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Updated 1998.1.20

• 기억에 남는 책들
• F#@k the 애국심
• 짜증나는 택시, 그 이면에는...
• 본과에 진입하면서...安住라는 방황을 딛고
• "자유의 질곡에 선 우리들의 해방구" 하제

기억에 남는 책들

저에게 영향을 끼친 책들을 열거해 보겠습니다.

이것들을 읽어보신다면 제 짧은 혀로 표현하지 못하는 생각들을 이해하시겠죠.

 

*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이야기	류시민	재미있게 읽는 가운데 역사관의 기초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시간	백무산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에 녹아있는 변증법 철학과 경계의 미학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브레히트 외	해외 사회주의 시인들의 작품모음집으로 하이네, 마야코프스키, 아라공 등
	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이 시대에 있어 가장 삶에 투철한 인간의 명상록
*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	알렉스 캘리니코스	맑스주의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한 개론서
*	삶, 사회, 그리고 과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개론서입니다. 기관에서 내는 책이니만큼 정론이랄까?
*	노동자 이야기 주머니	위기철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꽁트로 설명해줍니다.
*	우리시대의 노예제도	정현구.김의훈	토지제도에 대한 톨스토이의 견해와 현실탐방을 바탕으로 한 짤막한 글들
	공산당 선언	맑스, 엥겔스	성경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로 널리 알려진 글이라는 사실.
*	자본의 이해	강신준	맑스의 고전 "자본론"에 대한 해설서. 자본주의의 착취구조에 대한 분석입니다.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인간의 소외가 현실인 자본주의에서 사랑을 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

위에서 * 표시가 되어있는 책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짜여져 있는 것들이니

기회가 나시면, 아니 기회를 내서라도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특히 "내머리로 생각하는 역사이야기"를 추천합니다.

F#@k the 애국심 (치과대학 학생회 소식지에 실었던 칼럼입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나는 지키지도 못할 이 맹세를 수도 없이 반복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왔다. 왠 조국과 민족? 살벌하게 몸과 마음을 바치기보다 차라리 풀 꽃 생명 하나에 고개숙이는 예쁜마음 가질걸 그랬다.필자만의 특이반응일까? 일제시대에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건립된 학교에서 중·고 6년간 국민의례가 있을 때마다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야했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애국'이라는 말만 나오면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사상 처음으로 합동 토론회가 열렸다. 물론 세 명만 나왔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야. 주로 이야기된 것은 경제,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허긴 환율문제 때문에 보존학이나 병리학 책값이 지난해와 비교되게 오르기도 하고, 도서관 앞의 신문만 봐도 금리폭등이니, IMF니 평소에 못듣던 말들이 많은 걸로 보아 위기 상황은 위기 상황인가보다. 어쨌거나 이 위기상황을 어떻게 하겠냐고 패널이 세 후보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혹시나 했던 나의 기대는 역시나였다. 차라리 글발좋은 고등학생이라면 더욱 그럴듯한 논술을 쓸 수도 있었을 듯. 국정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한다는 얘기가 고작 모두 고통을 분담하고 허리띠를 졸라매잔 얘긴가?

    한참 약이 오르던 찰나에 드디어 이인제 후보가 애국심 들먹거려 나의 짜증에 방아쇠를 당겼다. TV껐지 뭐. TV끄기 전에 잠깐 자기 젊다구 자랑하는 걸 봤는데, 클링턴이 젊어서 미국 경제가 살아났댄다. 맞다. 미국의 경기는 지금 호황이다. 오랜기간의 침체기 끝에 다시 맞은 경제적 호기란다. 잘나가는 나라는 그 나라 돈도 값어치가 있어 1$에 1000￦이나 한다. 그러니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가 이렇게 꼬이고 있는거 아닌가? (미국이 한참 불황일 때가 우리나라 잘나가던 5공이었다.) 물론 복합적인 요소들을 모두 고려해야겠지만 말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다른 나라의 경제를 옭아매는 그런 모순된 판국에 우리나라도 젊은 사람이 대통령 된다고 경제가 바로설까? 이인제후보만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경영의 문제점은 덮어둔 채 경제위기의 책임과 고통을 '애국심'으로 가득찬 무고한 국민들에게 떠넘기려고만 드는 세 후보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 그리고 그 마음 고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도 희망은 없다. '그래도, 그중에...' 라는 말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무런.

