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Review:

  • 조 PD, 드렁큰 타이거...힙합 네이션(hip-hop nation)이 한국에 뜬다    

1999년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힙합이 '뜨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주역은 조PD, 드렁큰 타이거(그리고 G.O.D., 샾) 등 신예 힙합 그룹들이다. 그런데 좀 새삼스럽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한 1992년 이후 힙합이 언제 '가라앉았던' 적이 있었던가? 힙합의 필수 요소인 랩 rap이 들어가는 것은 대중가요의 공식 중의 하나였고, 또 히트가요의 절반 정도에는 힙합 비트(이른바 브레이크비트 breakbeat)가 들어간다. 착하고 귀여운 H.O.T.가 본격적으로 스타덤에 올려준 곡도 <전사의 후예>라는 '갱스터 랩' 넘버였다.

'다시' 뜬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들이 '제대로 된' 힙합을 구사한다는 점일 것이다. '제대로'의 근거는 무엇보다도 이들 음반에 나타난 사운드의 질감이다. 표준형 히트가요의 가볍고 밝은 사운드와 대조적으로 이들 음반의 기조는 무겁고 어두운 사운드다. 또한 사운드의 짜임새가 꽉차지 않고 빈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점도 특이하다. 이렇게 '안되는 노래 실력을 숨기기 위해' 꽉차고 벙벙한 사운드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관행과 거리를 둔 것은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려는 이들의 의도로 보인다.

이 빈 공간은 랩이 차지한다. 이 점이 이들이 본격 힙합인 또 하나의 이유다. 즉, 랩이 전통적 멜로디 사이에 양념처럼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전반적 진행을 맡고 있다. 랩이라는 단어가 'rhyme and poetry(운이 있는 시)'의 약자라는 '소수 견해'를 존중해 준다면 이들의 랩은 산문에 가까웠던 한국형 랩과 달리 운문으로 다가온다. 음절 하나하나가 똑똑 떨어지는 한국어의 특징 상 운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다. 이 문제를 드렁큰 타이거는 본토 발음으로 영어 랩을 구사하거나 '한국어를 영어처럼 발음하면서' 해결한다. <너희가 힙합을 아는가>나 <Sweet Talk>같은 곡에서 잘 구사된 드렁큰 타이거의 랩은 자연스럽게 넘어가면서 독특한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한편 조 PD는 '한국인의 발음구조'에서 나올 수 있는 재미를 추구한다. 한참 라디오 방송을 타고 있는 <조PD rules>에서 "아저씨/...엠아이씨/...엠씨/...아가씨"(<조pd rules>) 같은 구절은 작위적으로 들리면서도 '욕을 하고 난 다음의 묘한 카타르시스'를 던져 준다. 실제로 조 PD는 욕쟁이 대회에 출전해도 입상할 만큼 욕지기와 악다구니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이는 '욕을 하고 싶지만 참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리충족시켜주는 효과를 준다.

이들이 제대로 된 마지막 이유는 "힙합은 문화, 사는 방법"(드렁큰 타이거 본인들의 표현)이라는 생각에 충실해 보인다는 점이다. 근데 힙합이란 '어떻게' 살아가는 방법인가? 당연히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흑인의 지위에 해당하는 한국인 집단은 누구인가? 현재로서는 '중고딩'이 가장 가까워 보인다. 이들을 이해하려면 미국에 살다온 드렁큰 타이거나 조PD의 음반보다는 34명이 래퍼가 총출동한 컴필레이션 음반 {1999 대한민국}을 들어보는 것이 낫다.

힙합에 전형적으로 쓰이는 흑인 음악의 샘플 뿐만 아니라 트로트, 경음악, 사운드트랙, 교향곡, 국악까지도 샘플로 뒤범벅시킨 음악에 대한 평가는 '난감'하다. 그렇지만 가족, 학교, 군대 등의 제도들에 대해 '두서없지만 직설적인' 방식으로 피력된 국영문 혼용 랩은 교지 맨 뒷 페이지에 휘갈겨쓴 집단 낙서장을 보는 기분이다 : 짜식들, 기특하단 말야. 그런데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랩교(敎)"', '힙합의 리듬을 타고 온 민족 X-teen' 등이 진짜 무얼 말하는지 알 만한 어른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힙합 네이션(hip-hop nation)이라는 '나라없는 국민'들이 '국적불명의 모방자'인지 '혼합된 정체성의 창조자'인지를 가름하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여기서 잠시 괜한 시비를 걸고 싶어진다 : 애들 혹시 흑인들 중에서도 '미국 흑인'이 제일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거 아냐? 1999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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