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Review:


해변의 음악

언제부턴가 '봄'이 사라지면서 5월만 되면 '어디 시원한 데 없을까'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럴 때 해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비치 뮤직(beach music)'이라도 먼저 들어보자(주의: 외국인한테는 발음 주의할 것. 단모음으로 발음하면 'Bitch'로 들을 테니까).

아무래도 해변을 대중음악의 주제로 삼은 원조는 이름부터가 '해변의 소년들'인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다. "Surfin' U.S.A."는 '월드와이드' 히트곡이 되어 여름만 되면 라디오에 한두번은 꼭 나오는 곡이다.  불행히도 척 베리의 "Sweet Little Sixteen"을 표절한 것으로 판정되어 저작권 수입은 없지만. 하지만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본인들의 항변은 "Fun, Fun, Fun"같은 곡에서의 작곡 솜씨로 상쇄된다. 또 "Good Vibrations"처럼 의외로 음향의 복잡한 실험을 단행한 곡도 있다. 비치 보이스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밴드들의 곡은 대부분 쾌활하고 명랑해서 해변의 정취에 잘 어울린다. 영화 삽입곡으로 한국에서 뒤늦게 히트한 서처스(The Searchers)의 "Love Portion No.9"같은 곡들은 서프 음악의 전매특허인 '징지리 징징'하는 파도 소리같은 기타 사운드가 들어 있어서 시원하다. 사운드트랙 음반 중에서는 [펄프 픽션]에 서프 사운드가 들어간 곡이 많다. 단, 나머지 곡들은 더 더울 수 있으니 조심.

1970년대 중반 해변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스코틀랜드에서 '스코티시 서프 뮤직'이란 것도 탄생했다. 대표 그룹인 베이 시티 롤러스(Bay City Rollers)같은 그룹은 이제는 기억이 아스라하지만 한때 소녀 팬들을 까무러치게 했던 아이돌 그룹이었다. 특히 "Summer Love Senstion". 그러고 보면 비취 뮤직은 아니지만 '틴 아이돌 팝'에는 상큼한 해변의 정취가 많이 묻어난다. 내친 김에 도니 오스몬드, 데이비드 캐시디, 토미 페이지, 레이프 개릿 등의 솔로 가수들의 음반을 집어들고 사춘기 시절의 낭만에 젖어보는 것도 괜찮다. 해변에서 옷을 벗어던지고 노는 것 자체가 '어린애같은' 행동 아니던가.  

그렇긴 해도 해변에 찾아가는 게 어디 백인 미소년들만인가? 같은 백인이긴 해도 날라리같은 애들도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캘리포니아 출신의 펑크 밴드들이 대표적이다. 펑크에 대한 소문을 듣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신나는 펑크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린 데이(Green Day)나 스매쉬 마우스(Smash Mouth) 등은 정규 음반을 구입해도 별로 아깝지 않은 밴드고, 고만고만한 펑크 밴드들의 곡을 모은 [Punk-O-Rama]라는 음반이 있었는데 재고가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최근 펑크 밴드들 음악에 빠른 템포로 쿵짝쿵짝거리는 리듬이 들어있는데 이를 스카(ska) 라고 부른다. 작년 여름에 조금 유행한 김종서의 [실연]이 스카 리듬을 사용한 곡인데, 원산지는 카리브해의 섬나라인 자메이카다. 스카의 사촌뻘인 레게(reggae)란 것도 있고, 역시 작년에 한영애가 부른 "따라가고 싶어"가 레게 리듬을 '제대로' 쓴 케이스다. 하지만 더운 날씨에 '제대로'에 신경 쓸 겨를 없으면 룰라나 김건모의 흘러간 곡들도 괜찮다. 레게는 심오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음악임과 동시에 야자수, 백사장, 비키니 입은 반라(半裸)의 여인이 떠오르는 낭만적인 음악이기도 하니까. 이렇듯 스카와 레게는 이제 자메이카의 국민음악이 아니라 국제적 음악이 되었으므로 에이스 오브 베이스(Ace of Base),  빅 마운틴(Big Mountain) 등의 곡이 들어있는 [Total Reggae](Polygram, 1994)같은 모음집을 구해도 좋다. 주의할 점은 고속버스 휴게소같은 데서 "100%" "Super Hit"의 등의 문구가 붙어있는 걸 사면 대부분은 오리지널이 아니라 '모창'한 것들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최근 한창 뜨고 있는 라틴 음악도 해변에 어울린다. 가사가 스페인어인 경우가 많으므로 영미 팝에 비해서 보다 이국적인 분위기도 선사한다. 리키 마틴(Rick Martin)이나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는 이제 인터내셔널 스타이므로 웬만한 취향에는 다 맞는다. 라틴 음악의 세계로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고 싶으면 대형 음반매장에 가서 룸바(rumba: 쿠바), 살사(salsa: 쿠바와 푸에르토 리코), 메렝게(merengue: 도미니카), 쿰비아(cumbia: 콜롬비아), 삼바(samba: 브라질) 등을 모아놓은 수입음반들을 잘 골라볼 수도 있다. 이 기회에 세계 지도도 오랜만에 한번 펼쳐보고 지리 공부도 하고. 이 음악들은 요즘 한창 뜨는 '댄스 스포츠' 교본으로도 유용하니 휴가 끝나도 잘 챙겨둘 필요가 있다. 아차, "Macarena"도 '한철 장사' 시작할 지도 모른다.  

중고생 딸이나 아들과 사이좋게 지내려면 쿨의 "해변의 여인"이나 클론의 "쿵따리 샤바라" 등 '써머 댄스가요의 '고전'들을 모아놓은 테이프라도 하나 사두길. 불법복제품이 대부분이라는 게 문제지만. 그렇다고 키 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나 윤형주의 "저별은 나의 별"같은 곡만 틀어주면 '왕썰렁'해지니까 주의.  

* <더 스타일>에 게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