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Review:

  • [텔 미 썸딩] 사운드 트랙 

회의 참맛을 아는 사람이 모듬회를 경멸하듯 '음반 컬렉터'들은 모듬 음반(=컴필레이션 음반)을 경멸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운드트랙 앨범이 모듬 음반의 일종이 되었다. '이게 바로 21세기 발라드', '불멸의 헤비 메탈'같은 이름으로 장삿속이 빤히 보이는 컴필레이션 음반과 달리 어느 정도 명분도 확보한다. 그러면 영화음악과 사운드트랙의 차이는? 영화음악은 '영화를 위해 특별히 만든 음악'이고, 사운드트랙은 '영화에 삽입된 기성곡 모음'? 말도 안된다. 영화음악가와 사운드트랙 담당자의 차이는? 영화음악가는 작곡가고 사운드트랙 담당자는 선곡자다? 엉터리다. 하지만 사운드트랙 음반이 기성 히트곡의 컴필레이션 음반으로 격하(격상?)된 현상의 단면을 보여주기는 한다.

그 점에서 [텔 미 썸 딩] 음반은 영화음악이자 사운드트랙이다. 선곡된 기성곡과 새로 만든 트랙이 모두 있기 때문이다. 프로듀서(조영욱)와 작곡가(방준석)도 다르다. 기성곡은 엔야(Enya)의 "Boadicea"(4번 트랙), 플라체보(Placebo)의 "The Crawl"(6번 트랙),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Nick Cave & The Seeds)의 "Red Right Hand"(15번 트랙) 등이 있는데,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외국 곡'을 고르는 최근의 경향을 따른다. 하지만 조영욱이 [접속] 사운드트랙에서는 오래된 팝 음악 중심으로 선곡했기 때문에 의외인 면도 있다. 그때 전위적 록 뮤지션 루 리드(Lou Reed)를 '발라드 가수'로 알려지게 만들어버렸다는 개인적 불만이 있었지만, 새로운 음악적 조류에도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덮어둬야겠다. 방준석이 작곡한 트랙들도 영화와 어울린다. 좋은 영화음악이란 '영화의 한 장면을 선명하게 떠올리지만 정작 음악은 잘 기억나지 않는 음악'이라는 고루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나같은 사람도 만족시킨다('히트곡'들은 오리지널의 의미가 튀어서 영화와 잘 어우러지지 못할 때가 많다).

영화의 성격이 워낙 딴판이라 당연한 것이지만 센티멘털한 정서가 지배적이었던 [접속]과는 분위기가 판이하다. 단조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지배적이고, 이를 통해 영화의 공포스럽고 잔혹한 느낌을 재현해준다. 물론 방안이나 차안에서 들으면 영화볼 때의 느낌이 순치되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가끔씩 바흐와 멘델스존과 쇼스타코비치의 클래식 음악으로 기분전환도 해준다. 테크노부터 클래식까지, 공포부터 안락까지, 이국적 느낌부터 내국적(?) 느낌까지 한 장의 앨범 안에 모두 담겨있다.

하지만 개별 뮤지션이 한 장의 앨범을 만드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제작비가 덜 들 것 같다. 그러면 가격을 좀 싸게 하면 안되나? 시간의 제약에 쫓겨서 만들었다는 데 대한 위험수당 때문일까. 아차, 영화가 종영되면 수요가 급작스럽게 줄어든다는 사실은 미처 생각 못했네...  20000112

*[주간조선]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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