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Review:

  • 한국 음악인이 국제화되는 두 가지 방법
  • 정상적이지 않은 경로로 한국을 찾아온 이박사와 이상은의 음반   

서태지 컴백에 관한 논의가 아직 식지는 않았으므로 한 마디 더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음반 제작의 '시스템'에 관한 것이다. 서태지의 이번 음반은 분명히 '국내 음반'이다. 대형 매장에 가면 '가요 코너'에 진열되어 있고, 제작이나 배급도 한국에서 사업 등록을 한 곳이 맡았으므로 '국내 음반'이 분명하다. 음반의 공급뿐만 아니라 음반에 대한 수요도 마찬가지다. 수요자는 한국인이 대부분이고 적어도 아직은 외국인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이번 서태지의 앨범에 수록된 사운드는 대다수 한국인들에게는 낯설다. 심지어 서태지의 팬들에게조차 낯선 것이었다. 실제로 서태지는 한 TV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음악은 국내 음악이 아니라 세계적인 음악"이라고 말했고 "음악은 세계 공통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진의에 부합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게 단지 '미국에서 음반 작업을 했다'는 사실 이상의 의미인 것은 분명하다. 한국에서 제작했다면 이런 음반은 나오기 힘들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음반에 실린 '컨텐츠'는 국내 음악이 아니지만, 음반은 국내 음반인 셈이다. 간단히 말하면 서태지의 음반이 '외국 음반'이 아닌 이유는 국내의 대중음악 시스템 하에서 제작되고 배급되기 때문이다. 우리한테 익숙한 '가요'와 '팝'의 구분이란 음악적 장르의 구분이기 이전에 나라별 대중음악 시스템의 차이에 따른 구분이다.

이런 복잡한 말을 던진 것은 서태지의 음반보다 '국적'이 더욱 모호한 음반 두 개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하나는 이박사의 음반이고 다른 하나는 이상은의 음반이다. 먼저 이박사가 아니라 E-Pak-sa이고, 이상은 아니라 리체(Lee-Tzschae)이다. 이박사의 음반은 다국적 음반기업 소니의 한국 지사인 '소니뮤직 엔터테인먼트 코리아'에서 제작·배급되었다. 이박사는 국내에서의 홀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소니의 산하의 큔 소니(Kioon Sony)를 통해 여러 장의 음반을 발매한 바 있고 나름의 호평을 들은 바 있다. 지금 나오는 음반은 일본에서의 활동의 성과가 국내에 역수입되는 것에 가깝다.

이상은의 음반이 한국의 매장에 진열되기까지의 사연은 더 복잡하다. 본래 이 음반은 1997년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서 발매된 것이다. 그 음반이 3년 가까이 지난 지금 EMI의 한국지사에서 라이센스로 발매된 것이다. 이상은이 처음 계약을 체결한 것은 버진(Virgin) 이었고, 버진이 영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음반기업 EMI에 의해 인수되었으므로 그녀의 음반에는 EMI라는 레이블이 붙어 있다. 이상은도 '일본'과 관련이 없지 않은데 무엇보다도 한국을 떠난 후 그녀의 활동이 일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음반에 대한 수요도 '일본 시장'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작년 그녀는 EMI의 일본과의 합작회사인 도시바-EMI의 레이블로 새 음반을 발표했고, 지금 소개하는 음반도 마찬가지다.

