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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대중가요사]의 저자 이영미는 '눈높이 평론가'다.
그가 썼던 글에는 현학적 개념이나 난삽한 문장이 별로 없다. 단지 글쓰기 방식만이 아니라 그가 평론의대상으로 삼는 주제들은 '대중'이면
누구나 익숙하게 경험하는 것들이다. 그건 상업적 고려라기 보다는 그가 평소에 체화하고 있는 인간관이자 세계관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책의 앞부분을 접하는 순간 이런 생각은 다소 수정되었다. 총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1장은 대중가요 및 대중예술 전반에 대한 그녀 나름의 방법론이 '어렵게' 서술되어 있다. 작품, 작가, 수용자, 양식 같은 개념들은 추측컨대 문학 이론으로부터 원용한 개념들로 보인다. 물론 그가 이 개념들을 대중음악(및 대중문화 일반)에 기계적으로 적용하지는 않는다. 오랜 글쓰기 경력으로부터 나오는 노련함으로 그는 무리함과 위험을 피하면서 몇 개의 적절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이를 일별하면, 대중가요를 서민문화인 동시에 지배문화로 사고하는 문화이론, 대중가요를 '가사와 악곡의 결합'으로 보는 텍스트론, 대중가요에도 작가와 작가의식이 존재한다는 '작가론(혹은 아티스트론)', 트로트/이지리스닝/포크/록 등으로 한국 대중가요의 갈래를 분류하는 '장르론' 등이다. 이를 통해 그는 현재 대중음악에 대한 담론들의몇 가지 '편향'들과 거리를 두고자 한다. 그의 기획은 책의 전반부, 그러니까 대중가요의 발생기부터 일제 시대를 거쳐 트로트와 이지리스닝을 다루는 1960년대까지는 잘 실현된다. 워낙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나 일제 시대 트로트가 정착하는 과정에대해 쓴 부분은 '언젠가 다시 한번 차분히 읽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체계적이고 분석적이다. 어느 정도 정리된 내용이 있는 소재라고 하더라도 이런 포괄적이면서도 '대중적'인 글은 나오기 힘들다. 이는 포크와 록을 중심으로 1970년대청년문화를 다룬 부분에서도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 그렇지만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이런 긴장감은 감퇴하는 듯하다. 그가 평소에 여러 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다시 읽는다는 느낌 보다는 기술(記述)이 분석을 대체하고 경험이 인식을 대체한다는 느낌 때문이다. 음악에 대한 분석은 일반적이고("이 장르는 이러하다"는 식의 서술), 가사에 대한 분석은 구체적이다. 나아가 음악에 대한 논의는 악곡의 형식과 화성 진행으로 환원되어 버리고 리듬이나 텍스처 등에 대한 논의는뒷전으로 물러나 버리거나 몇 가지 인상비평 용어들로만 서술되어 있다. 7장까지는 꽤 많이 수록된 악보가 1990년대 대중음악을 다룬 8장에는 단 하나도 수록되지 않은 것이 저자의 의도인지 저작권 관련 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게는 '징후적으로' 읽힌다. 가사의 문학적 의미를 중시하는 저자의 소신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일은 부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럴 경우 "왜 그토록 당대의 대중들을 열광케 하였"는가라는 저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미궁에 빠져 버리는 듯하다. 대중음악을 들을 때 가사의 메시지나 악곡의 형식에 주목하는 '대중'은 많지 않고 갈수록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가사와 악보라는 고전적 텍스트는 '존중'될 때보다 '무시'될 때 더많은 음악적 효과를 낳는다. 예를 들어 가수의 목소리의 굴절이나 리듬 패턴의 미세한 변동이 주는 효과는 의미 '이전의' 것이고 신체적이고 물질적이다. 내게는 '사운드의 효과'가 음악의 메시지보다 일차적이라는 '외국' 사회학자의 주장이 한국인인 저자의 주장보다 '우리'의 현실에 더욱 가깝게 들린다. 이는 '대중음악에서대중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보다 원론적인 문제로 소급된다. 대중성이란 특정한 문화적 상황에서 복잡한 힘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개념이고, 하루살이성 인기부터 세월을 초월하는 장수에 이르기까지 형태도 다양하고 가변적이다. 그런데 저자의 서술은 간혹 대중성을 고정된 무언가로 전제하지 않는가라는 혐의가 들 때가 있다. 1장의 방법론을 견지한다면 대중성이 만들어지는 구체적 경로에 대해서 보다 큰 관심을 기울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 책은 '왜 특정 장르나 음악인이 특정 시기에 대중성(혹은 인기)를 누리는가'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원만하지만, '왜 특정 장르나 음악인 중에서 특정한 곡이 일정한 기간 동안 대중성을 누리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에는 인색해 보인다. 이 책의 직접적 대상이 아닌 대중음악의 산업적·기술적 컨텍스트나 취향문화의 컨텍스트를 여기서 논하기는 부적절하다. 어쨌든 저자가 강조하는(그리고 나도 동의하는) '수용자 중심의' 대중음악의 담론을 형성하려면, 그리고 보다 '낮은' 눈높이 평론을 만들어내려면 이 책이 제시한 논점들은 보다 많은 시간과 수고를 거쳐야 보다 풍성하게 답변될 수 있을 듯하다. 990209 * <씨네 21>에 게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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