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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대중음악계 결산

1998년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여느 해보다 '차분'했다. IMF 구체금융체제 이후 사회 각 분야에 휘몰아친 거품 제거와 군살 빼기의 바람으로부터 대중음악계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음반 판매가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1990년대 들어 밀리언 셀러가 여러 장 탄생하면서 본격적으로 '산업'의 면모를 가지게 된 음반산업은 1997년에 이어 시장규모의 축소가 계속되었다. 음반판매가 절정을 이루었던 1996년과 비교해 본다면 1998년은 대략 3분의 1 정도가 축소되었다. 1996년의 시장 규모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2002년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1998년이 확인한 것은 음악 장르와 스타일이 다소 바뀌어도 시스템과 질서는 변하지 않은 채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전반적인 시장위축의 상황에서 이전보다 작아진 파이는 이전부터 존재해 왔던 아이돌 스타들에 의해 나뉘어졌다. TV 방송 3사의 자정 노력의 일환으로 폐지된 가요 순위 프로그램은 몇 달 뒤 대부분 부활되었다.

소년 아이돌 댄스그룹들인 H.O.T.는 댄스가요 일변도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인 3집 음반을 발표하여 어려운 상황에서도 밀리언 셀러로 만들었다. 몇 년째 H.O.T.의 라이벌이었던 젝스키스는 <<Special>>으로 H.O.T.와 경합했고, 연말의 한 방송사의 대중가요 시상식에서 H.O.T.와 대상을 공동수상했다. 이들은 기존의 소년 소녀의 사랑과 더불어 '어려운 시기에 다같이 힘을 합해 잘해 보자'는 메시지를 담은 가사를 통해 기성세대에게도 호감을 주었다.

아이돌 스타 중심의 주류 대중음악계에서 새로운 현상이 있었다면 그동안 주변에 위치했던 여가수 및 소녀 그룹들이 전면에 대두한 것이다. S.E.S., 핑클, 디바, 한스 밴드, 써클 등 소녀 그룹들은 이전까지 소년들의 독무대였던 댄스음악계의 중심으로 진출했고, 이들 중 S.E.S.와 핑클은 H.O.T.와 젝스키스의 관계와 비견되는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김현정같은 솔로 가수, 비쥬같은 혼성 그룹도 여성을 앞세워 작지않은 성공을 거둔 신인들이고, 주주클럽과 자우림같이 몇 년 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혼성 록 밴드도 어느 정도는 이런 흐름의 덕을 보았다.

또한 댄스 음악과는 구분되는 '흑인 음악'으로서 힙합(hip-hop)'을 본격적으로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발생한 것도 새롭다면 새로운 것이었다. 이제는 중견이 된 양현석과 업타운에 이어 원타임(1TYM), 갱톨릭, 조PD 등의 신인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대중가요의 멜로디와 사운드를 기초로 랩을 양념처럼 덧붙인 기성 댄스가요의 스타일과는 달리 거칠고 불량스러운 랩과 무겁고 불길한 사운드를 결합한 '본격' 힙합을 추구하였다.

TV와 라디오 등 대중매체에서 모습을 보기 힘든 음악인들도 1998년에 몇 가지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다.

먼저 주목되는 것은 198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베테랑들이 대형 공연을 성공리에 이끌었다는 점이다. 조용필은 '데뷔 30주년 공연'을, 들국화는 10년만의 재결합 공연을 가져 이후의 활발한 활동을 예고했다. 그렇지만 1980년대에 지상과 지하를 대표했던 두 거물들마저도 '노장은 공연은 몰라도 음반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속설을 전복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물론 그 와중에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는 성인들의 '만인의 애창곡'이 되는 개가를 이루었다.

둘째 이제는 '20대의 우상'이 된 서태지와 신해철이 각각 외국에서 제작한 음반을 보내왔다. 서태지는 7월에 미국에서 '얼터너티브 록' 음반을, 신해철은 3월에 영국에서 '테크노' 음반을 보내왔다. 과거의 그룹 활동 때와는 상이한 음악을 선보인 두 음반은 찬반양론을 일으켰지만, 두 뮤지션 모두 TV 출연이나 라이브 공연을 전개하지 않아서 논쟁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인디 음악(indie music)'이 본격적으로 실체를 드러내었다. 인디, 드럭, 강아지, 라디오, 홀 등의 소규모 인디 레이블들이 언더그라운드 클럽의 활동을 기초로 '주류 질서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20종 안팎의 '저예산 독립음반'을 발매했다. 아직 소수의 지지에 그치고 있지만 기성 대중가요계의 거품을 제거하고, 진지하고 의미있는 음악을 추구하겠다는 시도에 점차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1998년 대중음악계의 최대 쟁점은 '일본 문화 개방'이었다. 만화나 게임 이 '실질적으로' 개방된 상태에서 초점은 음악과 영화에 맞추어졌다. '점진적 개방'이라는 원론적 입장 외에는 정부 차원에서의 구체적 대책이 없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일본 음악의 개방이 단지 일본 국적의 연예인들의 활동공간의 개방을 넘어서 그동안 국제적 영향으로부터 '폐쇄되고 보호된' 대중음악의 시스템을 개혁하는 계기로 삼아야한다는 주장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 <브리태니카 사전>에 수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