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Review:


  • Alisa, [Blok Ada(Blockade)], Melodya/Moroz, 1987/1994

봉쇄에 맞서는 '영웅적' 출사표

닥터 꼬스쨔(Dr. Kostya)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알리사(Alisa)의 프론트맨 꼰스딴찐 낀체프(Konstantin Kinchev)는 이미 고인이 된 빅또르와 더불어 '컬트'라는 단어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 앨범은 그를 컬트의 지위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전작 [Energia(Energy)](1985)가 클럽 지하실의 음습한 분위기를 풍겼다면 이 앨범은 '송가 록(anthem rock)'의 결연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알리사의 팬'이 아니라면 크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초기에 꼬스쨔와 함께 밴드의 두 중심이었던 스뱌또슬라프 자졔리(Svyatoclav Zaderiy)가 1986년 밴드를 떠나면서, 전권을 장악(?)한 낀체프의 구상이 제대로 구현된 작품이라는 의미도 있다. 또한 1987년 레코딩을 끝내고 '카세트 앨범'으로 발표되었지만 1988년 멜로지야에서 재발매되고 1994년 모로즈 레코드에서 CD로 재발매되었다는 복잡한 사정도 언급해 둔다(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는 1980년대 러시아의 언더그라운드 밴드에게 공통된 사정이다).

전작 [Energia]가 키보드, 플루트, 첼로, 바이올린, 섹서폰, 트럼펫까지 망라하는 구성으로 이루어졌다면, [Blokada]는 잠시 밴드를 떠났던 안드레이 샤딸린(Andrei Shatalin)이 리드 기타로 복귀하고 낀체프는 보컬에만 전념한 덕택에 직선적이고 공격적인 하드 록 사운드를 구사하고 있다. 메시지 면에서 비교한다면 [Energia]가 소비에트의 소외된 젊은 세대들의 상실감과 공허를 표현했다면, [Blokada]는 단기간에 광범위한 세력을 형성해 준 지지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인 의식의 변화와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어떤 표현에 의하면 '간이 배 밖에 나온 듯한 수준의 가사'다.

행진곡 풍인 "Vremya Menyat' Imena(Time Changes Names)"의 "구더기와 두꺼비 같은 것들이 지배하는 시대를 청산하기 위해 우리가 노래를 부른다"는 선언적 내용으로 앨범은 시작된다. 이어지는 "Kompromis (Compromise)"는 갇혀 있고 얼어붙은 우리의 존재를 위한 협상이란 있을 수 없다고 외치는 거친 하드 록이다. 전작에 비해 꼬스쨔의 '가창력'이 신장되었음도 느낄 수 있다. 다음 곡 "Solntse Vstaet(Sun Rise)"에서는 "태양이 떠오르고 소중히 지켜왔던 우리의 피와 불꽃을 사를 시기가 도래했다"는 결연한 선언이 등장하고, "Ey, Tiy, Tam, Na Tom Beregu(Hey, You, There, At The Riverside)"는 소비에트 사회의 기득권층에 대한 조롱과 멸시를 퍼붓고 있고, 여기에는 사명감을 잃은 다른 록 밴드에 대한 공격도 담고 있는 듯하다. 반면 "Veter Peremen(Wind Of Change)"에서 긴장감 있게 꽉 짜인 듯한 연주로 "나를 믿는다면 나와 함께 가자"는 후렴구를 나직이 반복하며 차분하게 '동참'을 권유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앨범의 백미는 "Krasnoe Na Chernom(Red In Black)"이다. 마치 흑마술사 혹은 어둠의 구원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이 곡은 이후 알리사의 콘서트에서 막바지에 연주되는 밴드의 '이미지 송'이 되었고, 1989년에 발표한 "Tiyr-Tiyr-Tiyr(Totalitarniy rep)"와 더불어 꼬스쨔에 대한 '교조화'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곡이다(러시아 문학에 조예가 있는 사람은 "십자가에는 피가 굳지 않는다"는 불가꼬프의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따]에 등장하는 볼린(Wolin)을 연상할 것이다). 뒤의 트랙들 중에는 거친 기타 피킹이 도발적으로 전개되는 "Dvizhenie Vspyat'(다시 행동을)"도 있지만, 나머지 두 트랙 "Vozdukh(Air)"와 "Zemlya(Earth)"는 '짐 모리슨(Jim Morrison)으로부터 영향받았다'는 평이 실감날 정도로 주술적 분위기의 사운드 속에서 카리스마적 보컬의 무언가 홀린 듯한 외침이 무슨 계시처럼 들려온다.

다 듣고 나서 드는 생각은 어떤 음악이 '유행가'로 들리는가 '고전'으로 들리는가는 그 음악이 어떤 나라나 지역에서 만들어졌는가와는 무관하고, '세계시장에서의 성공' 여부와도 무관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아티스트와 청자 사이의 정치적 신념이 일치하는가 여부도 음악을 들을 때 별 상관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이 말은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꼬스쨔가 '옐친 지지자'라는 소문을 들어서 덧붙인 말일 뿐이다.
20011029


수록곡
1. Vremya Menyat' Imena (Time Changes Names)
2. Kompromis (Compromise)
3. Solntse Vstaet (Sun Rise)
4. Ey, Tiy, Tam, Na Tom Beregu (Hey, You, There, At The Riverside)
5. Veter Peremen (Wind Of Change)
6. Krasnoe Na Chernom (Red In Black)
7. Vozdukh (Air)
8. Dvizhenie Vspyat' (Action Back)
9. Zemlya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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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sa [Energia(Energy)] 리뷰

관련 사이트
Alisa 공식 사이트
http://www.alisa.ru
Alisa 비공식 사이트
http://www.inse.kiae.ru/~stivv/alisa
Alisa에 관한 바이오그래피, 디스코그래피, 음원(영어)
http://russia-in-us.com/Music/Rock/Alisa

* 웹진 [weiv]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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