    애국심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첫째. 만약 미국 국민들도 나름의 애국하는 마음으로 자기네 경제를 살려 우리나라 경제를 이렇게 어렵게 만들었다면 그 미국인의 애국심은 어떻게 바라보아야할까? 둘째.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는 잊고 국가만을 생각하는 바보가 되도록 만드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는 현실은 어떻게 바라보아야할까? 셋째. 자기를 희생하고 국가를 위하는 것이 진정 애국심일까? 국가의 주인은 국민인데, 국민이 희생하여 국민을 위한다는 말은, 하나 먼저 희생하면 둘 나아질 수 있다는 속담같은 얘긴지, 어떤 국민은 희생하고 어떤 국민은 잘먹고 잘살자는 얘긴지...

    어쨌거나 지금도 전국의 초등하교에서는 조회마다 행사마다 잘난 조국과 민족의 영광을 위해 그 작은 몸뚱아리와 청순한 마음을 다바쳐 희생하라고, 그 어린 입술로 되뇌이도록 강요하고 있고, 평생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라고 하고있는 것을 생각하면 말그대로 '조국'의 앞날이 암담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나뿐일까?

짜증나는 택시, 그 이면에는...(치과대학 내에 게시했던 자보글입니다)

    '택시' 하면 떠오르는게 뭘까? '합승'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나고, 또 '총알택시' 그리고 '승차거부'도 생각이 난다. 고급 승용차에 편안히 기대어 원하는 곳까지 바로 갈 수 있는 고급 운송수단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미지는 불쾌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런 나쁜 이미지의 이면에는 또 다른 모습이 숨겨져 있다. 쉽게 우리는 승차거부를 하는 택시를 떠나보내며 뒤에서 온갖 욕설과 함께 수많은 복수의 가설을 세워 보지만, 사실 그 택시 기사 아저씨가 나랑 원수진 일이 있어서 안태워 준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바쁜만큼, 그도 정해진 '하루'라는 시간동안 벌어야 하는 돈이 있을 뿐이다.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숙연(?)해 지기도 하는 일이다.

    실제로 그러한 승차거부와 합승이 일어나는 이유는 단순한 택시운전사의 욕심때문이라기 보다, 회사에 내야하는 사납금에 있었다. 빡빡한 사납금을 모두 채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효율적(?)인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 택시기사중에 넉넉한 사람이 있던가? 단지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그런 파행운행을 한 것이 우리에게는 사사로운 욕심으로 비추어졌던 것이다.

    그러한 나쁜 수당제도를 고치기 위해 제안된 것이 있다. 바로 완전월급제도인데, 이는 기존의 사납금제도가 초래하는 장시간 노동과 불안정한 생활, 엄청난 과부화가 택시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각한 교통사고와 만성화된 택시불편을 야기하기 때문에, 이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고자 했던 제도이다. 그리고 도급제, 지입제, 부가세 탈세 등 택시업주들의 불법변태경영을 청산하고 올바른 '시민의 택시'를 만들자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완전월급제를 위하여 84년부터 택시노동조합의 투쟁과 이를 성취하기 위한 10여명의 노동자 열사들의 죽음으로 올해 9월에서야 드디어 그 실행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무책임한 행정으로 택시기사 수입 전액은 회사 사장님들 손에 일단 넘어갔지만 월급은 한푼도 나오지 않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로 인해 현재 택시노동자들이 겪는 생계압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며, 기어이 광주의 송광교통 노조위원장인 최도근(崔道根,47세)씨께서 택시완전월급제를 요구하며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고 정부당국과 여야정당, 지방자치단체 등 관계기관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건의하고 호소하기를 수백번. 그런데도 건설교통부장관이라는 사람은 책임당사자로서 아예 대화마저 거부했다고 한다. 만약 대선주자 한 명이 교통사고로 다리라도 부러지면 대서특필 되겠지만, 국민들의 편리과 안전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한 노동자의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접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본과에 진입하면서...安住라는 방황을 딛고 (97 진입생 오리엔테이션 자료집에 실었던 글입니다)

    하루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박하고 청렴한 사람을 일컬어 우리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은 법이 없으면 살 수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치과대학에 진입을 하면서 이제 거스를 수 없는 길로 접어 들어감을 느낍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나 평생 한가지 일을 하며 살아가지만, 그러한 운명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이제까지 살아온 날들에 대한 불신 때문이겠지요. 과연 나는 '나의 삶'을 살아왔는가? 내가 원하고, 내가 할 수 있고, 다른 어느 것보다 나에게 어울리는 직업이 치과의사인가? 괜한 의문들에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런 것들은 이제 다 속절없는 고민이겠군요. - 물론 뜻밖의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이니까요. 한가로웠지만 나태했던 일상에서 진입이라는 과제를 두고 새삼스레 인생(?)이라는 것을 곱씹어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던 입시를 통과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던 새내기 시절. 앞과 뒤만이 있다고 생각했던 세상에서 좌우도 있었고, 위아래도 있다는 것을 느끼고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에게 씌워져있던 굴레가 없이는 어디까지 발을 내딛어보아도 되는지 몰라서 눈치를 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법 없이는 살수가 없었던 스스로를 발견한 것입니다.

