에 가깝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몇 가지 유보조건을 달아야 한다. 첫째로 현재 세계 대중음악계에서 헤게모니를 가진 영미권의 팝이나 록의 음악적 뿌리인 포크, 블루스, 컨트리같은 미국의 민속음악이나 샹송, 칸초네같은 나름대로 선진국의 대중음악은 월드 뮤직에서 제외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둘째로 미국이 아닌 나라의 민속음악이라고 하더라도 '인위적으로 보존된' 음악은 월드 뮤직에서 제외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과거의 '지배계급'의 음악에서 유래한 음악은 월드 뮤직으로서의 가치가 작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한국의 국악 중에서 '정악'에 속하는 음악은 월드 뮤직으로서 성공할 확률이 그만큼 작다. 이렇게 까다로운 정의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복잡한 말이 나올 때는 단순한 무언가가 배경에 깔려 있기 마련이다. 이 경우에는 음악의 '생산'보다는 '소비'에 주목하면 쉬운 답이 나온다. 즉, '월드 뮤직을 누가 듣는가'는 질문을 던지면 된다. 단순화해서 말한다면 월드 뮤직의 청중은 선진국에서 비교적 유복하고 나이든 계층이다. 그러니 험악하게 말하면 '여피용 음악' 중의 하나다. 월드 뮤직을 듣는다는 실천은 세계의 오지를 여행하는 실천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월드 뮤직이든 '월드 투어(세계 여행)'이든 '이국주의(exoticism)'가 그 실천의 핵심이다. 단, 이런 이국주의는 '지나치게' 이국적이거나 낯설다면 곤란하다. 편안한 호텔에 묵으면서 유리창 밖으로 때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을 바라보는 기분이 월드 뮤직을 감상할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니 서양에서 월드 뮤직이란 젊었을 때 듣던 팝이나 록은 '문명의 때'가 묻어 있고, (유럽의) 고전음악이나 재즈도 다소 지루할 때 찾아듣게 되는 음악인 모양이다. 월드 뮤직이 뉴욕이나 런던보다는 파리에서 더욱 융성하는 현상도 '타국의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고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프랑스인들의 심리구조와 맞아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물론 영미 팝과의 경쟁에서 패한 뒤 틈새시장을 노리는 프랑스 음악산업의 전략도 한 몫 하는 면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 월드 뮤직이란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후진국이나 제 3세계의 현대적 민속음악'이다. 즉, 전통적 음악이 그대로 보존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현대적' 음악이며, 상업적 시스템에 편입된 대중음악보다는 '민속적' 성격이 강한 음악이다. 월드 뮤직으로 성공을 거둔 음악들 대부분이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동유럽, 아랍, 인도에서 생산된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한국같은 동아시아 지역에 비한다면 오랫 동안 유럽이나 북아메리카의 선진국들과 문화적으로 교류했으므로 이들의 문화는 '적당히' 낯설고 따라서 월드 뮤직 청중의 호사스러운 기호를 충족시켜 주는 듯하다. 그리고 이상의 설명은 작년에 한반도에도 불어닥쳤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악의 성격을 곰곰 생각해 보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한국: 월드 뮤직의 수입국인가, 월드 뮤직계로부터의 고립국인가 이상의 이야기는 '선진국의 음악 소비자'의 입장이었다. 그걸 듣고 보면 월드 뮤직이란 기껏해야 유복한 백인들의 호사 취향을 충족해주는 '휘귀품(rarities)'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조금 더 심하게 말하면 '니네는 괜히 우리 흉내 내려고 하지 말고 그런 거나 해라'는 말이다. 이 말은 그저 하는 말이 아닌데 왜냐하면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이어 이번 월드컵에서도 음악을 맡은 김수철이 저런 말을 듣고 록 음악을 포기하고 국악의 길에 접어 들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는 불운한 것이다. 실제로 월드 뮤직이라고 마케팅되는 음악들이 재즈, 록, 훵크 심지어 클래식같은 구미의 음악과 유연하고 풍부하게 뒤섞인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예를 들어 '레게의 제왕'인 자메이카의 고(故) 밥 말리나 '아프로비트의 제왕'인 나이지리아의 고(故) 펠라 쿠티에게서 리듬&블루스(rhythm&blues)나 훵크(funk)의 영향을 제외할 수 없고, 보스니아의 고란 브레고비치(Goran Bregovic)나 그리스의 조르쥬 달라라스(George Dalaras)에게서 바르톡(Bartok)과 비틀스(The Beatles)의 영향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매우 둔한 사람일 것이다. 