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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지 해리슨: Give Me Love, Give Me Peace on Earth

작년 11월 29일 비틀스의 전(前) 멤버 조지 해리슨이 암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12월 8일은 존 레넌의 21주기(週忌)다. 비틀스가 한 시대를 풍미한 존재인만큼 비틀스 멤버들의 죽음이라면 '한 시대의 종언'으로 다가올 것이다. 조지 해리슨의 죽음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기에 존 레넌의 죽음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존 레넌의 죽음이 한 시대의 종언을 상징적으로 알려주었다면 조지 해리슨의 죽음은 이제 그 시대가 '정말로'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점을 알려주는 것만 같다.   

불행히도 나는 '조지 해리슨의 음악세계'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지 못하다. 이제 와서 자료를 뒤져 보았자 그것도 우스운 일이다. 심하게 말하면 물론 '비틀스의 팬'으로서 비틀스의 한 명이었던 사람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그에 대한 관심을 보낸 것이 전부인 것 같다. 비틀스 시절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Here Comes the Sun", "Something" 등의 '불후의 명곡'들은 물론 알고 있고, "Taxman"이나 "Within You Without You"같이 숨겨진 명곡들도 가끔 듣지만 이것들은 '비틀스의 음악'이지 '조지 해리슨의 음악'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비틀스가 해산한 뒤 그의 솔로 활동에 대해서는, 비틀스 시절 만들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발표하지 못한 곡들을 모아 무려 세장짜리 LP로 [All Things Must Pass]를 발표했다거나 1971년 밥 딜런(Bob Dylan), 에릭 클랩턴(Eric Clapton), 라비 샹카(Ravi Shankar) 등과 함께 대규모 자선공연의 원조격이 되는 [Concert for Bangladesh]를 조직했다는 정도 외에는 상세히 아는 게 없다. 솔로 시기 최고의 히트곡인 "My Sweet Lord"가 치폰스(Chiffons)의 1962년 히트곡인 "He's So Fine"의 표절로 판명났다는 사실을 듣고 찜찜해 했던 기억도 있다. 1981년 한국에서도 라디오 전파를 탔던 "All Those Years Ago"라는 곡도 존 레넌의 사망과 연관된 '사연'이 없었더라면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1988년에 밥 딜런, 톰 페티(Tom Petty), 제프 린(Jeff Lynne), 로이 오비슨(Roy Orbison) 등과 함께 결성한 트래블링 윌베리스(Traveling Wilburys)라는 프로젝트도 전성기를 지낸 인물들의 후일담같아서 음반을 구매했지만 몇 번 들어보고는 다시 꺼내보지 않았다.

망자에 대해 불경스러운 '험담'만 늘어놓은 것만 같다. 요지는 그게 아니다. 이런 평가는 조지 해리슨에 대한 나의 무관심은 밴드가 아니라 '가수'에만 주목하는 한국인의 일반적 관습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조지 해리슨은 비틀스의 '리드 기타리스트'였다. 당시의 리드 기타가 후대의 록 밴드처럼 전면에 나서서 설치는 존재는 아니었지만 그의 기타 연주는 센스있고 맛깔스러운 것이었다. 만약 조지 해리슨이 존 레넌이나 폴 매카트니처럼 밴드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설쳤다면 1967년 이후 비틀스의 걸작들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틀스가 히피 반문화의 아이콘(icon)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도 조지 해리슨은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미쳤다. 주지하듯이 그는 인도광(狂)이었고 라비 샹카(Ravi Shankar)로부터 시타르(sitar) 연주를 사사받고,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Maharish Mahesi Yogi)의 수도원에 비틀스의 멤버를 대동하고 가는 등 동양 신비주의에 심취했다. 그게 '서양인의 이국 취향'에 지나지 않는지 아니면 심원한 무언가가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후대의 몫일 것이다. 단지 이 모든 것들이 그의 노래 제목처럼 "Give Me Love (Give Me Peace on Earth)"라는 소망의 발로였던 것은 분명하다. (부끄러운 일이겠지만, 나는 이 곡조차 1997년 브라질의 디바 마리자 몽치(Marisa Monte)가 커버(리메이크)한 곡을 듣고 나서 뒤늦게 LP들을 뒤져서 원곡을 찾아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한 명의 비틀(Beatle)을 떠나보내는 것은 그래서 이런 질문으로 귀결된다. 도대체 1960년대 서양 사회에서 있었던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일까. 그건 히피즘의 이상주의가 시간과 국경을 초월하는 영향력을 갖기 때문일까 아니면 영미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까. 새로운 세기가 개막된 지 시간이 꽤 지났어도 아직도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내게 사랑을, 지구 위에 평화를 달라"는 순박하기 그지없는 요구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대는 이제는 아련하기만 하다. 그래서 비틀스에 대한 헌정의 느낌이 간절해지는 순간이 다가올수록 '불행한' 감정이 동시에 엄습한다. 그 시대가 점차 낯설어지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그 곳이 여전히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1960년대라는 시기에 극동의 변방에서 소년기를 보냈을 뿐인 내가 도대체 왜 이렇게 심난해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뜻이다. 하긴 최근 '러시아의 록 음악'에 관한 책을 읽으니 그곳에도 1970년대부터 "나는 그때 비틀스 말고는 모든 것이 억압이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말에서는 무언가 슬픔이 느껴지고 그의 삶이 순탄치 않았으리라는 것도 짐작된다(실제로 그랬다). 하긴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든 이런 불행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없었으랴...

 * 곧 창간될 <야후 매니아>에 '신현준의 불행한 음악듣기'라는 코너로 게재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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