    安住라는 방황. 2년이라는 시간은 사람을 바꾸어 놓는 데에 그리 짧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도피하지도 방황하지도 않고 새로운 질서에 잘 적응해 온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본과수업을 들으면서 답답해했던 나 자신이 증명한 것일 겁니다. 주어진 테두리를 느끼지 못했다면 그만큼 길들여졌다는 것일 테니까요. 본과는 엘리베이터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타기만 하면 몇 층이고 데려다 주는, 앞과 뒤까지 꽉 막힌 엘리베이터처럼 말입니다.살아가며 새로운 곳에 이르더라도 나 자신을 억지로 끼워맞추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없지만 말입니다. 얽매였다고 생각치 못했던 고등학교를 빠져나와서 느꼈던 당황감을 또 다시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가 누구를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비집고 들어가면 늘어나는 법 아니겠습니까? 부딪히고 튕겨지더라도 테두리를 밀어낼 때에 비로소 나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끔씩 옛날 일들을 생각하면서 잘못된 선택을 했던 기억이 되살아오면 몸서리를 치며 낮은 비명이 터지곤 합니다. 그렇게 많은 후회에 괴로워한 대가로 얻은 나 자신이기에 더욱 열심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자유의 질곡에 선 우리들의 해방구" 하제 (97 치의예과 '새내기를 맞으며'에 실었던 글입니다)

(하제는 순우리말로 '내일'이라는 뜻입니다.)

인간愛.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돕는 것은 실로 사랑일 것입니다. 냄비에 동전을 넣는 어린 손부터 농번기의 농활, 의사들의 무의촌 진료, 모두가 사랑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랑은 그것을 실천하는 몇몇 사람들로 사회가 그나마 지탱되고 있다며 훈훈한 미소만을 남길 뿐, 끊임없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그 사랑이 직접 그것을 받는 사람들에 닿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정작 필요한 것은 안타까운 희생이 아니라 문제의 뿌리를 캐내어 바꾸는 것일 겁니다. 어제보다 나은 하제를 만드는 것. 인간의 역사가 그렇게 이루어온 것처럼 말이에요. 이를 위해서는 사회구조, 다시 말해 인간관계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본질적인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겠죠. 마치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찾아내는 자연과학처럼, 사회에 일어나는 문제를 살펴보고 그 원인을 파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회과학입니다. 인간愛입니다.

哲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고사로 논술 하나만 치른 97학번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논술 예문을 읽어봤을까?' 국영수에 과학까지 준비해야했던 저도 백개는 넘게 읽어본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논술이 지식 주입식 학습을 강요하게 했던 공교육의 한계를 극복할 것이라는 멋진 시도는 과연 성공한 것일까요? 그러나 '천편일률적이다' 라고 평가소감을 발표한 교수들은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그래서 무척 우려가 됩니다. A문제는 X로, B문제는 Y로 풀어야한다는, 지식 주입식보다 더 위험한 사고 주입식 교육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입니다. 사고에 대한 깊은 고찰도, 실천적 검증도 없이 자기의 사고관으로 받아들이게되는, 수험생이라는 강요적이고 긴박한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여기 치의예과에는 석회처럼 딱딱해져있을지 모르는 당신의 사고관을 해방시키기 위한 자리가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마련되어있습니다. 자유의 질곡에 선 우리의 해방구 하제. 사회과학 학회 하제는 또하나의 논술 예문이 아닙니다. 하제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이것을 사상이라고 하지요)를 다른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통하여, 그리고 세상에 대한 직접적인 실천을 통하여 견주어보는 공간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사상을 현실에 맞게 적응시킬 수 있는 것이고요, 함께 하는 사람들이 진실한 인간관계로 맺어질 수밖에 없게끔 하겠죠. 물론 당신 역시 그들의 진실한 우정, 사랑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라고 마음으로 꼽아보는게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되면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인 동시에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손목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랑이겠지요. 둘째, 다른 사람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되면 주저 없이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그것은 오만과 독단을 막을 과학에 대한 존중이지요. 위의 두 가지에 동의하시는 당신이라면, 감히 손을 내밀어 봅니다. 그것은 당신과 진실한 인간관계를 맺고자하는 우리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