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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철학의 발생과 배경

 

<1> 분석 철학의 뿌리

일반적으로 분석 철학의 근원은 19세기 말에 출간된 다음의 서적들에서부터 찾는다.

1) G. Frege, Begriffschrift, 1879.

C.S. Peirce, The Fixation of Belief, 1887.

How to Make Our Ideas Clear, 1887.

이들 책은 출간된 때는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2) B. Russell, The Principle of mathematics, 1903.

이 책의 방법론적 도구의 기본적인 내용은 이미 20년 전에 Frege에 의해서 제시된 것이다.

3) Wittgenstein, Tractatus.

이 책은 1917∼19년에 독일어로 발간되었으며 영어 번역본은 1921년에 발간되었다.

이 책은 독일어로 최초 발표되었을 때는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영어 번역본과 같이 발간되면서 철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새로운 철학하는 방법을 완결된 형태로 제시하고 있다.

○ 분석철학의 시작을 잡는 방법.

현대 철학 사조의 중요한 흐름 중의 하나인 분석 철학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다음의 두가지 입장이 지배적이다.

1) G. Frege 등에 의해서 새로운 철학하는 방식이 처음 제시되었을 때.

2) 철학적 청중의 관심의 대상으로 되었을 때.

 

<2> 현대 서양철학의 두가지 전통과 그것들의 형성에 영향을 끼친 계기들

철학사상은 그것이 나오게 된 사회문화적인 배경없이 이해하기는 힘들다. 현대 서양철학 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 말 및 20세기 초의 유럽의 지성사(사상사)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단 현대 서양철학의 두가지 전통을 먼저 알아보고 이들의 형성에 영향을 끼친 배경을 순서적으로 알아보자.

1) 현대 서양철학의 두가지 큰 흐름은 분석철학적인 전통과 해석학적인 전통이다.

여기서 분석철학적인 전통은 영미 계통의 철학 전통이고 해석학적인 전통은 현상학, 생철학, 맑스주의, 구조주의, 실존주의 등을 포괄하는 유럽 대륙에서 성행했던 철학이다. 해석학적 전통 속에 포함된 다양한 사조들에는 서로 이질적인 것이 섞여 있지만 분석 철학과 비교해 봤을 때는 이질적인 면보다는 공통적인 것이 더 많다.

이 두 전통은 내용과 방법에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공교롭게도 지리적인 면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이들은 서로 간에 대화없이 독립, 발전해 오다가 60년대부터 서로 수렴되고 만나는 부분이 많아졌다.

분석철학은 철학 사상 유례없을 정도로 배타적인 성격이 강하였지만 분석철학의 틀 안에서 다루어지지 못하는 영역, 문제들을 해석학적 전통에서 다루고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해석학적 전통을 연구하였다. 해석학적 전통 역시 마찬가지로 분석철학적 전통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2) 현대 철학의 흐름에 영향을 끼친 사회문화적 배경을 생각해 보자. 이것은 철학 외적인 요인과 철학 내적인 요인으로 구분해서 생각할 수 있다.

- 자연과학의 발달 : 첫 번째 요인이다. 19세기 후반 서구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이며 산업 혁명 이후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에 그 영향을 미쳤다. 이것이 철학 외적인 영향요인이다.

- 헤겔 철학 및 새로운 논리학의 발달 : 철학 내적인 영향요인이다.

> 헤겔 철학이 가장 성장했을 때가 1840∼50년이었는데 헤겔의 국가철학은 독일 문화권의 모든 지역에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러한 헤겔 철학에 대해서 19세기 말에 여러 가지 형태의 반발이 생겨났으며 그것이 현대의 철학 사조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 한편 논리학은 최초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집대성 된 후에 2000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이 전승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논리학이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완성된 학문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1850년대 이후 놀라운 속도로 논리학이 발전하기 시작하였으며 이것이 Frege에 의해서 집대성되었다. 그 책이 『Begriffschrift』이다. 새로운 논리학이 나타남으로 해서 전에는 논리학으로 다룰 수 없던 영역이 신 논리학에 의해서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서 과거의 미숙한 논리학에 기초한 철학들이 부분적으로 불완전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신 논리학의 도구를 사용해서 새로운 철학들이 출현하고 발전하게 되었다.

