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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영국의 갤럽(Gallop)의 청소년 여가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10대 청소년들은 하루 평균 4시간 음악을 청취하는데, 이는 1970년대 중반에 비해 3배나 많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조사는 음악이 청소년에게 차지하는 비중은 낮아졌음을 보여주는데, 음악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의 순위에서 교육, 가정, 친구, 돈, 섹스, 외모, 일, 외출, 스포츠, 취미, 축구 다음이다. 결국 1990년대 이후 청소년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이 듣지만 '의미'는 작아졌다. 한 사회학자의 결론은 "청소년은 물질주의자이고 기능적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반면, 기성세대는 지나가버린 것의 현현(顯現)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자"로 압축된다. 서양의 기성세대들이 196-70년대에 청년기를 보내면서 부모 세대에게 '반항'했다는 점을 반추한다면, 이런 새로운 '세대 격차'는 역설적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의 사정도 비슷해 보인다. 30대부터 40대 초중반에 이르는 세대들은 음악을 조금 듣지만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가수의 가창력이 좋은가, 가사가 문학적 구조를 갖추었는가, 편곡과 연주가 세련되었는가 등은 꽤 중요한 문제다. 더 나아가면 연주자의 '필(feel)이 얼마나 살아있나'를 따진다. 레코드를 구매하고 보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고, 음악은 '개인 소비재'이고 '사치재'였다. 반면 청소년들이 음악을 들을 때 중요한 것은 가수(나 댄서)의 외모와 춤 동작이다. '비디오'가 '오디오'에 우선하며, 음악적인 면에서 중요한 것은 '노래방에서 함께 춤추면서 부르기 좋은가'가 유일하다. 결국 레코드(CD나 테이프)를 구매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음악을 '소유'할 수 있다. 이들에게 음악은 필수재 나아가 '공공재'이고, TV나 노래방기기가 놓여있는 방의 배경음일 뿐이다. 1998년의 음반 판매량이 전년 대비 30% 이상 축소되는 등 최악의 상황에서도 10대용 댄스음악의 인기가 여전한 것은 이 점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음악산업은 '스타산업'의 일부이지 그 역은 아니고 음악의 인기는 레코드의 판매량과 독립적이다. '거품이 걷히면서 댄스 음악은 침체하고 복고풍 음악이나 성인 취향의 음악이 대두할 것이다'라는 1998년 초의 예상은 빗나갔다.
이런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들려왔다. 이 목소리에 의하면 주류 대중음악은 '경제적 가치'는 있을지언정 '문화적 가치'는 없으며, 청소년들은 '비합리적 취향'에 따라 음악을 즐긴다. 실제로 (나를 포함한) 기성 세대의 시각에서 청소년들의 음악 문화는 '진지한' 음악이 표방해 왔던 창조적 자기표현이나 자유로운 생활방식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상대적이다.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대중음악은 '나름의' 문화적 가치를 갖는다. 진지한 것이든 아니든 대중음악은 청소년의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능을 가지며, 그런 의미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대중음악의 문화적 가치는 있다. 기성 세대가 '그때가 좋았지'라고 생각하는 당시의 음악 문화 역시도 특수한 경험에 기초하여 형성된 것이므로 일반화하기는 힘들다. 정작 문제는 한국의 대중음악이 경제적 가치밖에 없다는 점이 아니라 경제적 가치가 국내 시장의 폐쇄회로 속에서만 실현되어 왔다는 점이다. 달리 말해 음악산업의 구조는 직간접적으로 '보호된 시장'이고, 대중음악은 수입대체를 통해 제조된 내수용이라서 수출 잠재력도 국제 경쟁력도 없다. 이 점은 음악산업의 시장규모나 대중음악의 경제적 가치가 크지 않았던 시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본격적으로 '산업'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1990년대 들어서는 '문제'다. 밀리언 셀러가 몇 장씩 나왔으면서도 세계적 수준의 뮤지션이나 프로듀서가 나오지 않는 현실은 분명 '문제'다. 대중음악은 청소년 문화에 대해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대외적 압력으로부터 보호될 가치가 없는 것이다. '폐쇄되고 보호된 시장구조'와 무관치 않아 보이는 또하나의 현상이 있다. 음악 수용자들이 한편으로는 스타들에게 열광하는 '보통의' 대다수 청소년들, 다른 한편에는 일본을 포함한 외국 대중음악이나 국내 언더그라운드 음악에만 자폐적으로 집착하는 '매니아'로 분열된 현상이 그것이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X 재팬'의 뮤직 비디오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여고생의 모습을 보고 드는 생각은 '개방 반대의 역효과'다. 일본문화에 대한 꺼림직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개방은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이지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또한 개방은 외부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내부에 대해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다른 TV 프로그램에서 주류 음악계에 노골적 반감을 표하던 어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 1월 12일 '라이브 클럽 공연을 합법화한다'는 문화관광부의 조치를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하다. 이 궁금증은 '대중음악이 다시 한번 진지한 것으로 간주되면서 경제적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라는 나의 우문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현답(賢答)은 음악과 직업적으로 관계된 모든 이들의 몫이다. 990113 * <뉴 미디어 저널>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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