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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 간 음반과 관련된 뉴스 중에 가장 많이 들려온 용어는 '싱글'과 'mp3'였다. 두 가지 음반 형태(정확히 말하면 '최종 소비자용 레코드 포맷') 모두 새로운 것이지만 새로움의 의미는 많이 다르다. 오늘은 앞의 이야기만 해보자. 싱글 음반(싱글 CD)은 '인디(indie)' 레이블들의 시도다. 너댓 트랙이 수록된 총 연주시간 20분 정도의 미니 음반이다. 120mm의 크기를 가진 보통 CD보다 작은 80mm의 아담한 크기의 CD고, 가정용 및 휴대용 CD 플레이어로 재생할 수 있다. 작년부터 인디 레이블에서 발표된 음반들에서 베스트를 골라<Indipia>라는 컴필레이션 시리즈가 3집까지 나왔고, 에브리 싱글 데이라는 밴드의 독집도 출시되었다. 포장도 '팬시 상품'처럼 예뻐서 화장품 가게에 걸어놓아도 될 것같다. 본래 앨범이란 용어는 '싱글을 모아놓은 전집'이라는 뜻이었다. 20세기 초의 앨범 레코드는 요즘의 '박스 세트'같은 것이었다. 싱글 레코드가 스냅 사진이라면 앨범 레코드는 사진첩(앨범)같은 것이었고, 이후로도 포맷은 많이 바뀌었어도 '개념'은 유지되었다. 싱글이 '값이 저렴하고 운반이 편리한' 장점을 가진 비(非)내구재라면, 앨범은 값이 비싸고 운반비용이 많이 들지만 '소장 가치'를 가진 내구재이다. 이런 이야기는 대한민국에는 해당사항 없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국에서는 축음기 시절의 SP를 제외하고는 싱글이 없었고, 그 결과 모든 음반을 '앨범'이라고 부르는 이상한 관습이 생겨났다. 한국에서 앨범이라는 '외래어'(외국어가 아니라)는 음반과 동일어가 되었다. 문제는 '용어를 잘못 사용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의 '앨범들' 대부분은 '한 두곡 빼고는 들을 만한 게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비난을 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범에만 집착해 온 것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의 귀찮음과 위험부담'을 피하려는 무사안일주의, 그리고 한국 사회에 만연한 '한탕주의'와 무관치 않다는 추측까지 해보게 된다. 100장의 앨범이 망하더라도 1장의 '대박'만 터지면 먹고 살 수 있다는 발상(이자 현실) 말이다. 인디 레이블들이 시도하는 싱글 음반은 이런 주류의 관습에 반기를 들고 있는 셈이다. 이는 경제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10곡 이상이 수록된 앨범 하나를 제대로 제작하려면 몇 달이 걸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작업을 거쳐 발한 앨범이 이유로 시장에서의 평가를 받는데 실패한다면, 뮤지션들은 음악을 직업으로 선택하기 힘들어진다. 뮤지션들도 한탕주의에 감염될 수밖에 없는 거이다. 만약 싱글 시장이 활성화될 경우 두세달 내에 싱글을 내고, 만약 실패할 경우 적어도 '삼세판'까지 해볼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싱글 시장의 미래를 전망하면 한마디로 '미지수'다. 되돌아보면 싱글 CD를 시도했던 예가 없지는 않다. 90년대 중반 강수지나 블루(손지창/김민종)같은 인기가수가 싱글 음반을 내놓은 일이 있고, 가장 가까이로는 1997년 삐삐롱스타킹의 시도가 있었다. 이들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것은 싱글 음반의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싱글 CD는 6,000원 수준이었으며, 이는 앨범 전체를 담은 테이프 가격보다도 높았다. 다행인 것은 이번에 나온 싱글 CD의 가격은 4,500원으로 합리적 수준이다. 일단은 '해볼만 하다'는 게 당사자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 음반유통을 좌지우지하는 대부분의 도매상들은 '무관심'하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국내 최대의 유통업체인 신나라 레코드와 메가스토어들이 관심을 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은 문제는 '소비자의 관습'이다. 음반을 구매하기 위해 지갑에서 돈이 나오려면 '저 음악 괜찮군' 정도로는 부족하고, '저 음악 좋아서 미치겠네' 정도는 되야 된다. 그 뒤에는 '알짜배기 서너곡'과 '알짜배기 두곡 및 끼워팔기' 사이의 난감한 양자택일이 있다. 대중음악 소비자들이 '진지하고 집중된 청취(listening)'보다는 '가볍고 다양한 들음(hearing)'을 선호하는 현상도 꺼림칙하다. '거리의 하드웨어' 면에서 워크맨이 디스크맨(휴대용 CD플레이어)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점도 또하나의 걸림돌이다. 당사자들에게는 면구스럽지만 말이지만 싱글 레코드가 '한국 음반산업의 전반적 관습' 그리고 '오래 전부터 형성된 음악 소비자의 관습'으로 인해 실패로 끝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앨범의 음악적 질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유도한다면, '하나의 관습'을 바꾼다는 의미에서 나름대로는 '성공'일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대중음악계에서 혁신자의 몫은 얼마 되지 않았던 더 무시무시한 관습은 어떻게 되나? 그래서 나는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다 : 초라한 앨범보다는 화려한 싱글이 낫다 ; 앨범은 빌려듣더라도 싱글은 사서 듣자 ; Buy or Die! 990309 * <뉴 미디어 저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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