○ 세가지 요인들에 대한 추가적 설명

① 자연과학의 위력 : 자연과학이 발전하고 그 결과가 성공적임에 따라서 체계적인 학문으로서의 철학의 존립기반이 위협받게 되었다. 즉 "철학이 체계적인 학문으로서 존립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반성의 계기가 된 것이다.

② 헤겔 철학의 영향 : 헤겔 철학과 헤겔 류의 형이상학이 너무 형이상학적인 극단과 방만으로 치달았다는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철학에 자기 혁신을 하고자 한다면 헤겔적인 극단과 방만을 피해야겠다고 철학자들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철학의 혁신의 방향을 제시한다.

③ 논리학의 영향 : 헤겔 철학의 영향으로 얻은 혁신의 방향과 더불어 철학의 자기 혁신의 방법적 도구가 된 것이 논리학이다.

⇒ 이제 이 세가지 영향들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① 자연과학의 영향

르네상스 이후의 유럽에서는 자연과학이 현저히 발전하여 물리적인 세게에 대한 정교하고 방대한 지식이 축적되었다. 그 영향은 17C, 18C 이후 산업 혁명을 통해서 자연과학자 뿐 아니라 일반 대중의 생활에도 미쳤다. 따라서 자연과학적인 방법은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졌으며 철학에도 그 영향이 심각하게 주어졌다.

- 기존의 철학관 : 서양의 전통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부터 철학과 과학이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학문이라는 철학의 자기 이해는 중세까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근세 이후의 자연 과학의 눈부신 발전은 새로운 지식을 축적하고 철학과 과학이 분리되어야 겠다는 생각의 원인이 되었다. 자연과학의 탐구방법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 철학의 탐구방법과 다르고 지식과 내용 역시 마찬가지로 달랐다.

- 뉴튼 : 뉴튼은 학문을 natural philosophy와 moral philosophy로 구분하고 자연과학자가 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지식을 탐구하는 것이며 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을 기계론적, 인과적으로 관찰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많은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서 Nature와 Mind를 구분하기 시작하였고 전통적인 철학의 탐구대상은 Mind에 국한되었다. 이에 따라서 과거의 포괄적인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mind를 탐구하는 것으로 축소되었다.

- 데카르트 이후 : 데카르트 이후의 근세철학을 인식론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 기인한다. 인식론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과학의 탐구 방법과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 방법이 내성 심리학(introspective psychology)이다. 이 방법에 따라서 인간의 마음이 무엇이고, 마음이 어떻게 작용해서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인가가 철학의 대상이 되었다.

- 19C 이후 : 19C에 들어오면서 철학의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되던 마음의 탐구가 자연과학적 방법에 의해서 탐구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 시작하였다. 19C의 심리학자 Lipps, Wundt, Sidgwick, Sinnenpsychologie, 혹은 Experimental psychology 등은 인간 정신의 작용을 자연과학처럼 인과적, 기계저으로 불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그 극단적인 예가 19C 말 파블로프의 조건 반사였다.

- 철학의 위기와 대처 방안 : 그러면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의 존재 이유가 과연 있는가? 이와 같은 회의가 생겨나면서 철학의 정체성이 위기에 봉착하였다.(identity crisis) 이에 대한 대처 방안은 크게 두가지로 나타났다. i> 자연과학의 방법과 지식을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인 실증주의(positivism) ii> 자연과학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적어도 자연과학적 지식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지식의 전부가아니라고 자연과학을 축소해서 보려는 입장(해석학Hermeneutics) 이제 이 각각의 입장을 자세히 살펴 보자.

i> 실증주의적 입장 : J.S. Mill, A Comte가 이러한 입장에 속한다.

이들은 인간과 인간이 구성하는 사회에 대한 이해도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런 식으로만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은 근세를 지배하던 이원론을 깨고 방법론적 일원론을 주장한 것이다.

ii> 해석학적 입장 : 이들은 이분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두 영역 사이의 본질적 불연속성을 계속해서 주장하였다. 이들에 따르면 자연과학적 방법은 인간을 탐구하는데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Erklären과 Verstehen을 구분한 딜타이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딜타이 이전에는 H. Rickert가 Naturwissenschaft와 Kulturwissenschaft를 구분하였으며 Windelwand는 Geschichtswissenschaft를 주장하였다. 이들과 같은 진영에서 딜타이는 Naturwissenschaft와 Geisteswissenschaft를 구분하였다.