하물며 아르헨티나의 '누에바 땅고'의 거장 아스또르 삐아솔라(Astor Piazzola)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창가의 음악'이었던 탱고를 클래식 음악과 결합하여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키지 않았는가. 따라서 '김수철이 뛰어난 기타 연주력을 버리지 않고 그걸 국악과 뒤섞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최근 그가 이혼이라는 개인적 고통을 겪은 사건이 그의 음악적 선택과 관계없기를 바랄 뿐이지만. 따라서 월드 뮤직에 대한 담론은 '후진국의 음악 생산자'의 시각에서 역전시킬 필요가 있다. 싫든 좋든 '월드 뮤직'이라는 범주가 후진국 음악인들로서 세계시장에서 '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중음악이 월드 뮤직으로 뜨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알아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게 순서일 듯하다. 첫째로는 한국같은 동북아시아 혹은 극동에 속한 나라들의 전통적 음악 어법이 서양의 음악 어법과 매우 이질적이라는 점이다. 이는 근대 이전 시기에는 지리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점이다. 그렇지만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도 이런 특징이 계속 '핑계'가 될지는 모르겠다. 그보다는 차라리 '양악'과 '국악'을 구분하는 제도권 음악계의 완고한 관행이 더 문제가 되지 않을까. 어쨌든 차제에 이런 말이 공론으로 부상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둘째로는 대중음악인들의 '무비판적인 서양 추종'에 대한 문제점이다. 이는 '순수음악인'에도 해당되는 특징이지만 나름의 국제적 제도와 시스템과 연관되어 있는 순수음악계와 달리 대중음악계의 경우 '국내시장'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크다고 하겠다. 이걸 하루 아침에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서양의 트렌드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결과물은 어쩔 수 없이 '서양과 동양의 잡종'이 탄생한다면 '잡종'에 대해 조금 더 목적의식을 부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셋째로는 한국의 대중음악의 전통에 대한 사회 전반의 경시와 무관심이다. 1970년대 나름대로 서양의 음악 스타일을 한국화시킨 음악들, 예를 들어 '한국적 포크'와 '한국적 록(당시 용어는 '그룹 사운드')'이 탄생했지만 현재 이 음악들은 '기성세대(386세대)'의 폐쇄적인 노스탤지어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즉, 이를 나름의 문화적 재산으로 간주하는 시각보다는 특정 세대를 위한 또하나의 연예로 간주하는 시각이 우세하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들이 이런 음악적 유산에 무관심하다고 탓하는 분위기는 많아도 젊은 세대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실천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 축구대회가 '우리 것'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점에 나 역시 동의한다. 단, 그때 '우리 것'이 단지 하품 나오는 '전통적인 것'이라면 동의하기 힘들다. 그 대신 한국에 밀려들어올 외국인들의 정말 다종다양한 문화 속에서 '현대 한국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크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월드컵을 단지 '관 주도의 행사'라는 이유로 그를 통한 새로운 문화적 가능성을 부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늦었다. 하지만 갑자기 서두른다고 뭐가 되는 것이 아닐 테고, 그렇다면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의 마음부터 개방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월드 록 페스티벌'이라는 행사에서 '월드 록'이 어떤 의미인지부터 점검해 봐야겠다. 독자들도 자신 주변의 행사에 참여해 보면서 이런저런 문화적 경험을 하기를 감히 권해 본다. 20020408 * [황해문화]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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