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Review:

  • 해바라기, [해바라기 2000] 

나이든 뮤지션은 무엇을 할 수 있(없)었는가...

해바라기, [해바라기 2000], 해바라기 프로덕션/신나라, 2000

나만 그런 건지, 다들 그런 건지 세월은 참 무심히도 빨리 지나간다. '웬 세월타령?'이냐고 묻는다면, 시인과 촌장이나 해바라기같이 따져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절에 활동하던 주인공들의 새 음반이 각각 '13년만의', '8년만의'라는 수식어를 달고 나오기 때문이다. 시인과 촌장의 [The Bridge]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평들이 있었으므로, 이 지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소리소문 없이 나온 해바라기의 음반에 주목하자. 음반 타이틀은 썰렁하게도 [해바라기 2000]이다. 하긴 1989년부터 해바라기는 '몇 집' 대신 '연도수'를 붙이기 시작했으니까.

언제나 그랬듯 해바라기는 '이주호 플러스 원'이다. 아마도 실수인 듯한데, 앨범만 보고는 새 멤버의 얼굴은 알 수 있지만 이름은 알 수 없다. 크레딧에 이주호 다음에 써 있는 강성운이라는 이름을 새 멤버로 지레짐작할 뿐이다. 앨범이 나오기 전 해바라기는 라디오와 TV의 공개방송에서 출연하여 "그런 날은 없어"라는 신곡을 부르곤 했다. 역시 이 앨범의 백미다. 기타 줄의 해머링(hammering)으로 만들어내는 리듬감이 술취한 듯이 휘청거리며 부르는 보컬과 어우러진 곡이다. 노래 뒷부분에 나오는 (통통거리는) 콩가 드럼 소리와 (불어제끼는) 색서폰 소리도 베테랑 뮤지션의 '새로운 시도'로 반길 만하다.

물론 "그런 날은 없어"를 제외하고는 '그런 곡은 없다'. 나머지는 "모두가 사랑이에요", "이젠 사랑할 수 있어요", "사랑으로"로 이어지는(그리고는 끊어진) 해바라기의 전통을 잇고 있다. 느리고 서정적인 '통기타 발라드' 말이다. "그대만의 향기"나 "애인"같은 곡은 2년전 국민가수로 부상한 김모 가수마저 연상시킨다. 물론 기분전환을 위해 보사노바의 나른한 리듬에 블루 노트의 알딸딸한 느낌이 섞인 "널 위해"나 모처럼 업템포의 경쾌한 곡 "지나가는 바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미사리나 장흥에 위치한 전원 카페에서 부르면 어울릴 곡이다. 게다가 첫 트랙인 "그대만의 향기"나 마지막 트랙인 "울고 싶으면"은 마치 노래방에 와있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좋다/나쁘다'는 평을 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친숙하고 편안하지만 그 이상의 느낌은 없다'는 뜻이다.

앨범 발매 전에 "그런 날은 없어"를 라이브로 듣고 이 앨범을 기대해서 샀다면 '속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중년의 음악인이 발표한 음반에서 새로움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이다. '계속 현역으로 활동한다는 게 중요하다', '보다 많은 팬을 위한 배려겠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게 나을 듯하다. 하지만 최근 영화 [섈 위 댄스]를 본 탓일까, 중년이란 특별히 외로울 것 없으면서도 허전한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그래서인지 "너와 내가 있어 우리가 있고 뜨거운 가슴에 힘겹고 어려운 그런 날은 없어"("그런 날은 없어")라는 가사는 매우 낙관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는 쓸쓸하게, 때로는 절박하게 들려온다. 20000530

* [주간조선]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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