이들의 입장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과 사회는 근본적으로 의지,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계론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접근해야만 하는가? 딜타이는 그 동안의 축적된 논의를 바탕으로 행위가 행해지는 구체적인 상황(이것은 법칙으로 환원할 수 없다. 전부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만(verstehen)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이해의 가장 좋은 방법이 empathy, einführung이다. 이로서 근세 이후의 이원론을 더 세련화시키고자 하였다. Max Weber는 사실과 가치를 명시적으로 구분하고 인간이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 한편 Windelwand와 Dilthey가 자연과학적 지식을 인정하면서 사회와 인간 탐구방법으로는 부적절하다고 주장하였다면 Nietsche와 Kierkeggord는 자연과학의 지식을 부정하였다.

- Positivism의 영향 : 실증주의는 20C중엽까지 이어진다. 행태주의(behaviourism)는 실증주의를 충실하면서도 극단적으로 계승하였다. 실증주의는 어느 면에서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철학의 고유한 탐구대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철학의 정체성의 위기를 가중시켰다. 이에 따라서 세가지 대처 입장이 생겨나게 되었다. ㉠철학은 해체되어야 한다. ㉡철학은 과학철학이어야 하며 실증과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이나 법칙을 정립하고 해명해야만 한다. ㉢분석철학(고유한 하나의 입장을 제시하였다.)

㉢분석철학

>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 모든 철학은 언어비판이다.(Alle philosophie ist Sprachkritik.)

>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t) : First-order discipline과 Second-order discipiline을 구분하였다.

로티(R. Rorty) :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 - 체계적인 학문으로서의 철학은 세계의 한 부분을 고유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부분을 대상으로 하는 실증과학의 진술체계를 대상으로 삼는다. (이 때 실증과학은 First-order discipline을 진술하고 철학은 Second-order discipline을 진술한다.) 철학은 이러한 진술체계들의 의미(어떤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유의미하고 무의미한가)의 기준을 제시한다.

※ 서양철학에서 이러한 철학의 자기 정의는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정의를 받아들였던 철학자들은 혁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였다. 이러한 틀 숙오세 5,60년 동안 발전하였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이러한 정으가 잘못되었다는 분석철학 내에서의 반론이 많이 나오고 있다.

② 헤겔 철학의 영향(헤겔 철학에 대한 반발)

- 헤겔 철학이란? : 헤겔 철학의 전성기는 보통 1830∼1845 정도이며 그 동안 헤겔철학은 유럽의 학문을 절대자처럼 지배하였다. 헤겔 철학은 독일 관념주의 전통의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독일관념론의 전통을 잠깐 살펴보자.

a> 칸트 : 『순수 이성 비판』의 여러 특징 중의 하나가 구성주의(constructivism)이다. 칸트의 철학에는 물자체(Ding-an-sich) 개념이 일종의 한계 개념으로 나타나면서 인간에게 알려진 세계(현상계Phenomenon)와 있는 그대로의 세계(Noumenon)를 구분하게 된다. 이에 따라서 관념론의 싹이 생겨나게 된다.

b> Fichte, Schelling, Hölerlin : 이들은 Ding-an-sich를 우리가 알 수 없다면, 우리도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 결과 물자체가 있다는 것 자체도 부당한 전제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유일하고 참된 세계이며 Noumenon과 Phenomenon의 구별도 배척해야만 한다.

c> 헤겔(Hegel) : 헤겔은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절대관념론의 체계를 완성하였다. 즉, 그것이 인간, 사회, 자연, 역사 무엇이건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은 (절대정신)absolute Geist의 자기 발전 과정의 상이한 단계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포괄적이고 방대한 헤겔의 체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포괄되었다. 그 결과 자연, 사회, 윤리 등의 모든 영역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 그러나 18C의 놀라운 발전을 하고 있는 자연과학의 부문에서는 헤겔의 권위가 자연과학의 권위에 미치지 못하였다. 특히 자연과학의 진술과 헤겔의 진술은 많은 점에서 일치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서 많은 의구심과 비판이 생겨났다. 그 비판은 유럽대륙에서의 비판과 영국에서의 비판으로 나뉘어진&#37953;.k

1> 유럽 대륙에서의 헤겔 비판 : 주로 헤겔 철학의 사회,정치 등의 분야에 비판을 집중했다. 일례로 키에르케고르는 "거대한 체계 속에서 하나의 pararaph가 된 나를 발견하고 치를 떤다"고 비판하였다. 이에 따라 실존주의와 생 철학이 생겨난다.

