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Review:

  • 언니네 이발관, <<후일담>>
  • 노이즈 가든, << But Not Least >>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는 살아가기 피곤하다. 그들의 눈에 세상은 목소리 큰 사람이 지배하는 '구릿내 나는' 곳이다. 이런 유형의 인간들은 '코리안'이기 이전에 '보헤미안'이다. 물론 이들도 나름의 집단을 형성하지만, 이 집단은 꽉짜인 조직이 아니라 느슨한 '무리(band)'다.

최근 2집 음반을 발표한 노이즈가든과 언니네 이발관은 각기 독립된 '음악 밴드'지만, 실제로는 밴드에 속한 성원들과 여러 관계자들을 합한 더 큰 무리의 부분집합에 가깝다. 노이즈가든의 전 멤버였던 이상문이 언니네 이발관의 멤버로 참여하고,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 이석원이 노이즈가든의 음반의 한 트랙에 객원 보컬로 참여한 사실은 오히려 사소하다. 주목되는 것은 데이트리퍼, 주노 3000, 레이니 선, 학고형제 등 두 음반에 참가한 '무명 뮤지션들의 예명'들이다. 당연히 이들도 이 무리의 성원이다.

그런데 기타 중심의 밴드 음악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두 그룹의 음악적 스타일은 판이하다. 노이즈가든은 중후하고 정통적인 메탈 사운드를, 언니네 이발관은 상큼하고 풋풋한 팝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번 음반의 경우도 기조는 유지되고 있지만, 적잖은 변화가 있다.

언니네 이발관의 경우 데뷔 음반에서 '전체적 특징'이었던 아마추어적 풋풋함이 이제는 '하나의 요소'가 된 듯하다. 음악을 이끌어가는 두 대의 기타는 귀에 착 달라붙는 리프(반복구)나 솔로는 없지만, 이펙트를 적절히 사용한 다양한 음조(tone)와 아기자기한 주법으로 오밀조밀한 음들을 엮어낸다. 리더이자 보컬을 맡은 보컬도 '엉성하고 단조롭다'는 일부의 평을 들었던 전작과 달리 자기 스타일을 확립해 보인다. 이런 음들은 일상의 '작은' 사건이나 감정을 담은 가사와 어우러져서 <꿈의 팝송>의 낭만적 멜랑꼴리부터 <청승고백>의 절박한 좌절에 이르는 풍부한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유리>나 <순수함이라곤 없는 정> 등의 트랙에서는 대중성을 위한 배려가 보이는 반면, 실험적인 전자 음향을 선보인 트랙도 있다. 1980년대 중반 산울림, 시인과 촌장, 동물원 등이 대표했던 '소년의 멜랑콜리'의 1990년대 후반의 버전(version)을 듣고 싶은 사람에게 이 음반은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한편 노이즈가든은 '연주 잘하는 정통 록 밴드'다. 테크닉과 스타일을 겸비한 기타리스트 윤병주의 묽직하고 강력한 리프와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솔로는 '록 음악을 듣는 전통적 재미'를 안겨준다. 그렇지만 노이즈가든의 음악은 '쾌락적이고 자기도취적'이라는 상투적 록 음악의 정서와는 뭔가 다르다. 오히려 정반대이고 때로는 염세적이기조차 하다. 이런 느낌은 "더 이상 원하지 않아"(<더 이상 원하지 않아>), "거짓말하네 / 다시 어둠이"(<다시 어둠이>), "너의 세상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또다른 유혹>) 등의 가사 때문만은 아니다. 음악의 전체적 분위기가 암울하고 폐쇄공포증적이며, 악기나 목소리의 음은 거침없이 분출하기 보다는 끊어질 듯 이어진다. <인생의 리세트버튼>처럼 음향 효과를 많이 사용하여 느린 템포로 나른한 분위기를 연출한 트랙이나 전자음향으로 드럼 루프를 만들어낸 <미로>같은 트랙은 사운드나 스타일 자체가 '로큰롤'이나 '헤비 메탈'과 꽤 거리가 있다.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이 '감각있는(sensual)' 밴드라면, 노이즈가든은 '지각있는(sensible)' 밴드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이 모든 것이 '여기'에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묻는 다. 아마 본인들도 자신들의 음반이 대중의 폭넓은 사랑과 이해를 받기보다는 소수의 매니아들의 컬트로 그치고 말 운명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벗어나고 싶어/이 좁은 곳에서"(<쇼생크 탈출>)라는 외침을 반복해서 들으면 여기의 삶에 대한 절박한 열망으로 다가온다. "갇혀 있다고 생각하지 마/나는 여기에 살고 있는 거야"(<미로>)라는 가사가 그런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일단의 무리가 한국의 대중음악계에 넌지시 던지는 파장이 넓지 않을지는 몰라도 매우 깊고 강도높은 것은 확실하다. 1999.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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