음악의 '국적'이란 가수나 연주인의 국적, 레코드회사의 국적, 주요 활동무대, 가사에 사용된 언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오늘 언급한 예들은 몇몇 특이한 예이지만 한국인이 주체가 된 음악의 국적이 '모호해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작 음악은 어떠한가? 이박사는 올해 '청년문화의 새로운 현상'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덕택으로 최근 모 인터넷 회사의 광고모델이 되어 TV 스크린에도 자주 모습을 비추고 있다). 그의 음악은 이른바 '테크노 뽕짝'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관광버스나 유원지의 유람선에 가면 쉽게 들을 수 있는 바로 그 음악이다. 시종일관 쿵짝쿵짝거리는 드럼 비트와 베이스 라인을 기본으로 '전자 올갠'의 멜로디와 효과음이 더해지고 추임새와 노래와 사설을 비롯한 이박사의 목소리가 들어가 있다. 우리가 고속버스 휴게소나 '길보드'에서 테이프로나 구할 수 있던 그런 음악이다. '스페이스 환타지'라는 제목은 그저 웃자고 붙여본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몽롱한 감정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몽롱함은 서양의 음악 평단에서 말하는 '싸이키델릭한 감정'과는 거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보다는 어디 놀러 가서 술 몇 잔 걸친 뒤 해질 무렵 느껴지는 질펀함과 노곤함이 뒤섞인 몽롱한 감정이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정말 독창적인 것은 이박사의 발성이다. 가요, 민요, 팝송이 '메들리'로 이어지는  이박사의 목소리는 음반 전체에 일관성을 부여한다. '와이엠씨에이', '하이스쿨 로큰롤'같은 '영어'를 발음할 때 그 효과는 극대화된다. 그 목소리는 한국에서 '못배운' 사람 특유의 목소리다. 이는 그냥 흥겹게 웃고 넘어가자는 기능을 가짐과 동시에 이것 역시 '문화'임을 존중해 달라는 절박한 목소리기도 하다. 그건 이렇게 하지 않으면 '대중음악 판'에도 끼지 못한다는 절박함이다. 그가 표현하는  '한국적인 것'은 고상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숨기고 싶거나 (과거에 가지고 있던 것이라면) 잊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이박사의 음악이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서 '호평'을 받았던 이유가 바로 이 점 때문이라면 생각을 조금 바꿔야 할 것이다. 외국의 예를 들어서 섭섭하지만 힙합(hip-hop)이나 레게(reggae)처럼 밑바닥의 삶을 여과없이 표현한 음악이 국제적 음악이 되고 이제는 '예술'이 되어 존중받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이건 예술적 표현의 문제이기 이전에, 또한 음악 비즈니스의 문제이기 이전에 하나의 생존 양식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상은 아니 리채의 음악이 국제화되는 방식은 이박사와는 다르다. 이상은이 1988년 "담다디"라는 곡으로 데뷔하여 세 장의 앨범을 통해 '아이돌 스타'가 되고 그 뒤 홀연히 유학을 떠나 간간이 음반을 발표한다는 소식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말하자면 그녀는 '국내 연예계의 스타'가 되기 보다는 '국경을 넘나드는 아티스트'가 되길 원했다. 공식적으로 8집이 되는 이 앨범에서 두 곡(타이틀곡 "Actually Finally과 "Release Your Mind")은 런던에서 프로듀서 리처드 나일스(Richard Niles)를 비롯한 영국의 연주인들과 함께 제작했고, 나머지 트랙들은 7집 <공무도하가> 이후 그녀와 호흡을 맞춰 온 다케다 하지무를 중심으로 토오쿄오에서 제작되었다.  

가사가 모두 영어로 되어 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음악은 그녀가 한국에서 발매한 음반들보다도 친숙한 편이다. 타이틀곡은 '팝송'으로 손색이 없고, 나머지 곡들도 7집과 9집에 비하면 사운드와 편곡이 듣기 편하다. 또한 12개의 트랙 가운데 절반인 6곡은 7집에 이미 수록되었던 것을 영어로 개사하고 다시 녹음한 것들이다(예를 들어 "Lonely Loony Lounge"는 "외롭고 웃긴 가게"이고, "House"는 "집"이다). '선적(禪的)이고 영적(靈的)인 동양의 월드 뮤직'같은 이미지보다는 (영미 중심의) 팝의 규준을 수용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이상은을 아티스트로 존중하는 사람에게는 불만스러울 수도 있지만, 본인 표현대로 '역으로 신선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정갈한 연주와 편곡 위에 얹힌 그녀의 목소리와 멜로디는 '다른 나라의 음악인'이 만든 것으로는 들리지 않는다. 갑자기 우울한 느낌이 밀려오는데, 왠지 한국의 제작 시스템에서는 이런 색깔을 가진 음반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추측 때문이다.

국내 댄스 그룹 몇몇이 중국에서 '한류'란 선풍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있었다. 처음에는 "한국에 이런 음악이 있느냐"는 놀라움이 이제 일각에서는 "한국에는 이런 음악밖에 없느냐"는 말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한류'라고 해도 한가지만 있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실제로 '한국적인 것'이란 얼마나 다양한가. 더구나 이 국경을 넘나들어 상품과 자본과 문화가 순환하는 시대에. 그렇지만 한국 국경을 벗어나면 한국인이 만든 음악은 모두 '월드 뮤직'이 된다. 실제로 뉴욕이나 런던의 대형 음반매장에는 김소희의 춘향가와 임창정의 히트 앨범이 같은 코너에 진열되어 있다. '월드 뮤직'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음반이 별로 없다는 것도 문제다(임창정의 음반이 수출된 것은 그가 이전에 소니와 전속계약을 맺었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그렇지만 월드 뮤직을 벗어나서 '국제적 대중음악'이 되는 길이 필요하다면, 이건 누가 어떻게 제시해야 할까. '개인'이 하기에는 힘든 일일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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