2> 영국에서의 비판 :

a. 영국에서는 Stirling의 『The Secret of Hegel』부터 헤겔에 대한 관심이 뒤늦게 일어나기 시작해서 1880년대 전후해서 영국식의 절대관념론이 성립하였으며 영국 철학계를 10년간 지배하였다. 이러한 절대관념론에 따라서 자연과학적인 세계관인 상식적인 세계관이 배척당했다. 그러다가 G.E.Moore와 B.Russell이 Cambridge로 가서 절대관념론의 영향 아래서 공부하다가 절대관념론의 체계에 최초로 반기를 들었다.

b. 무어(Moore)의 비판 : 무어는 고전을 공부하다가 헤겔의 철학은 신문에서 보는 영어와는 달리 이해하기 어려운 영어라고 비판하였다. "시간이 비실제적이라면 아침에 조반을 먹고 시간이 흐른 후 점심을 먹었다. 그러면 내가 점심을 먹은 것이 앞선단 말인가? 시간이비실제적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철학을 표현하는 언어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면, 참거짓을 가려내기는 더 어렵다" → 그리하여 진리에 앞서서 의미를 밝혀내는 작업을 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철학사상 최초로 "의미가 진리에 앞선다"는 생각을 명시적으로 표현하였다.)

c. 러셀(Russell)의 비판 : 러셀은 무어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절대관념론에 반발하였다. 절대관념론이라는 것은 그것이 바탕으로 하고 있는 논리학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잘못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러셀은 이미 그 당시에 프레게의 논리학 저술을 읽고 있었고 그것을 철학적인 문제에 적용하고 있었다.(Quantificational Logic) : i)논리적인 언어를 전부 기호화, ii) 양화사를 사용.

※ 프레게의 양화논리학은 논리적으로 다룰 수 있는 언어의 범위를 극적으로 넓혀주었으며 논리학으로 철학을 할 수 있게 하였다.

③ 논리학의 영향

철학사에서는 그 시대의 철학함에 있어서 모범이 되는 학문이 있었다. 고대에는 기하학이 그랬고 근세에는 자연과학이 그랬으며 19C 중엽에는 다윈의 진화론이 그 모범이었다. 분석철학의 초기에 있어서 그 모델은 단연 논리학이었다.

-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과 프레게의 기호논리학 : x가 y 위에 있다거나 x가 y보다 크다고 할 때 상식적으로는 x와 y의 관계는 x,y의 바깥에 존재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어- 술어의 논리학으로서 다룰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관계를 내재화하였다. 즉 주어-술어의 논리학에서는 "코끼리는 사람보다 크다"를 표현하기 위해서 '코끼리'가 주어, '사람보다 크다'가 술어가 되며 주어는 술어의 본성의 일부이므로 사람보다 큼이 코끼리의 본성의 일부가 된다. 그 결과 개체의 입장에서 보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의 관계가 그 개체의 의식 속에 내재하게 된다. 따라서 이 세계에 참되게 존재하는 것은 의식 밖에 없게 된다. 프레게는 이러한 주어-술어의 논리학을 양화된 기호논리학으로 대체하였다.

- 양화논리학 : 양화 논리학의 기본 도구는 원자명제, 논리적 접속사, 양화사 세가지이다. 그 당시에는 저 세 도구를 사용해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의미있는 모든 말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즉 아무리 복잡한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원자명제를 표현하는 기호와 연결사로 표현할 수 있다. 즉 모든 문장은 원자명제로 분석될 수 있다. 이런 방법론이 환원론(Reductionism)이며 그 이면에는 구성주의(constructionism)가 있다. 이 세계는 기본적인 골격에 있어서 논리학의 기본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는데 세계의 구조와 논리학의 기본구조는 근본적인 점에서 같다고 러셀은 생각하였다. 따라서 논리학의 기본구조를 파악하면 세계의 기본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우리 언어의 구조도 기본적인 구조에 있어서 논리학의 구조와 같다. 그러므로 세계를 알려면 언어를 분석해보면 된다. 그래서 언어분석 철학이 생겨나는 것이다.

→ 본격적인 분석 철학의 전개는 Peirce나 Frege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여기서는 다음 글에서 Peirce의 철학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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