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Review:

  • V.A., [2000 Latin Grammy Nominee]
  • V.A., [Shall We Latin?]    

'라틴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을 달고 '에, 그건 말이죠'라고 설명하는 일은 이제 유행이 지난 듯합니다. '그거 소니 등 메이저 음반사의 전략에 의해 잠시 유행하고 끝날 거야'라고 말한 사람은 반성할 시점이 왔습니다(진모형, 실례합니다). '영미 팝에 식상한...'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송기철씨, 미안합니다). 어쨌든 봉고, 콩가, 팀발레 등의 퍼커션을 사용한 복잡무변한 리듬이 넘실거리고, 관악기와 색서폰이 한껏 울어제끼고, 목에 핏대 세우고 혀를 또르르 굴리는 노래가 어우러지면 아직도 화끈합니다. 과로와 스트레스에 쌓여 '고개 숙인 남자'가 되어버린 한국 남자가 들으면 성욕이 팍팍 돕니다. 라틴 음악이란 대중음악판 비아그라인 셈이죠(이런 '남근중심주의'러니...쯧쯧).

라틴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무엇인지 몰라도 됩니다. 이제 저 단어는 '혼성', '잡종', '멀티'의 상징이 되어버렸으니까 말입니다. 잘난 척 하고 말한다면 힙합같은 '흑인' 음악, 아니 아프리칸-아메리칸 음악이 다이애스포라(diaspora)의 음악이라면, 라틴 음악은 다이애스포라의 다이애스포라인 셈입니다. 다이애스포라가 뭐냐구요? 이산가족 할 때 '이산'과 비스무리하다고 생각하시면 대충 맞습니다. 그러니까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살던 사람들과 아프리카에 살던 사람들이 중남미 대륙과 카리브해의 섬들로 이주한 게 1차 이산이라면, 이 사람들이 다시 미국 땅으로 건너간 게 2차 이산(diaspora)인 셈입니다.

500권 팔릴까 말까한 책에서나 할 이야기는 그만 집어치우죠. 어쨌든 아프리카의 리듬, 유럽의 멜로디, 인디오 음악의 영향이 뒤섞여 만들어진 잡종 음악은 흥미롭습니다. 게다가 라틴 '팝'이라면 전세계 대중음악에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앵글로(anglo)의 음악적 어법도 수용합니다. 한번 들어나 보자구요? 마침 '라틴 음악 베스트' 식의 따끈따근한 모음집 두 개가 나왔습니다. "Now"나 "Max"같은 다국적 직배사가 안면몰수하고 만들어내는 궁여지책 시리즈냐구요? 아닙니다. [2000 Latin Grammy Nominee]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그래미상의 라틴 부문이 '아니라' 별도의 '라틴 그래미상' 지명곡입니다(올해가 첫 회였습니다). 루벤 블라데스와 마크 앤써니같은 대가급 살사가수(이른바 살세로salsero)의 곡으로 시작하고, 그 다음은 허리와 히프가 팍팍 돌아가는 세계적 섹스 심볼 '리끼 마르띤'의 메가히트곡 "Livin' La Vida Loca"가 나옵니다. 지겹다구요? 이건 스페인어 버전이라 색다릅니다. 하지만 산타나는 '바로 그 곡'이라서 조금 지겹군요. 제니퍼 로페즈의 이름이 없어서 서운하다면 글로리아 에스테판으로 만족하십시오. 제니퍼 로페즈가 백지영이라면 글로리아 에스테판은 김완선쯤 되려나요. 아, 라틴 팝의 박지윤쯤 되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도 참여했군요. 섹시한 것으로는 이들에 뒤지지 않는 '콜롬비아의 마돈나'(이건 '뻥'입니다)인 샤키라(Shakira)도 있습니다. 왜 자꾸 섹스 타령이냐구요? 변명하자면,  노래 더럽게 못하고 춤도 못 추는 한국 여가수들 보면서 성욕 뚝뚝 떨어지는 걸 참느니 이게 낫다고 생각합니다(김추자는 조속히 컴백하라!).

뒷부분에는 메르체데스 소사의 노래가 들어있군요. 영화 [정사]에 나오는 센티멘틀 발라드 부른 아줌마 정도로 생각하시면 섭섭합니다. 성녀(性女)가 아니라 성녀(聖女)입니다. 한때 정치적 망명을 하는 등 아르헨티나의 누에바 칸시온 운동을 이끌었던 그분 맞습니다. 발장난치면서 음악 듣다가 갑자기 숙연해지는군요. '노래운동권'에 몸담으셨던 분이라면 '소사만 있고 하라(Jara)는 없냐?'고 물어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 여기에는 없지만 정보 있습니다. 최근에 발간된 빅토르 하라의 전기를 구매하면 CD 하나 들어있습니다. 물론 공짜입니다.  

모음집 하나 더 있습니다. 제목이 [Shall We Latin?]이군요. 제목이 표절이라구요? 표절이 아니라 패러디라고 합니다. 문법에 안 맞는다구요? 언어감각이 꽝이시군요. 제니퍼 로페즈가 여기 있고, 존 세카다도 아직 살아 있었네요. '메렝게의 제왕' 엘비스 크레스포의 이름은 국내에 출시된 음반에서는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메렝게가 뭐냐구요? 살사랑 비스무리한데 리듬이 '원-투-원-투'하는 정박 패턴입니다. 시작은 발라드틱(?)하지만 방심하면 안됩니다. 이건 그렇지만, '무늬만 라틴'이고 댄스나 발라드인 곡이 여러 개 있다구요? '애버리지 코리안 취향'을 고려하여 선곡한 모양입니다.  

이쯤 되서 [그래미 노미니 2000]의 부클렛 한가운데를 들여다 볼까요. 그래미상 수상 라틴 부문들을 다시 또 분류해 놓았군요.  라틴 팝, 라틴 록, 트로피컬, 리저널, 트래디셔널, 재즈, 브라질리언 등등입니다. 트로피컬이란 살사나 메렝게같이 카리브해 섬나라들의 음악이고, 리저널이란 멕시컨 혹은 치카노 음악입니다. 트래디셔널이란 전통음악이겠구요, 라틴 재즈도 장난 아니죠. 브라질은 그 자체 거대한 세계이고, 언어도 포르투갈어를 쓰니까 따로 분류되어 있네요. 라틴 음악의 풍성함이 장난 아니죠. 한국은 모든 음악이 '가요'고 '뽕'인데 말입니다. 아쉬운 점은 고(故) 셀레나의 노래가 없다는 점, 그리고 라틴 록(정확히 말하면 '록 앙 에스빠뇰르 rock en espanol') 계열이 '왕따'당한 점이네요.  그건 별로 아쉽지 않은데, 왜 이렇게 스산한 늦가을에 냈냐구요? 이열치한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없나요?

 

* <씨네 21>에 게재됨.

 

앞화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